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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문수 Sep 08. 2022

대가 없는 응답

22. 09. 08.

일을 한 차례 더 늘리고 나서 돌이켜 보았다.


커피 빨대를 문 채 출근하기 전 혼자 카페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시간.

하루 중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그 삼십 분 남짓 되는 정도구나.

가족이 불편해진 뒤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없다.


좀 더 다정했어야 했는데. 

자랑할 만한 직장을 가졌어야 했는데. 


솔직한 줄 알았지만, 그저 입이 가벼울 뿐이었다. 

공감을 잘하는 줄 알았지만, 순간 그러는 척할 뿐이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줄 알았지만, 남들 가는 길을 따라가지 못한 낙오자였다. 


충고를 한답시고 가스라이팅을 저지르곤 했고, 

선의를 베푼답시고 위선을 저지르곤 했다. 


갈수록 내뱉었던 말들이 점점 짐처럼 느껴진다. 

그동안 받아온 응원들을 죄다 내치고 나를 향한 비관만 안고 온 것 같다. 

나의 선택을 비관적으로만 보던 사람들을 이제는 부정할 수가 없다.

나도 내 꿈에 더는 자신이 없다. 

예전엔 주머니 속에 많은 꿈이 있었지만 지금은 구겨놓은 영수증만 있다.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들이 하나씩 줄어드는 것을 셈한다. 

다시금 인간관계를 떠올린다. 

우리 사이가 정말로 양극점을 향해 가는 건지, 아니면 내가 자꾸만 떠날 준비를 하는 건지. 

우리가 더는 만나지 않는 이유는 바쁘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함을 알아버렸기 때문일까. 


우리 사이에 자꾸만 불어나는 게 그리움인데,

이 관계가 추억에 끌려가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하는구나.


언젠가부터 그저 대가 없는 응답만을 바라고 있다.

친구들은 재미없는 말이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내게 그 어떤 기대나 계산 없이도 던질 수 있는 가벼운 응답.

내가 말을 건넸을 때, 내게로 온전히 돌아오는 그의 말.

내게는 그런 응답조차 더는 흔치 않다.

듣고 싶은 말은 점점 쌓여가는데, 정작 들을 수 있는 말은 줄어들고 있다.

누군가와 의미 있는 대화를 하고 싶다기보다 조용히 음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간다.

신세한탄을 하려던 게 아닌데. 좋은 말을 떠올리는 게 어렵다.

또 마음에도 없는 말을 지어내는 수밖에 없다.


대가 없는 믿음. 너를 믿는 데에 더는 무얼 바라지 않으련다. 

꿈을 망상이라 까내리지 않으련다. 진심을 웃어넘기지 않으련다. 

네가 “힘들다”고 말하면, 나는 “힘들어도 괜찮다. 너는 잘하고 있다”고 말하고.

네가 “살기 싫다”고 말하면, “그래도 같이 버텨보자”고 말하고 싶다.

더는 우리 눈물이 나약함의 증거로 여겨지지 않았으면 한다.

아직은 우리 안에 투명함이 남아있노라고 여겨졌으면 한다.

더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면 한다.

불안은 떠나가고 행복이 왔으면 한다.

행복은 온다. 그냥 믿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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