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아 있으니까

2024. 12. 20.

by 나문수

등에 비친 먼지를 멍하니, 첫눈인 듯 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삶이 막막했었지요. 꿈이 불탄 뒤 마음엔 잿더미가 쌓였었고. 화창한 날 포근한 햇살 아래에 서면, 그림자가 기침하는 것만 같았어요. 꿈만 먹고 살다가 그게 다 타버리니 도대체 뭘로 삶을 채워야 할지 몰랐습니다. 머릿속이 꾹꾹 눌려 딱딱해진 솜사탕 같았습니다. 심란함을 달래 보려 바깥에 나가 뛰어도 보고, 좋아하는 영화도 보고. 틈날 때마다 책을 읽어도 봤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재능 없는 사람에게 꿈은 저주인 걸까요. 아무도 내 인생에 대고 뭐라 하지 않는 시기가 왔음에도, 나 혼자만 내 인생을 끌어안고 깊이 잠수해버렸습니다. 가족들을 피하게 되고, 친구들에게 먼저 만나자는 얘기도 하지 않았지요.


지망생으로 5-6년쯤 살았을 때였습니다. 지금은 ‘브런치스토리’로 바뀐 카카오의 작가 플랫폼, 브런치의 작가 심사에 통과하기 위해 몇 번을 지원하고, 떨어졌습니다. 배움이 부족한 것 같아 <브런치 작가 되기> 강의도 들었더랬죠. 강의를 듣고 있을 때엔 브런치 작가라는 건 될 일이 없다고 여겼었습니다. 강사님에게도 이런 메일을 남겼었죠.

“도저히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을 거 같지 않아, 지원을 포기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강의를 들은 날, 이번을 끝으로 정말로 포기해야겠다는 심정으로 브런치 작가에 신청했고, 덜컥 브런치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 정도로도 무슨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은 듯, 막 신이 났습니다. 웬걸, 난생처음 무관심이란 걸 제대로 받아보았지요. 그동안 SNS에 글을 써 게시했지마는, 그건 주변 사람들에게만 보이던 거니까. 본격적인 글쓰기 플랫폼에서 내보이면 관심은 어느 정도 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제야 제 위치를 깨닫고 말았지요. 나는 기껏해야 동네 글쟁이에 지나지 않는구나, 하고.


그 뒤로 또 대학을 졸업하며 출판사에 들어가고. 유튜버를 하겠다고 퇴사를 한 와중에도 쭉 글을 썼습니다. 그 시절엔 수필을 붙잡으며, 해마다 ‘좋은생각’이라는 잡지에 원고를 투고했었죠. 돌이켜 보면 그때만큼 삶이 무너졌던 적이 없었습니다. 야심 차게 운영하던 유튜브로는 수익을 내는 게 까마득했고, 아버지는 간절한 부탁에도 제 꿈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슬펐으면 그 야밤에 혼자 집 밖을 나가 슬리퍼를 질질 끌며 펑펑 울었을까요. 지금 생각해 보니 딱 민달팽이 신세였군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그런다고 어디 세상이 바뀌나요. 눈물이 더 나오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울고 나서야 집에 돌아와,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술집 설거지 알바로 시작해 일을 늘려 서빙도 하고 카운터도 봤었더랬죠. 별의별 인간 말종은 그때 다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삶이 조금씩 억울하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 살아야 할까.’


그렇게 알바를 그만두고 학원을 다니며 영상편집을 배우고. 그 학원에서 강사를 했다가 지금에 오기까지. 요즘도 세상의 거대함에 압도될 때가 있습니다. 이 넓은 세상에 내가 차지한 데는 한 점뿐인데. 나를 빼고 남을 이 세상의 여백에 무슨 수로 내 이름을 남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살아갈 힘이 쫙 빠지기도 했지요. 아마도 그때쯤에 작가가 되겠단 마음을 접었던 것 같습니다. 더는 어디에 원고를 투고하는 일도 없었고, 컴퓨터에 쌓여만 있는 원고를 안쓰러워하기만 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올해 4월쯤이었을 겁니다. SNS에서 어느 출판사에서 원고 투고에 대한 광고를 올린 걸 발견하고는, 무엇에 홀린 듯이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때도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야. 이걸 마지막으로 작가가 되려 하는 건 그만두는 거야.’라는 심정이었지요.


결과적으로 정말 작가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런다고 삶이 달라지진 않더군요. 어쩌면 줄곧 작가가 되고 싶었다기보다, 유명해지고 싶었던 거였는지도 모릅니다. 또 좌절하고야 말았습니다. 아, 내 글쓰기는 고작 여기에 그치지 못하는구나. 무명하고 무익한 작가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런 심정으로도 무슨 암시가 걸린 듯, 첫 책을 내고서 두 달 뒤에 소설집을 내고. 또 네 달 뒤에 시집을 내었습니다. 이쯤 되니 요즘은 제가 무얼 위해 글쓰기를 하는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수필을 왜 쓰고, 소설을 왜 쓰고, 시를 왜 썼을까. 그래도 사는 게 좋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채우지 못하는 세상의 여백만큼 내 삶이 텅 빈 것 같아도요.


아침에 일어나 맞는 햇살의 눈부심. 거리에 나와 밟는 땅의 튼튼함. 바람의 신선함. 들풀의 억척스러움. 꽃의 애틋함. 그 모든 게 좋았습니다. 그에 더해 나무들이 자꾸만 가르쳐주었습니다. 나무는 봄이라서 서 있는 게 아니고, 여름이라서, 가을이라서, 겨울이라서 서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나무로 살아 있으니까 서 있는 거죠. 그러니 더 살아야 할 이유랄 게 뭐 있겠습니까. 한 점 세상에 내가 있으니까. 그거면 얼마든지 더 살아야 할 이유가 되는 거겠지요. 그래도 살아 있으니까, 이 삶을 전부 누려 보는 거죠.


2024.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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