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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 주원아빠 , 사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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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N
Jul 30. 2019
1. 앰프
[AM 00:15]
그 무기력증 은 아버지의 영혼을 아픔으로 '소비'하게 만들었다.
노이즈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흠모하던 당신은,가끔, 아주 가끔 -그 병적인 게 도지지 않을 때-너덜너덜한 젊은 시절 사진을 한참동안
바라보곤 하였다.
여러 번 신에게 의혹을 제기한 나였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그 '미약'한 감성이 나중엔 빛을 바라지 않을
까 하여, 희미한 기대심을 가지고 있었다.
[AM 00:36]
상냥한 어둠 ‘야키’는 오늘도 어김없이 대뇌에 침투해 속삭여왔다.
「당신도 잠시만 눈을 감고, 저 무능한 아버지와 같이 서서히 노이즈의 세계에 빠져 봐
.
저렇게 빙글 빙글 돌아가는 몽환의 드림 사운드(Dream Sound)에 내손을 잡고 한번 들어 가봐
.
」
야키가 선물한 달콤한 의식 안에서 -난 모든 것을 잊고- 그 '유일하게
부패해 보이지 않는 붉은 세계' 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
AM 1:30]
그 세계 안에서 아버지를, 젊은 시절의 그 남자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남자는 붉은 세계 안을 따라
서서히... 서서히...
바늘 투성이의 ‘비둘기’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비둘기는 바늘을 뽑으려 날개 짓 했지만...
바늘에 싹튼
꽃의 채취에 익숙해져버려...
그 날개짓을 거두고 말았다.
난 그 비둘기를 외면하며,내 온몸을 감싸오는
적색 꽃들과 함께 꿈의 향연을 벌이게 되었다.
[AM 2:45]
상냥한 어둠 야키가 가장 싫어하는 -그리고 가장 두려워하는-내 안에 ‘흰색 옷을 입은 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이라도 좋으니..
그 소리를 끄고..
그 세계에서 나와..
현실의 아버지를 바라 보렴.
그에게 필요한건 사랑이란다.」
하지만 난 그 소리를 무시 하며 몸을 움츠렸다.
[AM 5:30]
내안에 ‘흰색 옷을 입은 왕’의 말에 온전히 따르려는 건 아니지만...
나는 결국 아버지 방에 들어가,
잠든 그가 꼭 쥐고 있는 사진첩을 빼주고...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꺼준 뒤 ...
잠깐 이나마 무슨 소리를 하게 되었다.
「아버지...
그 소리를 계속 들으면 ...
그 소리에 깊이 빠지면...
‘어떤 거짓 존재' 를 느낄 수 있게 돼.
그 존재와 함께
그 소리에 잠식되어 가면...
우린 붉은 세계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게 돼.
우린 붉은 세계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게 돼.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어디까지나
'그 순간'
뿐이라는 것이야..
.
그러니 아버지... 그곳에서 꼭 나와...
나도 언젠가는 꼭 나갈 테니까.」
아버지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왜 그의 사진첩을 꼭 쥐고 있는지도...
[AM 7:10]
오랜만에 야키의 비릿한 유혹이 대뇌에서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그저...내 안에 ‘흰색 옷을 입은 왕’의
깊은 미소가
잠시나마 느껴질 뿐이었다.
2. 연회
중세시대의 한 연회장 , 앳된 외모의 한 화가 소년이 연회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은 귀족의 부탁으로 궁내의 모습을 그려주기로 하였다.
연회장은 화려한 옷을 입은 가지각색 체형의 귀족들과, 요염한 여인들의 환락의 술판이 이미 크게 벌어지고 있었다.
소년은 연회장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했다.
소년은 눈앞에 보이는 상황을 - 자신의 상상으로 그림 그리듯이 그려내는 (이미지화 내는)
-예술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소년은 눈앞에 연회의 장면을 이미지화하기 시작하였다.
소년의 눈에는 잔뜩 취해 이리저리 뒤뚱대는 귀족들은 왠지 술을 물처럼 여기는 '물고기' 들로 보였고 ,
그 주위에 요염하게 춤을 추는 여인들은 '적색 꽃'
들로
보여졌다.
* * *
연회장 주변의
모든 술잔들이 기울어지며 바닥에 붉은 술을 흘려보냈다.
붉은 물이 바닥에 점점 차오르면서 연회장
주변을 잠식해 나갔다. (소년의 눈에
이
것은
‘적색의
강’ 같았다.)
바닷속에는 물고기들이 눈이 완전히 풀린 채로 움직임 없이 고정 자세로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고 그 주변에 적색의 꽃들이 피어 있었는데, 꽃들은 고개를 숙인 채 흐느적거리며 희한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호황 찬란한 금은보화들이
강
위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
강
주위에 거품이 일면서 어떤 야릇한 존재가 나타났다. 그 존재는 단숨에 소년의 눈에 확 들어왔다. 신비롭고 요염해 보이는 여성이었다.
여성은 고혹적인 붉은 머릿결에 눈꼬리는 치켜 올라가 있었고, 도톰해 보이는 입술은 관능적인 매혹감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여성의 등장에 갑자기
강
위를 흘러가던 금은보화들이 마치 거센 태풍에 빨려 들어가듯 그녀 주위로 달라붙어 갔고, 적색의 꽃들은 희한한 춤에 율동에 리듬감을 더해 가며 (박자감은 영 엉망이었다.) 춤을 추었다.
여성은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벌렸다. 그러자 둥둥 떠다니던 물고기들이 갑자기 파닥닥 움직이며
마구잡이로 튀어나와 여성의 품속에 뛰어 들어갔다.
그녀의 요염한 미소가 물고기들의 기분을 온통 사로잡고 있었다.
적색의
강은
순식간에 여성의 품속에 어떻게든 안기려는 물고기들의 쟁탈전으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비늘들이 서로 부딪히는 쇠 소리는 유리를 긁는 끼긱 소리보다 더 불쾌한 음을 내었다.
그녀의 품속에 들어가 쟁취를 얻은 물고기들의 게걸스러운 입에는 금은보화가, 눈에는 적색의 혈관이 급속도록 퍼져나가며 여성이 주는 황홀감에 도취되어 갔다.
여성의 표정은 감미로운 승리의 짙은 미소가 짙게 지어졌다.
그 유혹에 빠진 물고기 중 몇몇은 후회스럽다는 듯, 바둥바둥 거리며 애처롭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뒤늦게라도 빠져나오고 싶어 하는 듯한 비통에 찬 눈빛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나올 수... 아니, 나오
지
않았다.
입속에 물고 있는 금은보화가 뭔가 아쉬운 듯, 놓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여성이 고개를 들어 눈을 치켜들었다.
그 눈빛의 시선은 분명 소년을 보고 있었다.
소년은 그 눈빛의 의도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어서 빨리 자기 품에 안기라는 무언의 신호라는 걸...
하지만 소년은 쓴 미소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여성의 얼굴이 일그러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번개 맞은 나무의 지지직 흔들림 현상처럼 몸체가 마구 비틀려갔다
그리고 여성은 서서히 두쪽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여성 주위에 붙어있던 물고기들은 피부가 창백한 먹색으로 변해 가더니, 사시나무 떨듯 몸을 바르르 떨며 무더기로
강
에 떨어져 갔다. 떨어지는 물고기들의 비명소리는 쉽게 지우지 못할 환청처럼 소름 끼치게 울려왔다.
* * *
소년의 눈앞에 이미지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떨어진 물고기 중 하나가... 가물가물 하게 점점 소년 앞에 다가오고 있다...
그 물고기는... 술에 잔뜩 취한 뚱보 귀족으로 변해 갔다.
[흐흐... 꼬마야. 너도 이리 와서 같이 어울리지 않으렴?]
소년은 괜찮다는 표시로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소년의 속내는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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