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강좌를 열었다.
결과적으로 매우 훌륭한 강의였다.
은행 ATM기기의 목소리를 녹음하셨다는 이 강사님은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부모님이 보여주신 특별한 교육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발공장에서 일하는 소시민으로 자식들을 모두 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도록 키웠다는 점에서 정말 큰 감동이 느껴졌다.
경쾌한 부산 사투리, ATM기기 목소리 등 현란하게 변화하는 다양한 목소리에
두 시간이 넘는 강의는 순식간에 끝났고, 그래!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늘 밝고 긍정적인 말로
격려하고 다독여야겠다! 다짐을 했다.
가끔 TV에서 나는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참고 다 이겨내고 성공했어요~ 나처럼 하면 여러분들도 성공할 수 있어요~~~ 하며 잘난 척인지 강의인지 헛갈리게 하는 강사들도 있는데, 그래도 이 분은 그런 거 없이 공감할 수 있는 소소한 에피소드로 학부모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강의 함께 들은 나의 육아 동지들도 강의가 좋았다며 역시 오길 잘했다고 한다. 우리는 복어 콩나물국밥집에서 급히 점심을 해결하고 아이들을 챙기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 대화에서 어떤 엄마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아까 그 강사 분 우리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데, 자기 자식 얘기는 왜 안 하죠? 궁금하네”
그러게! 생각해보니 남편 이야기, 부모, 형제 이야기는 했는데, 자식 이야기는 안 했던 거 같다.
강의 스타일로 봐서는 이렇게 이렇게 했더니 우리 아이가 뭐가 됐네요! 예를 들어 지금은 유엔에서 일해요, 난민을 위해 봉사해요, 뭐 그런 대단한 스토리가 아니어도 괜찮았을 거 같은데 말이다.
나는 그분의 자식들에 대해 조사를 해볼 생각도 없지만 어쨌든 이제 학부모 연수에 다니는 강사들은 자기의 자식의 성공도 스펙이 된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어마어마한 부담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내가 뭔가를 쓰는 일을 했었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논술전형으로 대학을 갔다고 하니
어떻게 간 건지 궁금해도 하고, 엄마 덕분에 간 거 같다며 말하기도 한다. 영향을 하나도 안 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좋은 영향만큼 나쁜 영향도 줬을 것이다. 오히려 어떤 논술학원을 다녔는데 거기서 깨달음이 왔다고 나한테 말한 적은 있다.
어쨌든 둘째 아이를 키우며 만난 육아 동지들 중 몇몇에게는 내가 방송작가를 했었다고 말한 적이 있긴 하다. 일한 기간에 비해 뭐 대단히 유명세를 떨친 것도 없었는데, 요즘 내 방송작가 경력이 다시 회자되는 느낌을 받는다. 학부모 모임이나, 동네 육아 동지 동생들이 엄마가 '쓰는 사람'이라서 딸이 논술로 합격을 했다며 나를 치켜세워주는 것이다. 솔직히 기분이 좋다! 나이를 먹을수록 칭찬 들을 일이 없어지니까... 작은 칭찬에도 마음이 촉촉해진다.
입시를 향한 여정은 속이 타들어가는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는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온다. 고삼 뒷바라지는 내가 지금까지 했던 수많은 일들 중 최고로 난의도가 높은 일이었다.
딸이 아주 어렸을 때, 뭔가 쓰고 읽는데 토대를 만들어준 부분에 대해서는 엄마로서 어느 정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정작 우리 아이는 인정하기 싫다고 한다. 흑. 그래, 너 잘났다! 그래도 엄마가 너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운전 열심히 했고, 도시락 잘 쌌고, 눈치 보면서 네 말에 열심히 맞장구친 거, 그건 인정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