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몇 년 말고 BC 몇 년 할 때, BC는 Before Christ지만, 요즘 나에게 BC는 Before Corona다.
비포 코로나 시절엔 동네 육아 동지들과 오전에 차도 한잔 마시고, 오후엔 하교한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해 질 때까지 놀면서 지낸 적이 있었다.
하교한 아이들과 엄마들이 놀이터에서 돗자리를 펴고 간식을 함께 먹으며 놀. 았. 다?!
와우... 이런 시절이 있었다니.. 아! 비포 코로나 시절이 그립다.
그 동지들과 1년째 카톡으로만 접선을 하며 밥 해 먹는 메뉴들, 사는 이야기를 공유하며 지낸다.
카톡으로라도 사는 얘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한 엄마가 카톡방에서 이런다.
"애들 문제집 풀고 있는데 속 터져요 진짜 열불 나서 못하겠어요. 엉엉엉"
아... 이 분야에서는 정말 내가 무기징역 감 엄마인데... 그걸 카톡으로 우리 어린 육아 동지들에게 다 말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말을 안 해주는 건 또 직무유기 같고... 이상한 책임감이 마구 용솟음치는 것이다. 그래 오늘 제대로 망신살 좀 뻗치자!
큰 아이를 키우면서 처음으로 문제집을 찢은 건 아이가 다섯 살 즈음이었던 거 같다.
한글 공부를 시키는데, 기탄 어쩌고.. 뭐 그런 한글 학습지였다. 생각해보면 아이가 한글을 이해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냐 말이다. 하기 싫다고 짜증을 내고 입을 꾹 다물고 고집을 부리고... 나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라 결국 그 학습지를 찢고 아이도 울고 나도 울고... 이후 다시는 한글 교육을 하지 않았다.
다섯 살 여섯 살... 머리에 리본을 꽂고 놀이터에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아직도 그때가 생각난다.
저렇게 귀엽고 작은 아이였는데, 내가 무슨 짓을 했던 건가... 한글 그까짓 거 천천히 그냥 알게 했으면 좋았을 것을 결국 한자도 못 가르치지고 망쳐버렸다. 결혼하고 금방 아이를 낳고, 살림이 뭔지, 육아가 뭔지... 몰랐었다.
남편도 마찬가지. 덜컥 아빠가 됐지만, 아빠 노릇이 뭔지 몰랐다.
기억나는 장면 하나. 아이가 아파 굉장히 쓴 약을 먹여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입을 꾹 다물고 어찌나 질기게 고집을 부렸는지... 내가 포기를 하고 나가 떨어졌지자 남편이 화가 나 아이에게 큰 소리로 약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막 설명했었다. 그 설명을 듣고 아이가 입을 열거라고 생각했다니... 지금 생각해도 참 어리석은 엄마, 아빠였다.
그러다 초등학교가 되면서 드디어... 수학 문제집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초등 수학도 생각보다 어렵다. 3학년 문제집에 세모 네모 동그라미... 막 그려 넣고 함수 문제를 풀라고 한다. 너무들 한다. 너무들 해. 암튼 그런 어려운 수학 문제집을 풀며 아이와 나는 씨름을 시작했다. 나는 정답지를 보면서 아이에게 문제를 푸는 방식을 설명하기도 했는데, 가끔은 잘 따라오기도 했지만, 어떤 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오늘은 엄마 속을 진짜 확 뒤집어 버리겠어요!! 결심이라도 한 듯 고집을 부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인내심은 바닥이 났고, "도저히 안 되겠다. 우리 수학 공부 그만 하자!" 하며
아이의 수학 문제집을 전부 다 들고 집을 나왔다.
그리고 재활용 수거하는 곳으로 가 그 문제집을 다 버리고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
아이는 엉엉 울고, 나도 울고... 결국 아이가 재활용 수거장으로 가서 그 문제집을 다 가지고 들어왔다.
세월이 흘러 그 아이는 대학생이 되고 지금 우리 집 늦둥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됐다.
이 아이는 가끔 응애응애를 한다. 아기 때 고모가 만들어준 이불의 한 귀퉁이를 "끄트리나"라고 부르며
만지고 쪽쪽 빨고 냄새를 맡는다.
"엄마, 나 3학년 때 기억나?"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큰 아이의 한마디... "엄마가 미안하다..."
수학은 어려운 문제집과 씨름하며 풀고 또 풀었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사회 과학 국어 문제집들도 출판사 별로 다 구매해 풀었다. 그렇게 시험 준비를 해서 굉장히 좋은 점수를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조금만 더 인내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가 밀려온다.
비포 코로나 시절엔 학원 한두 개 정도는 보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마저도 쉽지 않다.
그러니 대부분 아이 공부를 엄마가 책임진다. 나는 또 초등학교 3학년인 꼬맹이와 씨름하며 수학 문제집을 푼다. (정말 울고 싶다!) 문제집 가득 그림을 그려 놨다. 아무 소리 없어 뭐하나 보면 멍 하고 앉아 있다. 뭘 한참 보길래 뭘 보나 보니 지 손톱을 바라보고 있다.
"엄마가 문제 풀랬지? 그림 그리랬어?
수학 문제 풀라는데 왜 멍 때리고 손톱은 또 왜 들여다보는데!!!"
속에서 불이 나는데, 갑자기 과거 피해자인 큰 아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며 나를 째려본다.
"엄마... "
아이고 무섭다. 간담이 서늘하다.
"미.. 미.. 미안... 엄마가 또 왜 이러나 모르겠네..."
육아를 하면서 너무 힘든 시간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모유수유. 유축기 끌어안고 엉엉 울었던 거. 그거 힘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아이랑 수학 문제집 같이 풀며 공부 가르쳤던 거... 그 속 터지는 건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그래도 '그 아줌마'처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깊은 숨 내쉬면서 천천히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