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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Sep 25. 2020

언니, 가죽재킷 입고 우리 학교에 와 줘!

초등학교 3학년인 우리 집 둘째 아이가 브런치에 올리는 내 글에 삽화를 그려주고 있다. 

그림 그리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하루 종일 엄청난 양의 그림을 매일매일 그리고 있다. 

오늘도 눈동자에 레이저가 나올 듯 열정적으로 뭔가를 그린다. 


"어? 이 그림 뭐야?" 

"이거... 언니가 가죽재킷 입고, 가죽 부츠 신고 학교에 와서 못된 친구들 앞에서 잘난 척하는 거지"

 

며칠 전, 이런 일이 있었다. 둘째 아이가 유치원도 같이 다니고, 놀이터에서도 늘 함께 놀던 친구 두 명과 

만든 미니 톡 채팅방이 있다. 한 친구가 우리 애와 둘이서 대화를 하던 중 기분이 나빴는지 

톡방을 나가버려서 우리 애가 당황한 적이 있었다. 왜 나갔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아이가 걱정을 하길래 

그냥 나는 신경 쓰지 말라고만 했다. 며칠이 지나 우리 아이는 없이 나머지 두 명의 아이가 그때 그 톡방에서 대화를 하는데 그때 그 톡방을 나간 아이가 당시 톡방에 없던 친구에게 우리 애 때문에 짜증이 나서 톡방을 

나갔다고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자 그 친구도 왠지 쩔쩔매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더니... 둘이 같이 톡방을 나가버렸다 그 대화는 우리 애 미니폰 톡방에 다 남아 있고, 그걸 확인한 우리 아이는 속상하다며 

이게 바로 학교 폭력이라고 펄펄 뛴다. 그러면서도 뭔가 불안한 눈빛. 아마도 나 외톨이 되면 어떡하지?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 나도 그 대화를 보고 나니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걱정도 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다.

두 아이 모두 놀이터에서 함께 놀며 어린 시절을 잘 보낸 아이들인데... 벌써 아이들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커버린 건가? 길게 이어진 코로나 상황에 등교도 못했다. 요즘은 거의 만난 적도 없다. 게다가

애들 톡방이란 것이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야'를 스무 번 보내기도 하고 하트를 50개씩 보내기도 하는 맥락 없는 방인데, 뭘 어떻게 했길래 짜증이 났다는 건지 알 수가 있나! 엄마의 공감만으로는 부족했던지 

이번엔 언니한테 쪼르르 달려가 그 톡을 보여준다. 그러자 언니는 자기가 임꺽정, 홍길동이라도 된 듯 버럭버럭 하며 난리다. 큰 아이 고3 때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번듯한 대학에 꼭 합격해서 멋진 대학의 '꽈잠'을 입고 동생을 데리러 학교에 꼭 가겠다고! 자기 친구들 중에도 언니가 다니는 대학을 자랑하는 친구들이 있었다며, 그때 자랑 못하는 친구들 보면서 나는 꼭 동생의 자랑이 되고 싶었단다! 작년, 비포 코로나 시절엔 실제로 '과잠'을 입고 등굣길에 동행을 하기도 했고 하교할 때도 몇 번 나타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우리 아이가 입은 그 옷이 대학교 '과잠'인지도 모르고 그냥 "너네 언니 키 크다...!" 하더란다. 집에서는 11살이나 많은 언니를 발로 차기도 하고 한마디도 안 지며 덤비던 동생도 그런 날은 언니가 자랑스러운지 입꼬리가 씰룩씰룩 올라가서는 집으로 돌아와 언니 심부름을 척척해주며 알랑방귀를 빵빵 뀌더라는.   


솔직히 우리 큰 아이는 사회성이 탁월하게 좋은 아이가 아니어서 늘 어깨가 축 쳐 저서 학교를 다녔었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아본 적도 없다. 심지어 큰 아이를 키울 땐 우리가 이사를 많이 가, 전학을 많이 다녔다.  

심지어 초등학교는 네 군데를 다녔다. 생각할수록 정말 미안한 일이다. 친구 사귀는 것도 기술이 필요한데, 우리 아이에겐 그런 역량이 별로 없었던 걸까 주변에서 은근히 아이를 힘들게 하는 친구도 있었고... 힘든 시간이었다. 동생도 비슷한 일을 겪을까 봐 언니로서 뭔가 힘이 돼주고 싶었나 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들을 보면, 저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중간 정도의 치마 길이에 화장도 하지 않은 누가 봐도 모범생 느낌의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저 아이에게 과연 좋은 친구가 있을까? 학교 생활 괜찮을까? 화장이 찐하거나, 눈빛이 세거나, 치마가 아주 짧거나, 욕이 술술 나오는 뭐 그런 센 언니의 조건을 갖춘 아이들도 힘들어 보이긴 마찬가지다. 그 나름의 공동체 속에서 뭔가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건 아닐까? 그러면서도 혹시 힘든 건 아닐까? 

신발 갈아 신을 때 친구들이 안 기다려줄까 봐 걱정하진 않을까? 


딱 그땐, 정말 어른이 그 세계에 개입할 수도 없다. 우리 아이 마음을 조곤조곤 힘들게 하는 야무지게 못된 아이도 길에서 우연히 만나면 얼마나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는지 모른다! 묻고 싶었다. "너는 왜 그러니? 우리 아이 어떤 점이 싫은 거야? 말해줄 수 있니?" 하지만 대놓고 폭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확실하게 뭐라고 말하긴 애매한 방식으로 괴롭히는 걸 도대체 어떤 말로 이야기해야 할지... 그냥 다 혼란스러웠다. "아닌데요" 하면 끝이니까.  


하루 동안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톡방에 있던 그 함께 나간 친구의 엄마와 대화를 시도했다. 나와는 친분이 있던 엄마라 다행히 속상했겠다며 공감을 해준다. 살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해준다. 듣고 나니 마음에 응어리가 풀린다. 이게 어디야! 딸아이도 그 친구에게 사과를 받고, 그새 그 친구에게 까칠한 톡을 보낸 우리 아이도 사과를 했다.  짜증 나서 나갔다는 친구의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거기까지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때 뭔가 엄청나게 기분 나쁜 사정이 있었겠지 할 뿐. 


 큰 아이를 키우면서도 느낀 거지만, 내 아이의 친구 관계 때문에 걱정하고, 고민하는 엄마들이 정말 많다.  


그래도 아직은 초등학교 3학년이니까, 동네 지나가는 개랑도 놀고 싶은 아이들이니 어쩌면 놀이터에서 그 문제의 친구를 만나도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막 뒤엉켜 놀면 좋겠는데. 그럴 수 있을까? 아이들 마음의 그 뾰족한 그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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