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에디터 님과 혼자 일하는 것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분은 혼자 일하다가 새로운 직장으로의 입사를 앞두고 계셨는데 혼자 하는 것은 나중에도 할 수 있지만 새로운 직장에 도전하는 건 지금밖에 못 하니까, 라고 말씀하셨는데 너무 멋있었다.
나는 사실 다신 직장에 못 들어갈 것 같아서 혼자 일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10년 차, 과장으로 일하다가 '취준생'으로 돌아갈 용기가 없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나는 절대 혼자 일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걸 다 합쳐서 말해보자면 '게으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말하면 친구들이나 지인, 동료들은 어이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몇몇 소수의 친우들과 가족들만 고개를 끄덕이고.
사실 나는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는 아주 많은 일을 하고, 벌리고, 이루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열정이 정말 대단하세요, 어떻게 그걸 다 하세요, 하는 말을 많이 듣지만 사실 나는 쓸데없이 성실한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의 범위가 넓고 의무감이나 책임감이 큰 편이다. 절대 부지런하거나 열정이 넘치는 건 아니다.
그러니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좀 많이 귀찮고, 항상 울면서 수습을 하는 편이다. 이 성실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감시, 강제, 마감 기일 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마법이라서 회사에서 정한 기일이나 상사의 강제, 후배의 기대 같은 것이 없으면 실천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생각했다. 혼자 일을 하기 전까지는.
해보니까 별 거 아니다.
다른 사람의 강제보다 더 크게 나의 성실에 작용하는 요소가 있었으니,
바로 돈이다.
생계랑 직결되니까 게으름이고 귀찮음이고 나발이고, 열심히 하게 되었다.
혼자 일하는 것의 장점 1. 생각할 시간이 많다
나는 늘 분석하고 분석하고 분석한다.
내 감정도 분석하고 다른 사람의 행동도 분석하고, 저사람은 왜 저럴까 세상은 왜 이럴까.
아주 잠시도 쉬지를 않는다.
그리고 이런 사색과 몽상을 아주 즐기는 편인데 혼자 있다보니 더 생각이 이리 튀고 저리 튄다.
혼자 있으니 쓸데없는 생각이 없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쟤네는 싸우나? 누가 전화를 받고 있네, 뭐 이런 것들이 없으니까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혼자 일하는 것의 장점 2. 잔잔한 호수
생각은 요리조리 튀지만 감정만은 정말 정적이다.
쉽게 화내지 않고 웃을 일도 그렇게 많지 않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얻는 전형적인 E 타입인 나한테
어쩌면 어려운 환경일 수 있다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또 그렇지만도 않다. 그냥 다 그러려니, 그럭저럭 괜찮다.
나는 늘 잔잔한 호수같은 삶을 꿈 꿨다.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에 보면 주인공 탄지로의 마음 속 풍경이 나온다.
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서 사람을 괴롭히는 나쁜 놈들이 탄지로의 마음 속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에는 아주 잔잔한 호수와 푸른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내가 꿈 꾸던 그 상태같어!
요즘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의 나날들이 잔잔한 호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혼자 일하는 것의 장점 3. 시간 관리
혼자 일하기 때문에 스스로 일정을 조정할 수 있다.
회사 다니면서도 나는 일정 조절을 참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과는 또 다르다.
일을 하기 싫거나 컨디션이 별로인 날에는 3시에 퇴근한다.
월요일 마감이 있으면 일요일에도 출근한다.
아주 간단한 건데 야근을 하거나 휴일에 출근을 해도 그다지 억울하지가 않다.
내가 결정해서 내가 일을 하는 시스템이라서 결국 책임도 다 나에게 있다.
사실 단점들도 좀 있는데, 오늘은 장점에 대해서만 적어야지.
그래도 스스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많이 한다.
이제 돈을 벌 일만 남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