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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짱 Mar 20. 2022

유튜브 매니악 - 프롤로그

난 그냥 유튜브가 너무 좋아

유튜브와 함께한지도 어언 10년이 넘었다.

나는 2011년 12월 20일 유튜브에 처음 가입했고, 유튜브 레드(현 유튜브 프리미엄)가 처음 등장한 2015년 이후로는 매달 결제해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다. 기능을 뭐 많이 쓰지도 않지만 단지 광고를 없애주고 백그라운드 재생이 된다는 두 가지 강력한 장점만으로도 매달 돈을 지불할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나는 종종 내 인생에 가장 잘한 선택 베스트 3 중 하나로 유튜브 프리미엄 구독을 꼽기도 한다(다른 두 가지는 서른 살에 인간관계를 정리한 것, 사랑니 4개를 모두 발치한 것이다).


나는 조용한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아침에 씻고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 자기위해 침대에 누운 순간부터 잠이 들기까지의 찰나, 어딘가로 이동하는 대중교통 속에서 늘 유튜브를 튼다.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기보다 그 잠깐잠깐의 시간이 너무 아깝다. 내가 죽기 전까지 못보고 끝날 세상이 너무 아쉽고 아까워서 못견디겠다. 오늘 하나라도 새로운 것을 보지 못하면 억울해서 잠이 안 온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났어! 너무 아까워! 이런 성정이 나를 출판 편집자의 길로, 유튜브 마니아의 길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유튜브에서 나는 어떤 아이의 이모가 되기도 어떤 강아지의 친구가 되기도 한다. 늘 짧고 단정하게 정리된 내 손톱 위에는 오색빛 네일아트가 올라가고 이번 봄에 유행하는 코디를 입어보며 옷을 고른다. 어떤 날에는 몰랐던 브랜드의 쇼케이스에 참석하고 때로는 새로운 카페를 런칭하는 여정을 함께하는 일도 적지 않다. 나는 훼손된 미술품을 복원하는 과정을 알고 있고 미국 영주권을 따는 것이 얼마나 피말리는 것인지 이해한다. 퇴사하는 젊은 친구들의 아픔에 같이 분노하고, 랜선으로만 만난 누군가의 결혼은 진심으로 축복한다.


내가 할 수 없는 것, 몰랐던 세상이 유튜브에 다 있다. 그 안에서 나는 타즈매니아에서 캠핑을 할 수도 있고 맨해튼 뒷 골목에서 목공으로 테이블을 만들 수도 있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 중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골라서 보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유튜브에 빠져 산지 10년이 지나니 생전 관심갖지 않았던 것이나 이게 뭐지 의아한 것들까지 영상으로 괜히 한 번 옅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가령 나는 요리를 하지 않고 캠핑은 절대 체질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요리나 베이킹 영상, 캠핑 영상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마구잡이로 찾아서 보곤 한다.


그러다보니 유튜브 속에서 정말 '이 사람은 뭐지?' 싶을 정도로 한 길을 깊게 판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속된 말로 '이것이야말로 찐 광기다' 싶을 정도로 매니악한 사람들. 문득 그런 사람들을 소개하는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극한을 찍은 누군가의 모습에 취향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잘 한다고? 이렇게까지 한다고? 싶은 장인의 모습들. 마음 한켠에는 나만큼 유튜브 컨텐츠를 잘 소개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거야 하는 마음도 있다. 유튜브에 대한 내 마음 역시 '찐 광기'를 띄고 있는지도 모른다.


버려진 60년대 커피 그라인더를 주워다가 분해하고 녹을 제거하고 닦고 칠해서 결국 커피콩을 가는 사람, 초딩 게임이라고 우스운 취급을 받던 게임 마인크래프트에서 블럭 50만 개를 사용해 새로운 건축물을 창조해내는 사람, 새를 보는 것이 좋아서 비둘기를 보기 위해 지리산까지 달려간 사람(물론 그 비둘기가 전국에 100개체밖에 남지 않은 희귀종이긴 했지만 그래도 비둘기), 하다하다 캠핑장에서 김장을 담그는 사람까지. 이미 유명한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그들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봤는지. 내 광기 어린 눈에는 그들이 어떻게 비췄는지 이야기 하고 싶었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볼 때는 아무 생각 없이(당연하게도) 보는 편이지만, 가끔 기획자로서의 자아가 등장할 때도 있다. 이걸 이렇게 책으로 만들어 볼 수도 있겠다거나, 어떤 사람의 한 부분을 보고 철학적 사유가 피어난다거나, 콘텐츠를 기획하는 관점에서 이 콘텐츠가 좋은 이유를 분석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중에서도 이게 나의 성장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긴 한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유튜브는 넓다. 정말 넓다. 유튜브에 하루에 올라오는 영상을 다 보려면 82년이 걸린다. 이 수치는 2019년 ytn 뉴스에 등장하는 숫자고, 2017년 월간 조선에서는 66년이라고 했으니, 2022년인 지금은 100년 치를 훌쩍 넘을지도 모른다. 유튜브에 집착하고 매일 유튜브를 보고 유튜브에 정말 진심인 에디터는 어떤 영상을 보는지, 그 영상에서 무엇을 발견하는지, 혹시 궁금한 사람이 있을까?

궁금하지 않아도 뭐, 일단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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