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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작가 Sep 20. 2023

두 번째 여행지도, 혼자, 유럽이다.

회사 또 안 가고 서유럽 가기-1

 


 2022년 6월 7일 인천 국제공항에서 밤 11시 40분 출발 비행기였다. 회사는 5월까지만 다니기로 했고, 한 달 동안 여행 계획을 짜는데만 매달렸다. 혼자 31일이라는 시간을 유럽 땅에서 머물러야 하는지라 알아볼 거, 예약할 거 투성이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왜 이렇게까지 준비하면서 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문마저 들었다. 그렇지만 비행기는 2월에 예매를 끝냈고, 일단 저질러 놓은 다음 행동을 계획에 끼워 맞추는 성격이라 '어차피 가야 되니까 한다'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마지막 여행지는 3년 전 동유럽이었다. 뒤늦게 해외여행에 눈을 뜨고 매년 가야지!라는 마음을 먹자마자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았다. 모두가 그랬겠지만 처음에 발발했을 때는 몇 달 지나면 잠잠해지겠지 싶었다. 한치 앞을 못 보고 2020년 여름 휴가는 태국 치앙마이에서 일주일 동안 지내볼까? 같은, '꿈'을 꾸기도 했다. 한국을 떠났던 2022년까지도 마스크를 빼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시간이 지나고 퇴사와 함께 바로 유럽 여행을 감행했다.


 그때만 해도 해외여행 갈 때 2차 백신을 맞은 뒤 몇십 일 안에만 입국이 가능하거나, 3차 백신까지 무조건 맞아야 한다거나, 입출국 때 반드시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한다거나, 영문 백신 인증서가 있어야 한다거나 하는 까다로운 조건이 다 붙어 있었다. 내가 입국할 나라인 포르투갈은 저 요건을 모두 충족했어야 했다. 프랑스나 스페인, 스위스 같은 나라들은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2월에 예매할 당시에 이 정도로 규제가 안 풀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출국하기 직전에 한국에서, 혹은 한국으로 들어올 때 코로나에 또 걸리면 일이 커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난 퇴사한 몸이니까 유럽에서 양성 판정을 받으면 그냥 더 있다가 오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럴 땐 평소 가지고 있던 약간의 안전불감증이 도움이 된다. 어쨌든 3년 내내 참아서 원기옥처럼 커져버린 여행병을 터뜨리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지난한 시간을 지나 드디어 한국을 떠나는 날이 왔다. 인천공항 환전소와 유심받을 장소가 생각보다 일찍 닫는 탓에 8시까지는 공항에 가야 했다. 밤 비행기라 엄마 아빠가 공항으로 데려다주었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연식이 10년도 더 된 아빠 차는 블루투스는커녕 AUX도 고장 나 있던지라 차에 있던 유일한 CD를 플레이어에 넣었다. 무명의 누군가가 부른 윤도현의 사랑 two가 들려왔다. 해가 하늘 중턱에 걸려있는 저녁 일곱 시의 아라뱃길 위를 길거리 가수의 목소리를 들으며 엄마 아빠와 달렸다. 트렁크에는 필요 없는 짐까지 꾹꾹 눌러 담은 26인치 캐리어가 실려 있고, 내 몸 위에는 보조배터리, 여행 내내 두 페이지밖에 읽지 않았던 책, 기내에서 쓸 화장품, 칫솔, 치약, 안경, 각 나라의 바우처 종이가 모여있는 파일철 등이 들어있는 검은색 아디다스 백팩이 안겨있었다. 진짜 가는구나.



 저녁 여덟 시쯤 공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더 사람이 없었다. KLM항공은 인천공항 제2 터미널이었는데 출국하는 사람을 샐 수 있을 정도였다. 누군가는 무섭지 않았냐고 묻겠지만 그때의 내게 어땠냐고 묻는다면, '아무 생각이 없다' 정도일 것 같다. 물론 출국장을 떠날 때까지만 그랬다. 익숙한 언어가 들리고 눈에 익은 글자가 간판으로 달려있는 땅에 발이 붙어 있으니 3년 전 한국을 떠날 때의 낯선 감각이 깨어나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 관련 서류와 여러 가지 예약 준비 등으로 꽤 지쳐있어서 그냥 빨리 가고 싶었다. 엄마 아빠에게 양팔을 올려 bye bye- 인사를 크게 한 뒤 유유히 출국 보안 검색대를 지나갔다.


 밤 11시. 비행기를 탑승했다. 13시간 반 정도 암스테르담까지 간 뒤 포르투갈로 환승하는 비행기를 타는 루트였다. 기내의 한국인은 나를 포함해 두 명 정도인 것 같았다. 그때부터 서서히 묵혀뒀던 낯섦의 세포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암스테르담 도착은 6월 8일 오전 7시경이었다. 이제 한국의 시간에 맞춰 24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7시간 정도는 느리게  예정이었다. 열몇 시간 정도만 떠나면 평생을 머물던 시간에서 벗어나서 살 수 있다니. 여행은 참 관성을 완전하게 거스르기에 좋은 도구다.


 한참 졸다가 잠에서 깨자 노을 지는 하늘 위에 비행기가 떠 있었다. 국적은 모르겠지만 유럽 어느 나라에 살고 있을 옆자리 남자애는 내가 핸드폰 카메라를 들자 귀엽게도 자신의 등을 바짝 의자에 기대 주었다. 그는 어딜 가는 것이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을까, 여행을 가는 것이었을까. 우리나라에서 이방인이었을 그는 오랜만에 익숙한 향기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을까. 이젠 내가 이방인이 될 차례였다. 윤도현의 사랑 two를 부른 무명의 아무개처럼, 머나먼 타지에서 동양의 아무개가 될 준비가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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