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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숲 Nov 13. 2020

동네 공원으로 가을 소풍 떠나는 미국생활

창문 앞에는 아주 큰 도토리나무들이 여러 그루 있다. 얼마 전까지 도토리를 툭툭 쉴 새 없이 떨어뜨리더니, 요 며칠 새 낙엽 떨구는 일로 바쁘다. 초록 잔디는 울긋불긋 낙엽 이불을 덮었고, 그 폭신한 이불 위에 다람쥐들이 굴러다닌다. 지천이 도토리라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다람쥐들은 웬만해서 사람 무서워하는 일도 없이 제 살찌우기에 바쁘다. 아무렴, 겨울을 나려면 든든하게 먹어줘야지. 밖에 뭐가 지나간 것 같아 창문을 홀끗 바라보면, 다람쥐들이 도토리나무를 오르내린다.


내 고양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늘 반려인을 이겨 먹는 고양이는, 오늘도 창문을 여는데 성공하고 떨어지는 낙엽과 굴러다니는 다람쥐를 땡그란 눈으로 구경하며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는다. 나는 그저 창문을 열어 놓은 채로 전기이불을 덮으면 그만이다. 우리 집 묘르신이 행복하면, 집사도 행복하다.


참, 아름다운 날들이다.


진행 중인 참담함 속에서 일상을 위한 일상을 지내는 나날이지만, 그래도 참, 아름다운 날들이다. 하루가 다르게 선명한 색으로 하늘을 물들이는 단풍과 더 짙은 색을 하고 우아하게 떨어지는 낙엽에 눈을 뗄 수가 없는 계절이다. 바람 불지 않아도 떨어지고, 바람이 불면 후드드득 둥실거리며 떨어지는 낙엽들이 아까울 정도로 아쉽다. 마음 같아서는 달려나가서 떨어지는 낙엽을 다시 매달아 주고 싶은 심정이다.


매일 산책 다니는 공원은 더 다채롭다. 불타는 빨강, 개나리 같은 노랑, 하얗게 보일 만큼 밝은 노랑, 나무색 같은 빨강,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 주황, 그 옆에 또 불타는 빨강. 산책로를 뒤덮은 낙엽을 밟으며 거닌다. 바스락바스락,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어찌나 경쾌한지 아이처럼 즐겁다.


이맘때쯤이면, 애런과 바이킹 코스가 잘 되어 있는 큰 공원으로 나가 자전거를 타다가, 준비해간 도시락을 까먹곤 했다. 한국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친구건 동생이건 붙잡고 아까운 산에 올라, 그 정상에서 꿀맛 같은 김밥을 함께 먹었을 것이다. 하산 후 파전과 막걸리는 말할 것도 없다.





올가을, 나는 두 번의 가을 소풍을 떠났다. 매일 가는 산책길에서 “아유, 진짜 요즘 너무 예쁘다!”를 연발하다가 동네 공원으로 가을 소풍을 가기로 했다. 첫 번째 소풍에는 도시락으로 참치김밥을 준비했다. 올봄 심었는데 아직까지도 쑥쑥 잘 자라주는 깻잎을 수확해서 밥 위에 깔고, 그 위에 마요네즈에 촉촉하게 버무린 참치를 가득 올려 돌돌 말았다. 깻잎하면 아주 질색하는 애런도 참치김밥에 들어가는 깻잎은 깻잎인 줄도 모르고 그저 맛있게 먹는다.


김밥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해 평소보다 힘을 내어 공원을 여러 번 돌았다. 땀이 나고 허기가 질 때쯤, 우리는 나무 밑 그늘에 앉아 참치김밥을 먹었다. 소풍 나온 공원이다. 김밥을 먹으며 가만히 앉아, 하늘 구경, 나무 구경, 새 구경을 하고, 바람소리와 새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머물러 앉아 있다 보니, 집 앞 공원인데도 달리 보인다. 가을 소풍에 이만한 곳도 없다 싶다. 이제는 더 못 걷겠다던 애런도 김밥을 먹고 힘이 났는지, 한 바퀴 더 돌고 가잔다. 우리는 공원 한 바퀴를 더 돌았다.


두 번째 가을 소풍에는 달걀말이 주먹밥을 싸갔다. 달걀말이 주먹밥은 참기름과 소금, 김가루로 간을 한 아주 꼬순밥에 참치마요로 속을 채운 주먹밥을 달걀지단에 한 바퀴 말아 만든 주먹밥이다. 



아주 낮은 불에서 달궈진 팬에 기름 코팅을 하고, 그 팬 위에 달걀물을 짧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올려 달걀이 90% 정도 익었을 때쯤 짧고 길쭉하게 만든 주먹밥을 올려 돌돌 마는 것이다. 주먹밥 하나하나에 달걀지단을 말아주는 일은 사실 좀 귀찮다. 주먹밥도 충분히 맛있는데, 왜 그런 수고로움이 필요할까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사족을 붙인다면, 촉촉함의 차이 때문이다. 퍽퍽할 수 있는 주먹밥을 부드러운 달걀지단이 감싸면서, 식감이 아주 촉촉해진다. 갓 만들어서 맛을 본 주먹밥보다, 시간이 지나 공원에서 까먹은 달걀말이 주먹밥이 훨씬 맛있었다.


이날의 공원은 첫 번째 가을 소풍 때 보다 더 짙은 가을옷을 입고 있었다. 저 멀리 알록달록 나무 능선을 바라보며, 준비해간 미소 국물까지 호록, 아주 천천히 도시락과 가을을 음미했다.


비가 온다. 적당히 따뜻하고, 잔디와 산책로에 뽀송한 낙엽 이불이 있는 가을은 마지막일 것 같다. 그땐 또, 비에 젖어 땅에 붙은 낙엽에서 낭만을 찾아봐야지. 괜스레 쓸쓸함과 고독을 논하며 서늘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가을이 올 것이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가을이, 계절이 아름답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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