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덕소덕 : 소심한 덕후들의 소소한 덕질 라이프 24화
팟캐스트 24화는 여기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너무나 잘 알려진 스릴러물의 고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선택했습니다. 사실 너무나 익숙한 제목이지만 아직 제대로 그 콘텐츠를 소비한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이번 기회를 빌어 제대로 읽어보고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택했습니다. 그리고 왜 지금까지 애거서 크리스티가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사랑받는 원동력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니거 섬'이라는 섬에 초대된 인물들이 죽기 시작한다는 것이 큰 이야기의 골자입니다. 각기 다른 직업의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인물들은 그 초대를 한 인물인 U.N. 오웬 부부를 기다립니다(이 이름의 비밀은 이야기가 전개되며 등장하게 됩니다). 등장 인물들이 다같이 모인 자리에서 울려퍼지는 의문의 목소리는 각 인물들의 살인죄에 대해 선고합니다. 그리고 각 인물은 처음에는 각자의 죄목을 쉽게 인정하지 않죠. 그리고 미지의 부부가 도착하기 전에 한 명씩 각기 다른 방법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한 명이 죽을 때마다 테이블에 있는 도기 인형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발견하게 되죠. 그리고 각기 인물이 죽음을 맞이하는 각기 다른 방법 또한 각 방에 붙여 있는 동요의 가사에 따른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최초의 책 제목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가 아닌, <열 명의 흑인 소년Ten Little Niggers>이었습니다. 음.. 요즘이라면 사용할 수 없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이죠? 이것은 후에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로 바뀌어 출판되었습니다. 그리고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Ten Little Niggers>라는 노래도 <Ten Little Indians>로, 그리고 후에는 <Ten Little Soldiers>로 바뀌게 됩니다.
어쨌든 애거서 크리스티가 내세운 제목이 저것이었던 이유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소설 속 모든 죽음이 저 동요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잠깐 그 동요를 살펴볼까요?
10명의 흑인 소년이 식사를 하러 갔다가 한 명이 목이 막혀 9명이 되었다.
9명의 흑인 소년이 밤 늦게까지 깨어 있다가 한 명이 늦잠을 자서 8명이 되었다.
8명의 흑인 소년이 데번을 여행하다가 한 명이 거기에 남아서 7명이 되었다.
7명의 흑인 소년이 장작을 패고 있다가 한 명이 자신을 반으로 갈라 6명이 되었다.
6명의 흑인 소년이 벌집을 가지고 놀다가 호박벌이 한 명을 쏘아서 5명이 되었다.
5명의 흑인 소년이 법률을 공부하다가 한 명이 대법원으로 들어가서 4명이 되었다.
4명의 흑인 소년이 바다로 나갔다가 빨간 청어가 한 명을 삼켜 3명이 되었다.
3명의 흑인 소년이 동물원을 걷고 있다가 큰 곰이 한 명을 괴롭혀서 2명이 되었다.
2명의 흑인 소년이 햇빛을 쬐고 있다가 한 명이 햇빛에 타 죽어서 한 명이 되었다.
한 명의 흑인 소년은 혼자 남았다.
흑인 소년이 목을 매어 아무도 없게 되었다.
섬뜩하지 않나요? 마지막 줄은 결혼했다는 기존 가사에서 개사되어 목을 매었다는 가사로 바뀌어 소설 속에서 등장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나머지 가사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것이 실제로 불려졌던 동요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잔혹하죠. 사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 중 잔혹한 스토리를 가진 것들이 있었던 것을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잔혹 동화가 유행이었을 정도로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들이 더 잔혹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기도 하죠.
소설 속 죽음이 이런 노래를 따라 이뤄진다는 것은 꽤나 긴장감과 몰입감을 줍니다. '그래서 다음은 누굴까?' '다음 노래말의 인물은 누가 될까?'라는 궁금증도 유발하게 되죠. 그리고 소설 속 인물들도 노래에 따라 죽음을 맞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때마다 도기인형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정신적인 압박과 스트레스를 보입니다. 다음이 내가 될 수 있겠다는 불안감, 섬 어딘가에 숨어 있거나 지금 저택 내에 함께 있는 사람 중에 있을 살인마를 생각했을 때 마주하게 되는 두려움과 공포는 강력합니다. 소설 속에서는 점점 이성을 잃어가는 인물들을 보게 되고,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게 되는 인물은 더 큰 고통을 겪을 것을 깨닫게 되죠.
애거사 크리스티 특집으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준비하며 BBC에서 제작한 드라마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를 책과 비교해서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우리에게도 익숙한 만큼, 아마 영국 사람들에게는 더더욱이나 익숙한 콘텐츠를 어떻게 풀어냈을지가 궁금했습니다. 잘 알려진 작품을 재창작한다는 것은 이전에 <오만과 편견>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다른 무언가의 매력포인트가 있어야 하죠. 유명한 작품인만큼 사람들은 그 스토리를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BBC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TV 시리즈는 원작에 충실한 노선을 택했습니다. 스토리를 충실하게 따라 잘 구현하는 방법을 택하고 각 캐릭터의 색을 더 확실하게 입혀 주었습니다. 저는 책을 읽었을 때와 달리 TV 시리즈에서는 인물 중 '베라 클레이손'이라는 인물이 더욱 부각 됐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책에서는 그다지 존재감이 크지 않았으나, TV 시리즈 내에서는 극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시리즈 내에서는 소설과 달리 베라가 식탁 가운데 있는 도기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채게 됩니다.
그리고 소설 내에서는 히스테리를 부리며 불안해 했을 때 뺨을 맞았던 베라가, TV 시리즈에서는 불안에 떨며 히스테리를 부리는 암스트롱 의사의 뺨을 오히려 때리는 캐릭터로 그립니다. 저는 이 모든 변화가 마지막에 밝혀지는 베라의 죄목을 보다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장치로 느껴졌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유산을 받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가르치던 아이를 기꺼이 죽음으로 내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거죠. 저는 이렇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캐릭터를 그려가는 과정에서 여성 캐릭터를 마냥 불안에만 떨고 히스테리를 부리는 인물로만 그리지 않은 부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인물들도 소설보다 더욱 확실한 캐릭터성을 부여 받았다고 느꼈습니다. 인물들의 성격을 좀 더 과장되게, 좀 더 강하게 풀어내면서 그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죄'와 함께 그를 덮고, 은폐하기 위해 거짓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위선, 이중성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생각됐습니다.
앤서니 제임스 맨스턴 - 부유한 집안 출신의 방종한 캐릭터
존 워그레이브 - 까탈스럽고 권위적인 캐릭터
에밀리 캐롤라인 브랜트 - 시혜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스스로를 우월하다 여기는 캐릭터(동성애 캐릭터로 부각하는 시혜적인 캐릭터의 이중성)
필립 롬바드 - 거칠고 거리낌 없는 솔직한 캐릭터
스토리적인 측면에서는 예상 가능한 TV 시리즈지만 각각의 캐릭터가 더 생생하게 극을 이끌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매력을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이 익숙하신 분들이나 그렇지 않은 분들이나 모두 재밌게 볼 수 있는 콘텐츠라 생각해서 한 번 시도해보시길 권합니다. 에피소드도 3화 정도라 보기에 부담되지 않습니다.
오래되고 알려진 작품인 만큼, 스포에 대해 마음이 조금 편하네요. 이제부터는 노골적으로 사건의 범인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보여준 행동의 의미와 생각할 지점에 대해서 다뤄보려고 합니다. 만약 범인을 정말 모르고 작품을 보고 싶으시다면 이 부분부터는 작품을 감상한 이후에 다시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차례차례 인물들이 가사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베라 클레이손이 됩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롬바드를 그의 권총을 쏘고 말았던 베라는, 이전 자신이 저질렀던 환상이 자꾸만 자신을 따라다니고, 롬바드를 죽이고 말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방에 걸려진 줄에 목을 매달게 되죠. 가사처럼요. 하지만 이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워그레이브 판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꾸며진 가짜였음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그가 계획하고 실행한 살인임이 드러나게 됩니다.
형을 집행할 때 그 자리에 꼬박꼬박 참가했다고 한 워그레이브는, 그가 가진 권력으로 처형하는 일에 대한 희열을 지녔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은퇴하고 되고 암 투병으로 곧 죽게 된 그가 마지막으로 자기 스스로 심판할 대상을 찾아내 죽음이라는 형을 집행할 계획을 세웠다는 것도 말하죠. 그리고 자신이 다른 살인마들과 다른 것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닌 누군가를 죽게한 이들에 대해 정의를 구현한 것이기에 다르다고 말합니다.
이는 자신이 마땅히 누군가를 심판할 수 있다는 오만함과 사이코패스적인 측면을 잘 드러낸 부분입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자신을 신뢰하는 암스트롱을 이용해 꾸며내고, 그를 살해한 이후 나머지 두 인물에 대해서는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죽음으로 치닫게 만듭니다. 섬에 들어오게 만든 것부터, 죽음을 선고하는 것 전부가 모두 워그레이브의 계획이었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우리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사람은 과연 정의로울 수 있는가? 그가 가진 정의가 정말 '진짜' 정의일까? 사람은 과연 심판관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들이요. 그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이 작품의 또다른 재미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