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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Feb 26. 2024

똥과 순환3. 전쟁중 일본의 돼지변소는 전후 미국식으로

전근대의 후진 변소에서 근대적인 화장실로


안도현의 이 시에 나오는 것처럼 90년대만 하더라도 학교와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는 똥차를 보기란 그리 드물지 않은 이벤트였다. 나도 신기하고 재밌어하는 눈으로 냄새나는 똥차가 우리 아파트의 정화조를 쭈왑쭈왑 빨아들이는 모습을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렇게 똥차가 돌아다니며 정화조에 모아둔 대소변을 수거하는 것은 도시민들에게 단순히 불쾌감을 넘어 일종의 공해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2000년 이후 신축된 학교나 아파트 등 대형건물에서는 건물에 정화조를 따로 두는 게 아니라 하수도를 직접 연결하여 똥오줌을 아예 배출 즉시 보이지 않는 지하로 치워버리는 방식이 대세가 되었다. 우리보다 근대화 도시화가 빨랐던 일본은 80년대가 바로 그런 시기였다.




쪼그려 앉는 변소가 아닌 걸터앉아서 쓰는 양변기로 바뀌었을 때 비로소 변소가 아닌 '화장실'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마치 독일의 철학자 맑스 할배가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삶을 바꾸자고 수십 수백 번 외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거주지나 직업 등 현실 삶의 조건을 바꾸었을 때 정신 또한 그에 맞게 변화한다. 그리고 그런 극적인 변화중 첫째는 역시 전쟁이나 재난상태일 것이다...






2차 대전중 일본에서 의사를 했지만 적국인 미국의 생산물인 미국 전단지를 너무나 유용하게 활용하고 미국 문화의 혜택을 부러워하는 아이러니. 그리고 대피소를 나와 변소를 가면 산처럼 쌓인 대변... 이런 와중에 전후 서양식 화장실의 보급은 적국임에도 불구하고 그 근대식 진보한 문명에 감탄과 욕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을 듯하다.




'돼지 변소' 즉 마을에서 돼지를 키우던 돼지우리에서 볼일을 보면 돼지들이 그걸 먹어서 뒷처리를 해주던 전쟁 중 일본의 변소에서 드럼통을 재활용한 '근대식 변소'로의 변화. 지금 보면 당연히 후진적이지만 그 당시 미국에게 패전을 경험한 일본인들로선 드럼통이 '근대'의 상징 기념비와도 같았으리라.


심지어 오키나와, 지금도 미군이 점령해서 행정을 집행 중인 이 지역의 열네 살 소년은 전후에 악습을 고치지 않는다며 어른들에게 화를 내고, 미국을 원시에서 문명으로 도약시켜준 마치 은인과 같다며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다. 보통은 자기 나라를 전쟁에서 패배시킨 적국을 원한과 분노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고 일반적이지만, 그 적국이 자신을 근대화 문명화시켜 주는 화장실같은 사회 인프라를 바꿔주니 그의 의식도 변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똥이 불결하다거나 더럽다는 현대인들의 일반적 의식도 대소변을 배출 즉시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격리시켜 주는 현대의 하수도 인프라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러한 현대 문명은 인류에게 거대한 선물이지만, 하지만 똥을 분명 우리 인체의 일부였다는 명백한 진실을 가리게 하고 똥이 수천년 농사의 역사동안 매우 훌륭한 비료, 자원이었다는 사실을 아예 인식조차 못하게 하는 건 아닐까.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과소평가하거나 심지어 불결하고 악한 존재로 평가하기 쉬운 것은 분명 근대의 고질병이다. 이 책이 '인문'지리학이라는 장르를 표방하는 것은 바로 이런 근대 문명 비판을 내포하는 듯하다. 키우는 고양이의 똥이나 집에서 낳은 아기의 똥을 더럽다고 평가하지 않듯이, 나이먹는 도중 쌓인 사회의 편견들을 걷어내고 좀 더 어린아이처럼 맑은 눈으로 세계를 천천히 바라보기... 쉽게쉽게 평가하는 날 선 칼날같은 눈총보다는, 조금 눈을 비비고서 다정한 애정어린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봐주기... 그런 따숩한 시선으로 시를 쓰는 손길을 연습하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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