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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Mar 15. 2024

화이트데이에 여자친구랑 아내와 같이 식사하면 공짜?

흐려져가는 가족의 시대에 망상하는 스샷에세이


어제는 3.14 화이트데이였다


학생 시절엔 신학기 분위기가 한창인 3월 14일이란 날짜와 맞물려 남녀간에 의리 또는 호감을 주고받는 기념일이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다지 중요하진 않게 되는 날 중 하나, 그런데 저장해 둔 오래된 스샷과 변해가는 시대가 나를 재미있는 망상 속으로 이끌었다.



사이공이라는 이 식당에서는 당연히 마지막에 100퍼 할인 즉 여자친구와 아내를 함께 모시고 오면 공짜로 음식을 준다는 말은 농담삼아 홍보를 위해 적어놓은 말일 것이다. 본론은 당연히 위쪽 문장의 여친 5퍼 아내 10퍼 할인이니까 커플들은 홍보보고 많이 와달라는 할인행사... 그런데 만약에 어떤 사람이 여자친구와 아내를 정말로 같이 모시고 화이트데이에 식당에 온다면?


물론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아내가 있으면서 따로 여자친구와 불륜중이고 그러면서 심지어 둘을 불러서 함께 공짜로 식사한다는 건 허구의 개막장 아침드라마 대본에서도 배우들이 황당해할 만한 각본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정상 가족'에 대한 전통적 관념이 아직 지배적인 현재의 상식으로만 불가능하다고 느껴지는 건 아닐까?


가족의 해체니 2030 기혼자들의 5년내 이혼율이 절반에 육박하니 하는건 이제 더이상 신선할 것도 없는 세상이 되었다. 나는 솔로 같은 공중파 연애 예능에서도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돌싱특집'같은 방송을 기획하고 내보내도 딱히 유별나다고 여기지 않는 세상이 아니던가.


가족과 결혼이라는 기존 제도와 문화의 울타리 자체가 흔들리고 흐려지고 있는 시대. 물론 그럼에도 역설적으로 연애에 대한 열망 자체는 오히려 강렬해서, 나는솔로나 환승연애같은 연애예능물은 그 막장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대 호황을 누리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큰 마음을 먹고 자기 짝을 찾아보겠다고 얼굴팔고 방송에 나왔음에도 상대방에 만족하지 못하고 소득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절반 이상이다.


아마 그 원인은 물론 다양하고 복합적이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가 결혼과 연애에 대해 굉장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로 접근하기 때문이 아닐까. 다른 말로 하면 연애활동으로 감정적인 손해든 경제적인 손해든 뭐든 내가 손해보는 을의 입장에 서기 싫다는 계산적인 마인드가 남녀노소 다들 기본 스탠스니까.


한 10년 전부터 황혼 이혼이라는 말이 뉴스에 자주 오르락내리락하게 된 것같다. 결혼생활의 가장 큰 이유와 목적인 자녀들 양육이 끝난 60대 이상의 노부부가 이제는 억지로 같이사는 생활 끝내고 따로 살자는 황혼이혼. 이미 수십년을 같이 지냈어도 서로간에 익숙해짐과 편안함보다는 불편함과 스트레스가 더 많았던걸까. 타인의 삶을 감히 함부로 평가해서야 안 되겠지만 이런저런 정황과 사회 분위기는 노인청년 할 거 없이 다들 가족이라 할지라도 타인이라는 불편함을 참기 어렵고 그저 상호간 이득을 위해서 가족이라는 전통은 아직도 유지되는건가 라는 생각을 금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오히려 더 급진적으로, 아니면 완전히 복고적으로 우리는 결혼과 연애에 대한 마인드가 바뀔지도 모른다. 바로 제도적인 결혼은 결혼대로 상대를 찾아서 하고 애정을 주고받는 로맨스 연애는 따로 또 상대를 찾는 것이다. 사랑하는 서로에게 최대한의 이득을 보장하기 위해서. 그리고 재밌게도 이런 연애와 결혼의 분리는 200년전을 떠올리게 한다.


18세기 유럽의 명문 귀족들은 각자 가문들의 위신과 이익을 위해 네다섯살 시절에 이미 정혼자가 정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런 가문간의 정략 결혼은 개인이 거부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 서로 그것을 알고 있기에 결혼생활은 그저 비즈니스일 뿐이고 진심으로 원하는 애정은 각자 무도회에서 사교계에서 따로 만나고 은밀한 만남과 소문으로 가득 찼다고 전해진다. 저 시대 귀족들과 지금 21세기 청춘남녀들의 차이는 어쩌면 귀족적인 위신이나 명예는 그저 거짓이나 허튼소리로 취급될 뿐이고, 오직 경제적 이득이나 외적 매력같이 보이는 것만이 실체로 인정된다는 스펙타클의 시대라는 것 아니려나. 이 실체를 얻기 위해 결혼식을 올리고 수백명을 모아 축의금을 걷었음에도 혼인신고 도장은 1년 뒤에나 찍는건 이제 2030세대에선 너무나 당연한 풍경이 되었다...


작년에 만난 오래된 고향친구는 결혼한 지 벌써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심스런 말투로 뭔가 말하기 힘든 불화나  사정이라도 있는거냐고 물었지만 의외로 그 친구는 별일아니라는 듯이 지금 대출과 주택청약 신청을 노리고 있는데 이게 속설처럼 신혼부부면 무조건 유리한 게 아니라 누적점수가 최대로 모이는 최고의 타이밍을 지금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마치 내부자정보를 얻고 주식투자를 위해 저점매수 타이밍을 재는 듯한 그 친구의 냉정한 투자자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이토록 내 손해보는 걸 절대 용납하질 못하고


조금이라도 더 이득보려고 혼인신고조차 미루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시대 한가운데에 서 있다


조금만 더 시대가 휙휙 돌아버리면


아내와 여자친구와 함께 공짜저녁도 맛있으려나


사탕받을 아내도 여친도 없이 망상해보는 불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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