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콜드와 더 락처럼 날아다니던 고딩시절
어제 헐크 호건의 별세 비보를 접하고
유하의 시를 보며 고딩 시절로 잠시 잠겨든다
열 일곱 고등학생 시절 난 소심한 판타지 덕후
드래곤 라자나 퇴마록이 처음 떠오른 시대에
하루에 서너 시간씩 책방에 서서 소설을 읽었지
다리가 아파도 대여료 오백원을 아껴보려던 시절
검과 마법과 모험이 가득한 종이 속에 빠져들다가
학교에선 조용히 모범생인 척 공부만 하는 척
교과서 속에 판타지 소설을 숨겨서 열심히 읽었지.
그렇지만 그 소심한 덕후도 집가서 티비를 켜면
케이블 티비가 시작된 시대에 신비한 외국 영상들
유튜브가 없던 시대에 미국 프로레슬링에 빠졌지
헐크 호건과 워리어는 이제 늙고 지쳐서
매주 쇼에 나오진 않았지만 가끔 얼굴을 비추고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과 더 락이 간판 스타.
지금은 할리우드 영화배우로 훨씬 유명한 더 락.
20년 전에는 wwe 링에 매주 나오던 아이콘이었지
스톤 콜드의 저 호쾌한 기술 스터너에 맞으면
보통은 아프다며 눕고 끝나는 피니쉬였지만
더 락은 혼자서 링을 두세바퀴 튀어올랐지
누가 봐도 너무 과장된 코미디같은 쇼 그자체지만
바로 그래서 너무 재밌었고 보고 또 보았지
나도 그 신나는 기술을 친구들과 같이 했었지
당연히 최대한 서로 안 아프게 살짝 걸면서
더 락에게 배웠듯이 최대한 과장된 리액션으로
방방 튀어오르다가 레슬러처럼 코멘트를 날리지
너에게 이런 피니쉬를 맞다니 너무 영광이다!
우리는 그 시절 레슬링으로 인간관계를 배웠지
평소엔 소심하게 판타지 소설만 각자 몰래 보다가
선생님도 일진도 없는 시간에 우리끼리 즐거웠지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고도 같이 즐겁게 놀기...
20년 지난 지금은 세상이 훨씬 두려워졌네
지금은 조롱과 모욕과 혐오가 스포츠가 된 시대
종종 그 고딩 시절이 그리워지네
일진과 학폭과 체벌과 두발단속은 당연히 싫지만
억지로 그 시절을 미화하는 건 무리수겠지만
아직 낭만이 오글이 아니던 시대가 있었네
100미터 22초 걸리던 허접 뚱띵이도
빨간티셔츠 하나 입고 붉은악마처럼 같이 축구를
전교 꼴찌 바보도 드래곤라자 판타지만 읽었다면
서울대 목표하던 전교회장과 이야기하다 밤을 새던
에어컨도 없이 밤 11시까지 같이 야간 자율학습을
그 시절로 돌아갈 순 없지만
그 어릴 적 네시간 동안 미친듯이 서서 읽던
이영도의 판타지 소설을 또 다시 읽어본다...
용맹한 기사 서 슈마허
그대는 상어가 되겠나 상어밥이 되겠는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