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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열 Jan 20. 2023

이혼 할 때 만나게 되는 사람들_14

둘째 딸2 (2038년)

[둘째 딸 2 (2038년)]          


조촐하게 축하파티를 준비했다.

파티라기 보다는 축하케이크와 치맥을 하는 정도다.     


“호정이의 공식 파티쉐가 되는 첫날 축하해~~”     


“어서 촛불 꺼~~아,,,나는 언제쯤 사회인이 될까? 부럽당!!”     


호정이는 촛불을 후하고 자신있게 불었다.

수정이와 나는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오늘 첫 출근 얘기 좀 해봐...다른 동료들은 어때? 잘해줘? 오늘 가서 무슨 빵 만들었어?”     


“아빠~~오바 좀 그만해...누가 들으면 진짜인줄 알겠네...

빵은 무슨...청소만 하다가 왔는데 뭘...그리고 난 아직 파티쉐라기 보다는 그냥 빵집에서 일을 시작한 것 뿐이야...오늘 밀가루 한번 손에 묻혀 보지도 못 했어. 그러니까 파티쉐라는 말은 좀 그래”     


“사람들은 어때? 잘 해줘?”     


“아니...아는 체도 잘 안해...거의 그림자 취급...다들 바빠서 나한테 말 한마디 걸어 주지도 않아”     


“원래 어딜 가도 텃새라는 게 있어...호정이가 앞으로 잘 하면 서서히 좋아질거야.”     


“그래도 신입이 들어 왔는데...다들 너무해...나 같으면 먼저 인사도 해주고 밥도 같이 먹자고 할 것 같은데...다들 자기 일만 해...”     


호정이의 기대와는 다르게 첫 출근은 즐겁지 만은 않았던 것 같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어딜 가든 이쁨 받고 다들 좋아해 주었는데, 첫 사회에서 받은 대우는 그 반대였던 것이다. 차갑고 딱딱하고 그리고 무관심이 가득 했던 것이다.

분위기가 가라 앉는 것 같자, 수정이가 건배를 하자고 한다.     


“야~ 그럼 뭐 너 오자마자 다들 반겨줄줄 알았어? 쯧쯧...이제 너도 사회의 쓴 맛을 봐야돼...얼마나 힘든 줄 알아야 돼...그동안 집에서 오냐오냐 이쁨만 받았으니까...”     


“뭐래? 내가 얼마나 할머니한테 잔소리 듣고 혼나는데...”     


“야~ 그런게 이쁨 받는거야! 할머니는 나에게 관심도 없어...맨날 술 먹는다고 구박이나 하지...

내가 왜 그러겠어? 난 집에서도 정 붙일 사람이 없으니까 그래서 맨날 밖에서 친구들이랑 노는거야..외로워서, 니가 그 맘 알기나 알아?”     


“그냥 술 먹고 노는 게 좋아서 그런거라 해...무슨 외로움까지 오바 좀 하지마”     


“자자~ 그만...오늘 같이 좋은 날 왜 싸워?”     


“아빠, 난 정말 호정이가 싫어~~맨날 자기 생각 밖에 안 하고”     


“언니도 잘 생각 해봐...할머니가 맨날 언니 들어 올 때까지 기다리는데, 연락도 안 하고 맨날 새벽에 들어오니까 뭐라 하는거지...언니가 잘 해봐...”     


“수정이도 이제 좀 집에 일찍 다니고, 술 너무 많이 먹지 말고...”     


“거봐~ 아빠도 내 얘기는 안 듣고 호정이 말만 믿잖아...우리집에서 내편이 없어, 속상해.

그래서 내가 할머니 싫어하는 외갓집에 가는거야...거기 가면 내 편만 있으니까”     


“다 아빠 책임이야...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좀 그만해~~아빠!!.

제발 좀 미안해 소리, 이혼소리 좀 그만하라고~~”     



갑자기 호정이가 큰 소리를 쳤다.

나와 수정이는 놀라서 호정이를 바라 보았다.

호정이는 잘 마시지도 못하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 마셨다.     


“요즘 세상에 이혼이 뭐 대수라고? 내 친구 부모들도 이혼 다 했어....아빠는 왜 맨날

이혼 얘기만 나오면 무슨 큰 죄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그래?”     


“너희들에게 피해를 줬으니까...”     


“피해? 무슨 피해? 아빠가 이혼 안했다고 우리가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그렇지 않아...

아빠도 이제 아빠 인생 살아...언니나 나도 이제 성인이니까 우리도 각자 인생 알아서 사는거지...

언제까지 아빠가 우리 책임을 진다고 그래?”     


“아빠 인생?...호정이는 모르겠지만 아빠 인생에는 수정이와 호정이가 있는데, 어떻게 너희를 생각 안 하고 살 수 가 있겠니? 너도 나중에 부모 되면 알거야...니 말처럼 그게 쉬운 일이 아니야”     


“사실 아빠가 우리를 키운건 아니잖아...솔직히 나랑 언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키운 게 맞지...

아빠는 가끔 와서 우리 밥 사주고 뭐 용돈 준거잖아...매일매일 얼굴 보면서 살아 온 건 아빠가 아니잖아...그러니까 이제와서 미안해 할 것도 없어...그렇다고 아빠를 원망하는 것도 아니니까”     


“야~ 넌 어떻게 아빠한테 그런 말을 해? 싸가지 없게...아빠가 없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있냐?

맨날 오냐오냐 하니까 아주 못 하는 말이 없네”     


“아니야, 호정이 말이 다 맞아...그래서 아빠가 더 미안해...”     



잠시 정적이 흐른다.

수정이는 혼자서 소주를 자작하고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앞에 덩그러니 호정이의 축하 케이크가 어색해 보였다.     


“아...그러니까...내 말은 오늘 같이 좋은 날에 쓸데 없는 얘기하지말고 기분 좋게 먹자는 얘기야.

우리 집은 가끔 이렇게 심각해지면 다들 어쩔 줄 몰라하잖아...

난 가끔 그런 생각이 들더라...심각한 게 나쁜 건가? 왜 다들 이런 분위기만 되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오바하고 다 지난 옛일들 꺼집어 내고, 이게 우리집 내력인가 싶기도 하고...”     


“다 아빠 탓이야...아빠가 원래 그런 분위기를 못 견디거든...”     


“아빠 그게 다 허세야~”     


“하긴...그동안 아빠는 너무 속에 있는 얘기를 우리에게 안 했으니까...

어쩔때는 너무 답답해..아빠를 보면...”     


“뭐래...언니도 아빠랑 똑같아...집에 오면 말 한마디도 안하잖아...”     


“야~ 그거야 내 말을 들어 줄 사람이 없으니까 그렇지...너는 할머니가 니 얘기 다들어주니까. 내 맘을 알 리가 없지...그리고 말해봤자 맨날 나만 뭐라고 하니까...짜증나서 안 하는거야..”     


“나는 안 그래...아빠나 언니처럼 좋은 얘기만 하지 않아...슬픈 일도 말하고 잘 못한 일도 말하고 다 말해...난 비밀이라는 게 없거든...그래서 할머니랑 늘 그렇게 말하는거야...근데 언니나 아빠는 할머니에게 그런 말 안 하잖아...다들 속으로는 힘들고 지쳤으면서 그놈의 강한 척 하느라 말 안 하잖아”     


“호정이 니가 아직 어려서 그래...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거든...

너도 사회의 쓴 맛을 봐봐야지”     


“호정이 말도 맞고, 수정이 말도 맞아...우리 딸들 언제 이렇게 컸냐?

다들 어른이 됐네”     


“아빠도 이제 늙었어...그러니까 너무 잘 하려고 힘 쓰지마...이제 편하게 아빠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살아...우리야 알아서 잘 살아갈거니까...알았지? 자 건배!!!”     


두 딸과 이렇게 제법 어른스러운 대화를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나름 대견하고 한편으로는 뜨금하고 반성하게 된다. 지금 내 앞에서 두 딸은 아우다웅 하면서도 즐겁게 웃고 서로의 걱정을 해주고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좋다.     



이혼은 나에게 도대체 뭘 까?     

창피함?

시련?

어쩔수없음?

실패?

인과응보?

.

.

.     

문득 호정이의 말이 스쳐 지난다.     


‘아빠가 이혼 안 했다고 우리가 지금 더 행복했을까?...’     


행복? 

그리고 우리....?     


그래, 우리다. 지금 나의 고민은 나 혼자만의 문제를 고민하는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 이외의 자식과 부모님...

우리가 살아가야 할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의 핵심은 행복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누군가 나에게 좌우명이 뭐 냐고 물었을 때,

나는 행복이라고 말 했던 기억이 난다.

일하는 것도 행복을 위해서, 사는 것도 행복을 위해서, 노는 것도 행복을 위해서....

뭐든 행복했음 좋겠다는 말을 서슴치 않았었다.     


그랬구나.

나의 마음 속엔 늘 이 고민의 답을 알고 있었구나.

내가 밤을 지새며 일하는 것도 행복해서 였다.

억지로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아이디어를 위해서, 나의 카피를 위해서 그랬고,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누군가를 만족시킬 때 나는 행복했었다.     

돈을 버는 것도 다름 아닌 내 가족들과 누릴 수 있는 게 더 많아지고 여유가 생기니까 그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열심히 사는 이유엔 늘 ‘우리’라는 나의 가족이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금까지 그렇게 커 보이던, 그리고 공포스럽던 이혼이라는 놈이 점점 작아보이고 무섭지도 않아보인다. 별거 아니네....라고 하기까지는 아직 이르지만.     


나 혼자가 아니니까...

우리는 이 시련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거란 믿음이 생긴다.

물론 쉽지는 않을거다. 때론 원망도 할거다. 그리고 때론 후회도 할거다.

어찌보면 이것이 나를 더 성숙하게 하고 가족을 더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15부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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