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적”인것

동남아시아의 현대미술보기

by Zoe

현대미술의 흐름은 유동적이고, 그때마다 관심이 집중되는 특정 문화와 역사적 시류들이 있기마련인데 특히 지난 몇년간 동남아시아 작가들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도가 높아져왔다는 점이 흥미롭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국내에서 동남아시아 문화권이 일반적으로 지닌 이미지는 아직 낮은 경제수준과 교육의 부재, 그리고 특정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많은 도움을 필요로하는 현실이다.

비단 동남아시아 뿐 만이라 아니라 해외 작가의 작품을 수집하고자 하면 의례 아무 의심없이 서구권 작가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우 또한 자주 목도한다. 아직도 현대미술컬렉션에 있어서 아시아는 지난 식민지의 역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발견하곤하는데 이는 좀 서글픈 현실이다.

이유를 찾아보자니 동남아시아출신의 작가들이 몇몇 서구권의 대형 전시에 극소수로 소개가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노출기회의 부재를 비롯, 다수의 경우 일반적인 공공미술기관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중 일부 세간의 주목을 받은 동남아시아 작가들의 경우 수요가 적다보니 단시간내의 왕성한 활동으로 급히 소모되어지는 점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중 작가 호추니엔은 지난 광주아시아문화의 전당 극장 개관시 국내 관객들에게 소개된바 있고 얼마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막한 <불확정성의 원리> 전에도 현재 참여중이다. 싱가포르 태생의 영화학도 출신으로 장단편 영화 뿐만아니라 영상 설치 혹은 퍼포먼스에 따른 장르도 때떄로 선보여왔으며, 동남아시아 특히 그의 모국 싱가포르 및 주변국을 둘러싼 식민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주제를 지속적으로 다루어왔다.

1950년대 말레이반도가 영국식민에서 독립된 이후60년대말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대립은 단지 두 국가의 독립 이면의 복합적인 정치노선 뿐만아니아 인종주의에 따른 민족적간의 갈등 등으로 인해 사실상 현재까지도 분쟁관계에 있다.

그의 작품을 보고있자면 호추니엔은 작가 혹은 연출가, 영화감독으로 규정짓기에는 Thinker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것 같다. 한 개인의 사유를 통해서 근현대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그는 싱가포르 출신이지만 싱가포르는 곁에 있는 말레이시아 혹은 인도네이아와 인접한국가이며 그들의 정치적인 관계는 그가 자란 70년대 초 가장 민감했던 시국이기도 했다. 그는 종종 싱가포르를 통해서 사유한다는 표현을 좋아한다고 한다. 호추니엔은 “한 사람의 족보와 핏줄을 추적하는 일은 세계를 추적하는 일과 같다. 한 존재의 근원에 다다랐을 때 그 모습은 변화한다." 고 언급했다.

그의 작업에서 은유적인 주체로서 자주 등장하는 호랑이는 말레이시아의 신화에 따른것으로 시작하여 일종의 영매를 상기시키는데 한국에서 호랑이가 민화에 등장하거나 십이지의 영물로서 상징되는 의리, 용맹, 완고함 같은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임진왜란이후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호랑이가 말살되었던것 처럼 영국식민기 말레이시아의 호랑이는 몰살당하며 싱가포르에서는 아예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호추니엔은 전설속의 호랑이를 통해, 역사의 희생양으로 종적을 감춘 호랑이를 통해, 아시아로 비유되는 호랑이 개념에 대한 이해의 변화들을 통해 “동남아시아”라는 어원의 생성부터 서구적인 관점이 생성시킨 정체성을 비판한다.

필자도 어쩌면 같은 아시아권의 나라로서 자생적인 식견을 지니지 못한채 값싼 관광지로서, 경제적인 위계에 따른 차이를 하대하며 동남아시아의 본질이나 역사를 미처 깨닿지 못하고 있었던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근래 현대미술에서 주목하는 동남아시아권의 문화와 작가에 대한 가치가 “동남아시아적인 것”이 아니길 기대한다. <매일경제에 연재하는 전민경의 현대미술열전 칼럼의 원본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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