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책임전가꾼이다

by 조녹아




그는 알아주는 답정너다. 답은 다 정해놨지만 결정은 너가 해. 그게 잘 되면 내가 알려준 거니까 내 덕, 하지만 안 되면 너가 결정한 거니까 너 탓.


단편적인 예시로, 이 가게의 로고는 디자이너의 작품이 아닌 본인의 작품이다. 디자이너에게 본인이 부탁했으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본인이 그렸다고 자랑을 하고 다닌다. 모든 공은 자신에게로 돌린다.


처음엔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자 내게 물어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없었다. 어차피 다 본인 마음대로 할 것이기 때문. 그럼 대체 나한테 왜 물어보지? 싶었다. 나중에 모 직원에게 ‘나는 모든 결정을 너희에게 맡겼다’고 하더란다. 그때야 책임 전가란 이런 것이구나 제대로 알게 됐다.


그야말로 악덕 고용주의 마인드다.


그는 결정적으로 함께 일하는 직원의 말은 들어주지 않으면서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남의 말엔 팔랑귀이다. 본인의 주도적인 의견은 없다. 남이 하는 말은 얼른 물어와서 우리에게 전하고, 우리의 반응이 생각과 다르면 본인을 공격하는 적으로 간주한다.


우리의 말에는 귀를 닫고있다. 그렇게 보류가 된 안건들이 쌓이고 있으나, 본인은 나중에 기억을 못 하고 또 물어본다. 나는 그를 알고 지낸 약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그가 이성적이고 결단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오산이었다.


그는 나의 지인이었다. 본인은 본업이 있으니 부업으로 기획하고 있는 독립 출판사 관련 서점의 총 관리를 맡아줄 직원으로 함께 일해볼 생각 없냐는 말을 꺼냈다. 안 그래도 전 직장에서 고통받고 있던 나는 흔쾌히 yes를 외쳤으나 그것이 나의 실수였구나 라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다.


사공도 많지 않은 배는 이미 산으로 가버렸고 나는 방향성도 모른 채 그 배를 끌고 산을 올라가느라 죽겠다. 아마 배가 산산조각 나면 가장 먼저 탓할 사람은 나겠지.


과연 내가 도달할 곳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