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셀과 브레이크

이사를 며칠 앞두고 바다 앞에서 커피 마시며 나눈 대화는 참 좋았어요.

by nabong

우리는 근무지를 옮길지 말지 정해야 하는 시기에 왔고, 남편과 나는 고민하고 기도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 계절 한 계절을 거치며 휴가를 다녀오고 난 후 이임을 결정했다는 마음을 전달했다. 우리가 이임할 거라는 것을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는지 이야기를 듣고 놀라는 상황도 아니었다고 남편이 말했다. 이임하는 게 조금은 수월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우리는 부임할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눈에 띄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기도하며 일상을 보내던 중, 남편과 나는 이력서를 넣어볼 곳을 몇 군데 추려놓았는데, 남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거기 괜찮을 거 같은데 이력서 한번 넣어봐”라고. 남편 친구가 말한 거기는 우리가 추려놓은 곳 중 한 곳이었다. 남편의 성격상 이력서를 여기저기 보내는 걸 좋아하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한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어디에 넣어볼 거야?” 남편이 대답했다. “조금 더 기도해 보는 게 나을 것 같아 이력서를 한 번에 여기저기 보내놓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까 딱 두 군데만 넣어볼까 하는데 어때?” 그 말을 듣고 같이 고민하며 기도하며 기다렸다. 며칠이 지나고 남편이 이력서를 넣어 볼 곳을 정하고 알려주었다.


(편의상 A라고 칭하도록 하겠다) A에 이력서를 넣어보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놀란 나는 “진짜?”라고 되물었다. 내가 보는 남편의 표정과 말이 A로 이력서를 넣어야지라고 정한 사람 치고는 내적 불안감이 많아 보였다. 그리고 A에 이력서를 넣겠다는 남편의 결정이 정말 그곳이 좋아서 결정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편에게 내 생각을 너무 솔직하게 말하기에는 남편이 상처를 받을 것만 같아서 오빠가 그렇게 정했으면 한번 보내보자라고 말했다. 그렇게 정하고 대화를 나눈 뒤 며칠 동안 마음이 후련하지 않고 찝찝했다. 이 길이 정말 맞는 길인지 마음 한 구석이 굉장히 불편했다. 기회를 보고 남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오빠 나는 A에 이력서를 보내는 게 마음이 계속 불편해” 남편이 대답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솔직하게 말하자면 오빠가 A에 가려고 하는 게 거기가 정말 좋아서 가려고 하는 것 같아 보이지가 않는다는 게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는 오빠가 여기서 느꼈던 갈증을 해소시켜주지 못할 것 같아 “라고 말했다. 남편도 사실은 느꼈던 부분이라며 동의했고 갈증을 해소시켜주지 못하는 이유도 내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A에 이력서를 넣지 않았다.


남편 친구가 말한 거기에 이력서를 넣어보기로 했다. (편의상 B라고 칭하도록 하겠다) 거기는 우리가 추려놓은 곳 중 하나이기도 했지만 남편도 나도 마음의 감동이 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B에 이력서를 넣었고 며칠이 지나고 면접을 한번 봤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시간을 맞춰 면접을 보러 도착했고, 무사히 면접을 봤다. 면접이 끝나고 다 같이 숯불갈비를 먹었는데 떨려서 갈비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로 가서 차를 마시면서 이것저것 정보를 듣고 또 우리 이야기도 들려드리고 하다 보니 어느새 3시가 넘었다. 카페를 나와 집으로 가면서 우리가 나눈 대화의 첫마디는 "어땠어?"였고, 남편도 나도 긍정적인 말을 꺼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그렇게 우리는 또 4시간 반에 걸쳐 집에 도착했다.


남편은 출근해서 면접을 보고 왔고, 언제까지 일하고 이임하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렇게 말했을 때, 안된다는 말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이때까지만 해도 이임하는 일로 애가 탈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언제까지 이임을 하겠다는 말을 한 후 남편에게 돌아온 답은 회의를 해보겠다, 회의를 해보겠다, 내일 알려주겠다, 주말 지나고 알려주겠다, 계속 미루는 말들뿐이었다. 남편도 너무 화가 났지만 뒤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야 하는 나도 너무 화가 났다. 대놓고 똑 부러지게 말하지 못하는 남편의 모습에 대해서 답답한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가기만 하던 시간 속에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마음에 내일도 오빠가 확답을 받아오지 않으면 내가 직접 가겠다고 말했다. 직위와 직책과 직무가 있는 자의 우유부단한 태도가 우리를 너무 힘들게 했다. 내가 가서 말하고 와야겠다고 말한 다음날, 확답을 받기는 했지만 정작 받아야 할 사람에게 받은 것이 아닌 제삼자한테 (우리가 이임하고 나가겠다고 한 날짜를 기준으로 정작 8일 정도 앞둔 상태에서) 사임의 답을 얻어냈다. 깔끔하지 못했고 개운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결정되었으니 "마음 쓰였던 거 다 털고 이제 이사준비하자!"라고 말하며 서로 다독였다. 현실에 놓인 건 8일이라는 기간밖에 남지 않아서 당장 해야 할게 무엇인지만 머릿속에 있었다.


이임을 생각하며 마음을 정리하고, 의사를 전달하고 답을 얻어내기까지의 시간들 안에서 깨달은 것도 있었지만 그리 기분이 유쾌한 일들만 있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사실 남편은 남에게 쓴소리를 잘 못하고 그다지 하기를 원하지도 않는 좋은 게 좋은 것인 평화주의자이다. 흔히 말하자면 식당에서 머리카락이 나올 경우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 나는 내 기준에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내가 피해를 보거나 내 사람이 피해를 볼 경우 부당한 태도와 상황에 대해서는 또박또박 의사표현을 하는 사람이다. 식당에서 머리카락이 나올 경우에 절대 그대로 먹지 않고 음식을 바꿔달라고 말한다. 이런 우리는 엑셀과 브레이크다. 이임하는 과정에서 계속 답을 미루는 자의 모습에 뒤에서 기다리기만 한 남편에게는 엑셀이, 가서 쓴소리를 하려 했던 나에게는 브레이크가 필요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결혼하고 살아오며 서로에게 엑셀과 브레이크 역할을 참 잘해준 것 같았다. 어쩌면 그 8일이라는 시간은 강원도에서 살았던 시간들과 생활의 반경과 보금자리를 정리하기에는 빠듯한 시간이었을 수 있겠으나 더 이상 미련은 갖지 않을 수 있는, 더 정확하고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다는 결론을 내려본다.







강원도에서 살다가 이사를 했다. 아니다. 벗어났다는 표현이 조금 더 어울릴 것 같다. 강원도에서 살았던 삶이 나쁘지만은 않았지만 좋다고 여겨지는 요인들에 비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일들이 더 많았다. 평생 살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이사를 갈망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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