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뺄게, 우리 같이 빼자.
치과를 가기가 꺼려지는 이유는 다르지만 누구나 두려워하는 병원이다. 나도 치과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치과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는 사랑니 발치에 의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치과에 갔던 어느 날 위아래로 4개의 사랑니가 자라고 있다는 말을 들었고 언젠가는 발치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의 첫 신혼집이었던 용산에 살 때 남편과 치과에 충치 치료를 받으러 간 적이 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사이좋게 1번, 2번 베드에 누웠다. 이를 살피시던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사랑니가 있으시네요? 뽑으면 좋겠는데? 온 김에 뽑고 가시면 어때요?"라고 하는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오긴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발치 권유를 받다니, 나도 모르게 베드에서 일어나 버렸다. 일단 충치부터 치료하자고 하셔서 그렇게 하기로 했지만, 충치 치료를 받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온통 발치 생각뿐이었다. 오늘 꼭 뽑아야 하는 건가? 다음에 뽑아도 되겠지? 하지만 온 김에 뽑으면 좋을 것 같긴 한데? 뽑다가 죽으면 어떡하지? 피가 안 멈추면 어떡하지? 온갖 생각이 난무했다. 남편과 충치 치료를 끝냈는데 간호사 한 분이 나에게 물었다. "오늘 발치하실 건가요?"라는 말에 "조금만 생각해 봐도 될까요.."라고 답했다. 밖으로 나가서 앉아 남편과 계속 고민을 했다. 남편의 의견도 사랑니가 다 자랐으니 염증이나 붓기가 생기기 전에 온 김에 뽑으면 좋겠다고 권유했다. 28살의 겁쟁이는 결국 발치를 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발치를 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한 가지였다. 남편이 같이 발치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남편도 사랑니가 2개 있었지만 굳이 발치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이였다. 그런데 내가 너무 겁을 먹으니 "나도 뺄게 우리 같이 빼자"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이 말 덕에 발치를 하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다. 빼겠다고 말을 하고 베드에 다시 누워서 마취 후 나는 위아래 2개를 발치하고 남편은 1개를 발치했다. 이를 짓누를 때 느낌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너무 무서웠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베드에서 일어났는데, 남편은 아직도 빼는 중이었다. 나보다 오래 걸린 남편은 발치 후에도 너무나 덤덤하게 진료실에서 나왔다. 빼지 않아도 되는 사랑니를 나 때문에 같이 빼준 이 남자의 사랑은 정말 대단하다. 입안은 피맛으로 가득했다. 진통제를 처방받으러 약국에 갔다가 둘이 같이 사랑니를 뺀 날을 기억하자고 남편이 셀카도 남겨두었다. 그 사진은 남편의 인스타그램에 고스란히 업데이트가 되어있다.
약을 처방받고 집에 가는 길에는 점점 마취가 풀려오는 탓에 힘든 아픔을 겪었지만 그것만큼 힘들었던 건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서 피맛이 나는 게 힘들었다. 뭘 먹지도 못하고 그렇게 지혈이 되기만을 기다렸는데 집에 도착하고 남편은 1~2시간 후에 피가 멈췄고, 나는 피 흐르는 속도가 더 세졌다. 집 안에서 돌아다니는 내 발걸음에 플러스된 건 바닥으로 떨어지는 피였다. 계속 떨어지는 피를 남편이 나를 쫓아다니며 닦고 다녔다. 나는 흘리고 다니고 남편은 닦고 다님을 반복하며 발치한 지 5시간이 지나도 피가 멈추지 않아서 점점 걱정이 되던 찰나 어지러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고 싶다고 말을 했고 남편과 나는 치아를 급히 볼 수 있는 병원을 찾다가 신촌세브란스로 출발했다.
어지러움은 점점 심해져 갔고, 그 증상과 동반되어 속 울렁거림도 심해졌다. 오랜 기다림 끝에 진료실에 들어가 압박지혈을 받았고 지혈을 해주시던 의사 선생님도 지혈이 안된다며 더 세게 눌러가며 압박지혈을 해주셨다. 압박지혈을 하고 있음에도 지혈이 되기까지 40분이 걸렸다. 40분 동안 제 이를 누르고 계시면서 땀을 흘리시던 의사 선생님께 너무 감사하다. 무사히 지혈이 되었고 집에 오니 시간은 새벽 12시가 넘었고 남편과 나는 하루가 너무 힘에 부친 나머지 곧바로 기절하듯 잠들었다. 이후 나에게 사랑니는 사랑니를 뺄 때의 두려움보다 뺀 후에 생긴 일들이 트라우마로 남았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사건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흘러 삼척으로 이사를 온 후에도 다시 사랑니의 스토리는 시작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삼척은 아주 시골 부근은 아닌 그래도 번화가 쪽에 위치한 동네이다. 하지만 의료시설은 마땅치 않은 지역인지라 좀 괜찮은 병원을 가려면 강릉이나 원주까지 이동해야 한다. 하루는 이 안쪽이 살짝 부은 감과 통증이 있어 사랑니가 부은 거겠지 라는 생각으로 확인차 동네 치과를 방문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들은 결과는 역시나 사랑니를 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랑니가 자라면서 옆에 어금니를 누르고 있으니 매복으로 진행해야 해서 여기서는 안되고 이걸 발치하려면 강릉치과대학을 가야 한다고 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진짜 어이가 없었다. 하루빨리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바로 예약을 잡았지만 예약도 한 달 뒤였다. 한 달의 시간이 지나고 먼저 검사를 받으러 방문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어떤 식으로 발치를 하는 건지 설명을 들었는데, 이 빼다가 죽는 건가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무서웠다. 담당 주치의가 했던 말은, "잇몸을 절개하고 이를 드러내야 해요", "신경이 가까이 맞닿은 부분이라 위험해요", "신경을 건드리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 쓰겠지만 만약에 신경이 건드려질 경우 미각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어요", "안면마비가 올 수 있어요" 등등 무시무시한 말들을 하셨다. 그럼에도 발치하겠다고 동의서를 작성하고 발치일자를 잡았다. 운전하며 집에 가는 길에 울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발치할 때 같이 갈 거니까 걱정 말라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거라며 나를 다독였다. 사랑니를 뺀 후 기억이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힘겨웠던 일이라 발치날까지 디데이를 셌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정말 일주일처럼 빨리 지나갔고 발치 하루 전날에는 마지막 만찬을 먹어야겠다며 물닭갈비를 먹고 공원 산책을 했다. 발치 당일 아침에 되어서 커다란 중압감에 견디기가 힘들었지만 35살의 씩씩이와 31살의 겁쟁이는 강릉치과대학으로 출발했다.
대기를 하면서 말은 없어지고 손과 발은 가만있지 못하고 요동쳤다. 남편과 같이 들어가면 안 되는지 양해를 구했는데 그건 어렵고 최대한 가까이에서 보실 수 있도록 해드리겠다고 했다. 베드에 누워서 발치가 시작되기도 전에 눈물을 흘렸다. 의사 선생님은 너무 친절하게 나를 위로해 주시면서 발치는 시작됐고, 중간중간 느긋한 목소리로 나를 위로하셨다. 총 1시간 1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고 발치를 하는 동안 내 손을 꼭 잡아주시던 간호사분께도 너무 감사했다. 너무 꽉 잡아서 손을 빨갛게 만들어서 죄송한 마음이 플러스된 채로 발치는 안전하게 마무리되었고, 남편은 내가 발치하는 모든 과정을 생각했던 것보다 가까이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남편을 보자마자 눈물이 와아아알칵 쏟아졌다. 너무너무 고마웠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변함없이 나를 지켜주는 남편의 존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든든하게 다가왔다. 병원을 나서서 약을 처방받아 주던 모습도, 나를 태우고 운전하던 모습도, 마취가 깨면 생길 통증에 대비해 찜질팩을 사러 이곳저곳을 다니던 모습도, 한 입 한 입 죽을 먹여주던 모습도, 내가 먹고 싶을까 봐 계속 같이 죽을 먹어주던 모습도, 반찬을 잘라주고 올려주던 모습도, 남편의 이런 모습은 나를 향한 사랑 그 자체였다.
내가 눈물을 흘린 이유 속에는 발치한 후에 전과 같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무서워 흘렸던 눈물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토록 걱정했던 지혈도 2시간 만에 아주 지혈이 잘 되었다. 발치하기 한 달 전부터 두려운 마음에 떨고 있는 나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좋은 병원과 주치의와 간호사와 모든 상황을 예비하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무엇보다 나를 끔찍이 아껴주는 사람이 옆에 있어서 보살핌도 받을 수 있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이었다. 이제 나는 4개의 사랑니를 모두 발치했다는 생각에 너무너무 개운했다. 사랑니를 빼고 내가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는,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었다. 부드럽고 작게 잘린 음식 외에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흰 죽만 먹다가 소고기장조림을 먹었는데 이게 이렇게 맛있었나 할 정도로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정도가 늘어났다. 처음에는 스트로도 쓰지 못하고, 양치하면서도 세게 뱉으면 안 된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일상에 습관적으로 심겨있던 모습들이라 지키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아무런 부작용 없이 잘 아물어 주었다.
사랑니를 같이 빼던 남편의 모습과 2차로 발치했을 때 나를 챙기던 그 모습은 진정한 사랑이었다. 인간의 사랑도 이렇게 놀랍고 행복한데, 하나님께서 나를,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마음은 얼마나 큰 사랑일까. 그 사랑을 깨닫고 느끼는 순간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나님의 사랑 앞에 갚을 길은 없지만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흘려보낼 때, 받은 사람도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구나라는 것을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니를 뺀다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 속에서 사랑을 느끼고, 감사를 느낄 수 있었음에 나는 나에게 일어난 일 중 너무 소중한 일이었다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