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나는 한 남자의 아내로 6년을 살고 있다. 내 남자는 하나의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위해 현재 16년째 달려오고 있다. 그 꿈은 바로 목사가 되는 것이다. 내년 4월이면 목사가 된다. 그런 남자의 옆에서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사모라는 자리이다. 사모라는 직위는 직업인 것처럼 일을 하고 책임감도 따르며 무게감도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직업이라고 치지는 않는다. 내가 사모가 된 지 6년이 되었다. 결혼 후 나의 첫 사역지인, 또 우리가 결혼 후 첫 사역한 사역지인 용산의 한 교회에서 나는 사모로써 4년을 지냈다. 아, 그때는 내가 사모라는 직위로만 몸을 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도 세무회계를 다루는 직업이 있었다. 본업을 해내며 사모라는 자리에서도 자리를 지켰다.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들었다. 일요일은 물론이고 수요일 금요일도 예배의 자리를 지켜야 했으며, 별도로 사모가 있어야 하는 자리가 있다면 열일을 제치고 자리를 지켜야 했다. 나는 이 남자가 좋아서 결혼을 했다. 물론 이 남자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이 어떤 것 인지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결혼해 보니 내가 감당하기에는 무겁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많았다. 이 것들이 짐이 되기 시작한다면 내 남자에게 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무엇이 먼저인지 순위를 따져보기로 했다.
나는 크리스천이다. 아무리 특별한 일이 있어도 주일(크리스천은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칭한다)은 목숨과도 같이 지켜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온 한 여자의 딸로 자랐다. 엄마가 나에게 억지로라도 지킬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두 가지가 있었다. 주일 성수와 십일조이다. 그럼 내가 지금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용산에서 내 직장까지는 편도 2시간이었다. 버스를 놓친다면 2시간 30분도 거뜬히 걸릴 정도의 거리였다. 수요일 금요일은 퇴근을 하고 용산에 오면 예배 중간에 들어가야 했다. 사모가 왜 지금 와? 사모가 예배 시간을 안 지키네? 이런 생각이 담긴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던 사람들도 있었다. 직접적으로 사모님은 왜 예배 시간이 끝날 때쯤에야 교회에 오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그런 순간들이 지속되다 보니 내 마음에도 반항이 생겼다. 사모라는 자리는 내 직업이 아니고 내 직업은 따로 있다고, 나도 공동체에 속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는데 왜 나에게 저렇게 무례하게 행동할까 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사모라는 자리를 감당하기 싫어졌고 나에게 그런 형식으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자니 시간마다 내 마음은 지옥이었고 교회를 가는 것조차 싫었다.
그러던 중 어느 금요일에는 퇴근을 하고 일찍 용산을 가자니 너무 아쉬운 마음에 남편에게 연락도 없이 교회에 가지 않는 일탈을 해버렸다. 교회에 가지 못할 상황이 생기면 이유가 뭐가 되었든 항상 연락을 남겨두곤 했는데 이번엔 잠수를 타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디쯤 오고 있는지 묻는 연락이 온 걸 봤음에도 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친구와 놀다가 10시가 넘어서야 기차를 타고 용산으로 향했다. 교회도 안 갔고 남편 연락도 받지 않고 내가 한 행동들의 대한 후폭풍의 압박이 밀려오기 시작했지만, 기차 안에서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그런 내 모습에도 남편은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용산역으로 나를 마중 나오겠다는 말을 했다. 주차장에 있는 남편과 만났고 우리는 한강으로 직진했다. 도착해서 내가 오늘 연락도 받지 않은 이유와 교회를 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말했다. 남편의 반응은 나의 예상 밖이었다. 화가 나 보이지는 않았기에 꾸짖지 않을 거라고는 알았지만 당신의 감정과 당신의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을 텐데,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나를 토닥여주었다. 그 모습에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한바탕 쏟았고 내가 저지른 이 행동들이 하나님 앞에서 또 남편 앞에서 너무 죄스러운 마음이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미운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아주 일부분의 감정이었다. 일부분일정도로 그렇게나 미웠던가보다.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한 가지의 모습에만 꽂혀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이 상황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만 했다. 그래야 내가 무탈히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과의 대화도 스무스하게 잘 마무리되었고, 한층 가벼운 마음으로 웃고, 떠들고,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네일아트 받는 것을 좋아했고, 페디큐어 받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도 좋아한다. 결혼 전부터 결혼 초까지 주기적으로 샵에 갔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휴가도 갈 겸, 여름 분위기를 내고 싶어서 수박과 체리가 그려진 입체 네일아트를 받은 적이 있다. 주일이 되어 교회에 갔고, 정수기 앞에서 물을 먹던 나를 보며 한 분이 말씀하셨다. "아우 사모님~ 전도사님 사례비 얼마나 된다고 맨날 그렇게 손톱이 바뀌어~ 이렇게 한번 받으면 얼마씩 들어?" 이뿐 아니다. "사모님은 페디도 자주 하네~ 페디는 비싸던데~" 나는 나를 위해서 투자하면 안 되는 건가? 정확히 따지자면, 이때 나는 일을 하고 있었고 내가 벌어서 내가 썼는데 이런 것도 허락 맡고 해야 하나? 허락을 맡을 이유는 또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하기까지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배려는 조금도 없었을까? 나를 향한 저 질문들이 굉장히 불쾌했다. 전도사님 사례비는 건들지도 않았을뿐더러 만약 전도사님 사례비로 투자했다고 하더라도 내 남편이 수고하여 받은 사례비이며, 내 남편도 허락한 미용을 왜 제삼자가 왈가왈부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이런 유사스러운 일은 후에도 두 번이나 더 일어났고, 나는 화가 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면서 남편에게 하소연하듯이 말을 했다. 남편은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답을 주었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고, 누구나 맞지 않는 사람은 있다고. 그 일 이후로 4년쯤 되었을까? 나는 현재까지 네일아트를 받은 적이 딱 한번 있다. (페디는 열심히 받음) 조금의 딱지가 보이 기라도 하면 뜯으려는 이들에게 가십거리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사모라는 직분은 직업은 아니지만 직업 같다. 제약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다.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많다. 나도 감정을 느끼는 좋고 싫음이 분명한 인격체이기에 존중받고 싶고 배려받고 싶다. 저런 무례한 말들로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 때문에 낭비되는 시간을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나지만
그럼에도 내가 받아들이고 인정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남편이 꿈꾸는 미래에 내가 함께 하는 그림이 생성되려면 이런 모습으로 계속 살아갈 수 없겠구나, 남편이 비전을 가지고 있는데 그 비전을 내가 돕지 못할 거라면 해는 되지 말자 라는 마음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내가 계속 일탈을 한다면? 내가 계속 힘들어한다면? 그런 나를 보는 남편은 어떤 기분일까? 아마 당신의 직업을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것 같다. 내가 아니어도 남편의 하루는, 일주일은, 1년은 늘 바쁘다. 그런 불필요한 감정의 늪에 빠져서 에너지를 낭비하게 하고 싶지 않다. 물론 이렇게 마인드체인지를 해도 여전히 나의 마음을 어렵게 하는 사람들은 있다. 하지만 상황을 바꿀 수 없기에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크리스 콜퍼는 말했다. "계속해서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사포라고 생각하세요. 나를 긁어대며 상처 입히겠지만, 결국 당신은 윤이 나고 그들은 쓸모없어질 겁니다."라고 말이다. 4년 전보다 4년이 지난 지금, 조금은 더 단단해졌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윤이 나 빛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아울러 그들이 쓸모없어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때로는 어우러져 같이 빛을 내는 사람들이기를 바라고, 함께 하나님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로써 타인의 허물이나 약점만 보기보다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먼저는 나부터, 그리고 모두가 윤이 나는 삶을 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