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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an 18. 2024

무능함을 받아들이는 과정

2022년 봄을 맞이하며 썼던 글

어느새 완연한 봄이다. 나에게는 하얀 입김이 흩어지던 새해 첫날보다 따뜻한 이 봄이 더 진정한 한 해의 시작처럼 느껴진다. 새 학기를 맞이하는 학생들의 설렘에 비할 바는 못 되더라도 나 같은 직장인에게도 봄은 새 출발이긴 하다. 바로 한 해의 고과평가가 시작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3월에 세운 MBO 항목을 바탕으로 연말에 내가 100점 만점 중 몇 점이나 채웠는지를 계산하여 고과 점수를 받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시즌이 돌아왔다. 출근해 보니 메일함에 올해의 업무 목표 목록이 와 있었다. 작년까지의 나의 성과는 초기화되었고, 새로 또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다른 회사나 부서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부서에서는 개개인이 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MBO를 개개인마다 차이를 두지 않고 모든 부서원들이 부서장이 정해주는 동일한 항목들로 통일하여 수립한다. 그 항목들도 매년 별반 바뀌는 게 없다. 그래서 이 절차도 딱히 새롭거나 설레지 않는, 그냥 형식적인 의례일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 그룹장님이 보내주신 목록을 보니 이전과 달리 하나 특이한 게 있었다. 10점짜리 마지막 항목이었는데, 전혀 수정할 것 없이 그대로 입력하면 되던 다른 항목들과 달리 그 항목은 자유 항목이었다. '어떤 것이든 부서나 실험실의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해 개인이 맡은 업무와 관련하여 할 수 있는 일을 선정하여 달성하라.' 그리고 예시로 주어진 진부한 항목 대여섯 개.

나는 그 문항에 타이핑 커서를 올려둔 채 한참을 바라만 보다가 주변 사람들한테 도움을 구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항목 어떻게 적으셨어요? 한 선배가 그냥 예시로 주어진 항목 몇 개를 그대로 옮겨 적었다고 대답하다가 반색했다. "그러고 보니 소연 이번에 진급연차네!? 그럼 뭐든 다 하겠다고 적어야지!" 진급연차는 그 해 고과에 따라 진급 여부가 결정되는 연차이다. 직장인 5년 차, 만으로 4년, 올해 받는 고과가 벌써 네 번째 고과인 나는 어느새 사원 중에서 가장 연차가 높은 주니어 대장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회사생활 중 가장 중요한 시기일 텐데, 나는 열심히 하라는 선배의 말을 듣고도 아무 의욕이 들지 않았다. “아이, 저 그냥 대리 안 될래요, 계속 사원으로 있을래요~!” 장난스럽게 투정 부리듯 말하고는, ‘그렇게 열심히 해야 하는 거라면 그냥 진급 안 하고 말래요’ 하는 뒷말은 삼켰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제약회사의 품질관리(Quality Control) 업무로, 의약품이 제대로 만들어졌는 지를 각종 실험을 통해 확인하는 부서이다. 제품이 출고되기 전 마지막으로 거치는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이기도 하다. 앞선 생산 공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더라도 제품의 출고 일자가 지연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항상 촉박하다. 어마어마한 규모로 생산되는 정규 생산 검체뿐 아니라 각종 조사 목적의 비정규 검체까지 끊임없이 실험해야 하는 우리 부서는 회사에서 가장 바쁜 부서로 손꼽힌다. 그렇게 일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제약회사기 때문에 지켜야 할 온갖 절차와 규범이 아주 엄격하다. 그런 우리 부서에서 필요한 역량은 동시에 여러 일을 계획적으로 빠르게 처리하는 능력과 절대 실수하지 않는 꼼꼼함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둘 다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런 능력이 요구되는 것은 비단 우리 부서뿐만이 아닐 것이다. 회사원으로 살기로 한 이상, 아니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일을 계획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실수를 많이 하는 것은 고쳐야 할 열등한 형질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도망쳐봤자 어디서든 마찬가지일 뿐이다. 부서 특성인지 우리 부서 사람들은 다들 성실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일을 잘한다'라고 감탄을 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입 때 온갖 사고를 치던 나는 그들을 보며 나도 언젠가 그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극복하자. 일처리가 느리면 더 시간을 쏟아붓자. 그래서 보란 듯이 1인 분 이상 제대로 해내자. 실수를 많이 하는 편이기 때문에 이를 상쇄할 만큼 더 성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슬슬 선배 노릇을 시작해야 했던 작년에 내가 세운 2021년 새해 목표는 '회사 일을 열심히 하자'였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이제는 그 노력을 인정받아 고과도 잘 받아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일을 열심히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시간을 갈아 넣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 많더라도 심야근무를 하고 주말 출근을 하면 도저히 못 한다고 할 만한 일은 없었다. 세포를 키우는 생산 공정이 24시간 돌아가기 때문에 일반 사무직과 달리 우리는 휴일이나 밤낮의 구분이 애매한 편이다. 거기다 실험 장비를 다루는 업무라서 장비가 말을 안 듣기라도 하면 이것저것 조작해 보느라 밤 12시가 넘어서 퇴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렇듯 애초에 ‘Work-Life balance’를 추구할 수 없는 환경이었는데,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까지 한 터라 나의 Life는 더욱 비중이 줄어들었다. 일을 잘한다는 말을 들으려면 주어진 일만 해서는 안 되는데, 주어진 일만 하기에도 물이 목까지 차오르는 것 같은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Work로만 가득 찬 내 삶은 잿빛이었다. 분명 한 때는 회사 밖 삶도 챙기려고 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내가 하고 싶었던 그 모든 게 뒷전으로 밀렸다. 퇴근하면 씻고 바로 자도 잠이 늘 부족했고, 휴일에는 그 부족한 잠을 채우기 바빴다. 쉬는 와중에도 바로바로 메신저와 메일을 확인하면서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래서 다른 모든 게 피곤했다. 친구들의 연락에 답 하는 것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무언가 취미 활동을 하는 것도 귀찮았다. 세상과 단절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실험 결과가 안 나와서 계속 붙들고 있다가 결국 포기하고 밤늦게 퇴근하는 길이었다. 차에 타서 시동을 걸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들었다고 하소연하고 위로받고 싶었는데, 이 밤에 불쑥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 이 암담한 기분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사내 심리상담소 홍보가 한창이었다. 우연히 홍보글을 보고는 한 번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는 이 상황을 타개할 자신이 없어서 용기를 내어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첫 상담은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내 문제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듯이 그 증상을 얘기하면 선생님이 적절한 처방을 내려줄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단번에 환부에 접근하기보다는 나의 표면부터 아주 조금씩 파헤치기 시작했다. 심리상담이란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따뜻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걸로 심리적 안정을 얻는 효과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나의 태도는 좀 방어적이었고, 우리의 대화는 상담이라기보단 마치 창과 방패의 대립 같았다.

그렇지만 그 당시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었기에 나는 성실히 상담실을 찾긴 했다. 몇 번 더 약속을 잡고, 어느 순간에는 일상을 편하게 공유하기도 했다. 그날은 마침 내가 새로운 업무를 지시받은 날이었다. 안 그래도 바쁜 와중에 또 일거리가 주어져서 숨이 막히지만, 한편으로는 그룹장님이 내게 일을 몰아줄수록 내가 인정받는 느낌이 들어서 뿌듯하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그럴수록 더 보란 듯이 잘 해내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긍정적이고 의욕적인 내 말이 선생님이 어떤 공감과 격려를 해주실지 두근거리며 기다리고 있는데, 선생님의 반응은 다소 뜻밖이었다. "왜 잘 해내는 걸 보여주고 싶나요? 그러면 행복할 것 같나요?"

나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해서 내가 열심히 하려는 이유를 잠깐 생각해 보았다. 진급을 제때 하고 싶어서, 내가 무능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일 잘하는,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가 되고 싶어서. 그런 내 대답에 선생님은 계속 ‘왜?’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왜 진급이 늦어지면 안 돼요? 왜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가 되고 싶어요? 왜 무능한 사람으로 안 보이고 싶어요?” 그 질문들은 마치 '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와 비슷하게 들렸다. 지금까지 내가 당연한 진리이자 사람이면 누구나 추구하는 가치라 여기던 명제에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어떤 방향이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건 너무나 당연한 욕망 아닌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다 보니 말문이 막혔고, 그런 나를 보며 선생님이 결론을 내리셨다.


“소연 씨는 결국,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일을 열심히 하려는 거 아니에요?”

나는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아니라는 반박들이 두서없이 쏟아졌지만 입 밖으로 내뱉을 정제된 근거가 없었다. 나는 간신히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을 정도로 내 몫을 제대로 하는 게 내 정의이자 가치관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왜 민폐를 끼치는 걸 그렇게 걱정하는 거냐고 되물으셨다. “왜 그렇게 타인 위주의 삶을 사는 거예요?” 내가 일이 하고 싶거나 일이 즐거워서가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내 일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일을 대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남들이 실망하든 욕하든 신경 쓰지 말고 일은 대충 하고, 대신 어떤 걸 할 때 가장 행복한 지 고민해서 그걸 하는 데 시간을 투자해 보라고 덧붙이셨다.

지금까지의 내 생각의 근간을 뒤흔드는 그 결론이 불쾌했다. 내가 나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회사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한 이유가 단순히 '나의 이미지 관리'로 폄하된 것 같았다. 나의 책임감, 도덕성, 양심, 정의감, 그 모든 게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선생님은 제삼자니까 남들한테 욕먹어도 신경 쓰지 말라는 무책임한 소리를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 안 그러고 싶겠냐고, 대충 할 수 있는 분위기면 진작 대충 했겠지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겠냐고 내뱉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렇게 그날의 상담은 끝이 났고, 상담실을 나오고도 나는 한참 동안 남아 있는 착잡함을 곱씹었다. 그 뒤로 몇 번 더 상담이 진행되다가, 바빠서 몇 번 예약을 취소했다가, 그렇게 내 상담은 제대로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흐지부지하게 끝이 났다.

그 뒤로도 나는 똑같이 바빴고 내 일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상담 때 너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해서, 혹은 마지막에 제대로 상담을 끝내지 못해서 별 효과가 없는 건가 싶었다. 혼자 나름대로는 바쁜 환경에 잠식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회사 일에 치여 사느라 내가 시들어버린 것은 사실이었다. 친한 친구가 그런 나를 이렇게 표현했다.


 "대학생 때의 너는 통 치면 통 튀어 오르는 탱탱볼 같았는데, 지금은 툭 떨어뜨리면 힘없이 데구루루 굴러갈 것 같아…"


슬펐지만 그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어른은 어릴 때의 빛을 잃는 거라고. 지친 직장인은 다 똑같다고.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지친 직장인으로 살 생각을 하니, 문득 나의 인생에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늘 빨리 퇴근하기 위해 밥도 안 먹고 일하는 부서 사람들에게 밥을 챙겨 먹자고 권유했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밥도 못 먹고 일하면 너무 서럽잖아요. 이 시점에서 나 스스로에게 비슷한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일을 하는가. 나는 단지 필수적인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일을 하는 건데, 돌아보니 일하느라 정작 내가 원하던 다른 것들을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면서 살고 있었다.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어 버렸다. 그 해, 2021년을 시작하면서 처음 쓴 일기의 제목은 '번아웃'이었다. 그리고 1년 동안 적은 일기에는 온통 회사 때문에 정신없었다는 내용투성이었고, 그렇게 1년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쓴 일기에서도 여전히 나는 번아웃을 토로하고 있었다. 결국 변함없이 미련한 1년이었다. 그리고 아마 지금까지의 4년도 똑같았을 것이다. 입사한 이래로 나는 늘 바쁘고 숨 가쁜 사람이었다.

한 해가 끝날 때까지 조금만 더 버티자 했던 그 해 연말에 나는 사고를 쳤다. 크다면 크고 별 것 아니라면 아닌 일이었지만 나는 절망감을 느꼈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한 한 해였는데, 그 노력이 모두 와르르 무너진 기분이었다. 내가 들인 노력은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기가 어려웠는데, 내가 한 실수는 너무나 확연히 두드러졌다. 그 실수 탓은 아니지만 그 해 고과는 기대했던 것보다 실망스러웠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그냥 이게 내가 최선을 다 한 결과구나 싶었던 것 같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꺾였다.

그제야 상담선생님이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내가 일을 열심히 하려는 이유가 단지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라는 그 말이 그때는 너무 아니꼽게 들렸다. 그런데 막상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얻게 되고, 애써 쌓아 온 일 잘하는 이미지가 실수 한 번에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놀랍도록 후련해졌다. 그렇게 쉽게 접을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진정으로 바라고 추구하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시 스스로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명확히 나열할 수는 없지만 대충 꼽아 보는 내 행복의 충분조건에는 '유능함'이란 조건은 없었다. 나는 결코 남들보다 똑똑하거나 유능해야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나의 무능함이 싫어서 벗어나려고 한 것은 남들이 나에게 가지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대는 서울대라는 학벌 때문이기도 하고, 5년 차라는 연차 때문이기도 하고, 가끔씩 내가 보여주는 영리한 모습들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순간 나는 딱히 총명하거나 성실하지 않다. 나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 간극을 메워야 한다는 강박에 발버둥 쳤다. 정작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말이다.

내가 쫓고 있었던 게 실체가 없음을 깨달았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보란 듯이 극복해 내서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일을 열심히 하면서 느낀 건 회사에서 ‘나’는 너무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회사란 내가 어떤 일을 해냈을 때, 그걸 해낸 나라는 개인에 주목하지 않고 단지 그 일이 완료되었다는 사실만 필요로 하는 곳이었다. 반대로 내가 어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도, 그 역할을 대신할 다른 누군가가 있기만 하면 된다. 개인에 대한 인정이나 실망 같은 건 단지 나의 순진한 자의식 과잉이었다. 만약 내가 정말 유능한 이미지였다면 내게 돌아오는 건 단지 업무 폭탄뿐이었을 것이다. 굳이 더 성능 좋은 일꾼이 되고 싶어서 아등바등했던 게 어리석게 느껴졌다. 철저히 개인이 수단화되는 이곳에서, 나 역시 회사를 단지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내가 무능함을 인정하기로 했다. 아니, 내가 무능한 지 유능한 지 상관없다. 더 이상 스스로에게 잣대를 들이대지 않기로 했다. 해야 할 것 같아서 하는 것들보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들에 더 시간을 쏟기로 했다. 나는 좀 더 일을 성실히 처리해서 칭찬을 듣는 것보다 빨리 퇴근해서 침대에 누워서 웹툰을 보는 게으름이 좋고, 빨리 진급해서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보다 쉬는 날 회사의 연락을 안 받고 실컷 놀 수 있는 무책임이 더 좋은 사람이다. 그렇게 세상이 주입한 보편적인 가치가 아니라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를 쫓는 데에 에너지를 더 쓰고 싶다.

그렇게 세운 2022년 새해 목표는 '회사 일은 적당히 하자'이다. 언제나 '적당히'가 가장 어렵다. 딱히 두드러지지도, 책잡히지도, 권태로워지지도, 지치지도, 적을 만들지도, 편을 만들지도 않게. 그 어중간한 균형을 잘 잡아나가는 것이 올 한 해 MBO보다 더 중요한 나의 목표이다. 아마 또 2년쯤 지나서 이 글을 보면 지금의 생각이 귀엽게 느껴질 것도 같다. 어떤 마음가짐이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게 나 자신이라는 생각으로 중심을 잡아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입사한 지 5년째, 나는 여전히 회사 생활을 배워가는 중이다.


*


그리고 이 글을 쓴 지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동안 무엇이 달라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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