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픈 직장 내 인간관계
회사 사람은 회사 사람일 뿐일까
화요일이던가, 사무실을 가로지르면서 내 자리를 지나치던 파트장님이 갑자기 옆에 털썩 앉으면서 말하셨다. "혼날래!?" 또 어떤 혼날 일이 있는 걸까 긴장하고 있었더니, "자꾸 늦게 다닐래?" 하는 꾸중이 뒤따랐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안 그래도 요 며칠 계속 늦게 출근을 하고 있어서 스스로도 좀 켕기던 참이었다. 변명거리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계속 야근으로 밤늦게 퇴근하고 있다느니, 우리 회사가 자율출퇴근을 자랑스러운 복지로 강조하고 있다느니 하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는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파트장님도 민망해하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냥 곱게 "주의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자 파트장님은 "으이구" 하고는 떠나셨다. 걱정했던 것보다 가볍고 장난스러운 꾸지람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왠지 서글펐다.
나와 파트장님은 부서 배치 동기이다. 내가 공채 신입으로 입사해서 부서에 배정받았을 때, 경력직으로 입사한 파트장님은 나보다 겨우 한 달 정도 빨리 부서에 오신 동지였다.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쭈뼛거리는 부서 신입들끼리 밥을 함께 먹게 되었다. 우리는 회사에 대해서, 업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시기를 함께 했다. 나이와 직급 차이가 있으니 막역한 사이는 못 되었지만 그래도 부서에서 가장 반가운 사이였다.
몇 달이 지나 각자 맡은 업무가 달라지게 되면서 그 신입 무리는 와해되었다. 파트장님은 우리 동기들보다 시니어 무리와 어울리게 되셨다. 그렇지만 우리는 계속 농담 삼아 우리가 동기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서로 각별한 정이 있었다. 업무를 지시하는 사이가 되었을 때도 파트장님이 다른 부서원들보다 우리에게 유독 더 유하다고 느낀 것은 내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신입이었던 내가 대리를 달 동안, 파트장님은 과장이 되어 파트장이라는 직책을 맡게 되셨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분이셨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파트장이 되신 그분은 몰라보게 엄해지셨다. 그전까지의 우리 부서는 실수에 너그러웠다. 실수가 치명적인 부서지만, 사람이라면 실수를 할 수밖에 없으니 탓하기보단 대책을 세우자는 분위기였다. 실수투성이인 내가 자책하면서도 계속 부서에 남아 있을 수 있던 이유였다. 그런데 파트장님은 실수를 막으려면 호되게 혼내서 실수를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계셨다. 혼나는 일이 반복되는 사무실 분위기가 삭막해졌다. 우리는 그런 압박이 실수를 더 유발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흔히 일이 힘든 부서는 사람들이 좋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업무량이 많은 우리 부서는 몇 년 간 감사하게도 서로 딱히 싫어하거나 기피하는 사람이 없이 돈독하게 지내왔다. 하지만 파트장님의 공포정치가 시작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파트장님이 바로 내 뒷자리에 계셨던 동안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숨 막혔다. 혼날 때를 제외하고는 서로 하루에 말 한마디 안 하기 일쑤였다. 우리는 원래 동기였는데…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시며 농담하던 때가, 서로 늦게 출근하는 것을 놀리던 때가 있었는데… 그런 생각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파트장님이 나랑 먼 곳으로 자리를 옮기시자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이번 주 목요일에는 대대적인 부서 회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우리 부서는 회식을 1년에 한두 번 할까 말까 하기 때문에, 오랜만에 회사 돈으로 소고기를 먹는다는 것에 다들 신이 났다. 그런데 회식 참여자 명단에 파트장님이 없었다. 다들 안도하며, 혹시나 뒤늦게 파트장님이 참석하실까 봐 전전긍긍했다. 이를 눈치채기라도 한 듯 파트장님은 본인의 회식 참석 여부를 가지고 농담하셨다. 투표 늦게 하는 사람 테이블로 따라갈 거라고. 나는 그 말이 너무 마음 아팠다. 부서원들이 본인을 싫어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신입 때는 업무 지시를 내리는 부서장들이 마냥 야속할 때가 많았다. 왜 우리의 워라밸이나 근무 환경을 생각해주지 않고 위에서, 다른 부서에서 시키는 업무를 다 떠맡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부서장이라면 부서원들의 입장을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를 다니면서 점점 그러지 못하는 게 당연한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부서장이 일을 잘한다는 건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대한의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또한, 우리는 단지 다들 똑같이 윗사람 말을 따라야 하는 입장일 뿐이다. 파트장님 위에는 팀장님이 계신다. 팀장님이 빨리 출근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시기 때문에, 파트장님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내게 빠른 출근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 파트장님과 나의 사이는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저 서글퍼진다. 회사 때문에 송도에 혼자 살게 되면서 내게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는 회사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깨닫는 건, 회사로 묶인 인간관계는 결국 회사 때문에 휘둘린다는 것. 아무리 친해도 일 때문에 서로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된다. 신입 때 회사 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나를 보고 학교 선배들이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했는데, 이제는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게 된다. '회사 사람은 회사 사람일 뿐'. 나는 내가 그 명제의 반례일 줄 알았다. 반례가 되고 싶었는데, 나날이 더 그 말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서 서글픈 요즘이다.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에 굳이 마음을 쓰지 말고 의연해지자. 그냥 담백하게, 비즈니스 사이로 지내면 된다.
그렇지만 나는 마음을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어찌할 수 없이 우리와 거리감이 생겨버린 파트장님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파트장님께 회식을 같이 가자고 졸라보았다. 파트장님은 아쉬워하시면서도 결국 거절하셨다. 그건 우리를 위한 배려일 것이다. 거절하실 걸 알면서도 한 마디 건네본 건, 비록 회식은 같이 안 하시더라도 우리가 파트장님을 싫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서로 일적으로 엮일 수밖에 없더라도, 우리 사이에 애정과 이해가 깔려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단지 각자의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