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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l 21. 2023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직장인 6년 차, 그래도 내 삶은 재밌다

7월 16일, 오늘은 내가 입사한 지 딱 만 5년째 되는 날로, 의미 붙이기를 좋아하는 나한테는 특별한 날이다. 그래서 매년 이맘때가 되면 동기들과 입사 N주년을 기념하는 약속을 잡느라 바쁘다.


이제는 햇수로 6년째 회사 생활을 같이 해오고 있는 같은 부서 동기 언니, 오빠와 올해는 어떤 것으로 우리의 입사 5주년을 기념할까 아이디어를 떠올리다가,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인공서핑장을 제안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언니, 오빠가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주어서 이번 주 화요일에 다 같이 연차를 쓰고 인공서핑장을 다녀왔다.


서핑은 입사 직전에 간 발리에서 한 번, 작년에 강릉에서 한 번, 그리고 이번 인공서핑장이 세 번째였다. 처음 할 때는 보드에서 고꾸라져서 모래사장에 얼굴을 엄청 박은 뒤 몸살이 났고, 작년에는 완벽하게 일어서고 싶다는 마음에 이틀 연속 레슨을 받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미련이 잔뜩 남은 채로 돌아왔다. 그렇게 벼르다가 이번에 다시 '인공서핑장은 바다에 비해서 쉽겠지? 성공할 수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호기롭게 도전했다.


그렇지만 매번 서핑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건 나는 너무너무 나약하다는 것… 푸시업 하듯 보드를 힘차게 박차고 일어나는 것도, 세찬 물살을 헤치면서 파도 한가운데까지 보드를 끌고 가는 것도 너무너무 힘들었다. 보드에 후드려맞은 온몸에 피멍이 들 것 같았다. 언니, 오빠는(심지어 오빠는 서핑 처음이었는데…!!!!) 레슨 한 번 만에 혼자서도 아주 잘 탔다. 내 타고난 하드웨어가 운동에 최적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여실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결국 나는 이번에도 서핑을 시원스레 성공하지 못했다. 서핑 한 시간을 추가 결제할까 고민했지만 지금의 지친 몸뚱이로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분한 마음을 품고 돌아서면서 언젠가를 또 기약했다. 그리고는 정신승리했다. 다음에 또 오기 위해서 지금 아쉬움을 남겨두고 돌아서는 거야. 물론, 제대로 일어서지 못했어도 당장 다시 오고 싶을 만큼 서핑은 재미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취미가 많다.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욕심도, 열정도 많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잘하는 게 없다. 모든 것에 약간의 관심만 가지고 건드려보는 수준이다. 실제로 나랑 무언가를 같이 해본 사람들은 다들 내 실력에 놀라곤 한다. 이렇게 못하는데 그렇게 좋아하는 거였냐고. 보통은 좀 잘해야 재미를 붙이고 좋아하지 않냐고.


나는 왜 다 못할까 생각해 보면 사실 원인은 명확하다. 어떤 것이든 잘한다는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한데, 나는 그 노력을 해야 할 필요성을 별로 못 느낀다. 나에게는 잘한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목표를 이루고 성취할 필요 없이 하는 행위 자체가 즐거운 게 좋다. 몸매를 만들려고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운동하는 자체가 즐거워야 하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 읽는 과정이 즐거워야 한다.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게 되면 그때부터는 내가 즐겁게 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노력이 필요한데, 나는 그게 싫다. 어쩌면 이런 마음가짐으로 임하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것도 같다.


그렇게 깔짝거리는 취미 중 하나로는 음악이 있다. 음악이 좋아서 늘 이어폰을 꽂고 살다가 그 안에 파묻히고 싶어서 밴드를 시작했다. 이제는 연주는 다 잊었지만 여전히 무대 영상과 락페스티벌을 찾아보며, 좋은 노래를 만나면 벅차오른다. 그리고 오늘은 몇 개월 째 참여하고 있는 회고모임에서 열리는 버스킹 소모임에 참여했다. 내게 회고모임은 글을 쓰기 위한 수단의 의미가 강했기 때문에, 이런 소모임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것은 처음이었다.


노래도 악기 연주도 잘하지는 못하는 내가 그 모임을 신청한 건 단지 음악 자체가 좋아서였다. 직접 공연은 못하더라도 음악을 듣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얘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했다. 막상 당일이 되자 못 끝낸 회사 일도 많이 남아있고, 내일 아침 일찍 여행 갈 짐도 싸야 하고, 차로 1시간 넘게 걸리는 모임 장소는 너무 멀고, 이번 주 내내 계속된 야근으로 너무 피곤한 나머지 참석 버튼을 누른 걸 좀 후회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첫 곡을 듣는 순간, 그 모든 이유들을 뒤로하고 여기 와서 노래를 듣기로 한 내 결정이 너무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이렇게 음악을 들으며 행복할 수 있다는 게, 세상에 이렇게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게 많다는 게 감사했다.


뭐든지 좀 더 잘하면 좀 더 즐거울 것이다. 노래든, 서핑이든, 게임이든, 러닝이든 점차 실력이 늘어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게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나는 좋아하는 단계로만 그쳐도 좋다. 그게 내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좋았던 노래들을 다시 들었다. 오늘이 만족스러웠던 덕분에 직장인으로 지냈던 나의 지난 5년도 그럭저럭 행복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5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나는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하는지, 얼마나 적당히 해도 괜찮을지, 치열하게 살지 않는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고민이 많다. 그래도 나는 재밌는 게 많은, 적당히 나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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