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는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서른 즈음의 고민들
입사 1년 차 때 학교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모아 시작했던 글쓰기 모임은 이제 햇수로 5년째가 되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글을 쓰고 공유하는 이 모임은 그동안 내 지인들을 중심으로 멤버 구성이 계속 바뀌어오다가, 재작년부터는 생명과학부 4명, 건축학과 3명으로 멤버가 고정되었다.
우리는 전부 같은 학번이지만, 공교롭게도 나를 제외한 3명의 생명과학부 친구들은 다 나보다 한 살 어리다. 그 친구들이 과학고를 조기졸업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 누나누나 하는 그 친구들을 보며 한 살 터울 내 친동생이 떠올랐다. 그래서 걔네가 나보다 똑똑하고 어른스럽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어린애 취급을 하며 기특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물론 걔네는 늘 나의 연장자 흉내를 킹받아 했지만. 내가 직장인 6년 차가 될 동안, 그 친구들은 대학원 박사 과정을 밟았고, 한 친구는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5급 공무원이 되었다. 같은 꿈을 안고 같은 날 같은 학부에 입학한 우리의 길은 그렇게 달라진 듯했다.
이번 주 글쓰기 모임을 앞두고, 각자가 쓴 글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 위해 제출된 글들을 보던 중이었다. 이번 회차에는 유독 삶과 일의 의미를 찾는 글들이 많았는데, 그중 특히 눈에 들어오는 글들이 있었다.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 친구는 <내가 하는 연구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본인이 정말 인류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걸 연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막막함과 회의감이 담긴 글이었다. 행정고시를 합격하고 5급 공무원이 된 다른 한 친구는 이렇게 썼다. 공무원은 충돌하는 입장들 사이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해야 하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다고. 공직에 헌신하는 것과 대충 일을 하는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되뇐다는 ‘일이 별로 재미가 없네.’라는 말이 마음에 박혀서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일이 별로 재미가 없다.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나의 친구들이 지금 하고 있는 그 고민들은, 내가 몇 년 전부터, 그리고 어쩌면 지금까지도 하고 있는 고민들과 같은 고민이었다.
공무원 친구가 얘기했다. 지난 몇 년 간 글쓰기 모임에서 내가 써왔던 직장생활에 대한 글들이 그때는 이해가 안 되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고.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이런 것들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고 했다. 나는 대답했다. 나 역시 처음 직장인이 되고 막막했다고.
아마 대학교에 입학할 때는 나도 부푼 꿈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생명과학도가 되어서 뭔가 걸출한 성과를 내고 싶은 포부를 자기소개서에 담았었다. 그런데 어찌저찌 시간이 흘러서 직장인이 되었다. 직장인이 문제라는 게 아니다. 학부 때까지는 내가 무엇으로든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 같았다. 그렇지만 그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해서 직장인으로 분화하자, 더 이상 무엇이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은 내 안의 가능성이 사라진 것 같았다. 앞으로 무엇을 좇으며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아마 그 친구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그때의 내가 느낀 감정과 비슷할 것이다. 나는 이런 얘기들을 하면서, 일 말고 다른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듣고 그 친구가 말했다. “누나가 나보다 먼저 직장인이 되어서 다행이다.”
그 미팅이 끝나고 한참 뒤까지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말을 하던 친구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쳐져있었다.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동생들이 똑같이 느끼고 있다는 게 속상했다. 몇 년 먼저 사회생활을 한 누나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저 “나도 그랬어” 뿐이었다. 직장인은 다 그런 것 같아, 나는 세상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나 한 몸 간수하기도 힘들어, 하는 찌든 말 대신, 결국 내가 그 허망함을 극복해 내고 일의 의미를 찾아냈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해줄 수 없다는 게 서글펐다.
나는 우리가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줄 알았다. 가끔씩은 그들이 가고 있는 길이 부러울 때가 많았다. 그런데 세상에 도움이 되는 연구가 하고 싶다는 동생에게서, 언젠가는 글쓰기로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다는 내가 겹쳐 보였다. 결국 일의 의미란 세상에 기여한다는 것에서 오는 것인지, 당장 회사의 이익을 좇아 일하던 내게 그게 부족해서 힘들었던 것인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서로를 보면서 지금이 우리의 삶의 단계가 겹치는 시기인 것 같다는 얘기를 나눴다. 서른 즈음, 지금 우리는 일이 적성에 맞는지, 의미가 있는지, 이 일을 하면서 앞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몰아치는 시기인 것이다.
어릴 때에는 서른이 되면 자리를 잡은 진짜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정작 나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하다. 그래도 요즘은 그 불안정함이 재분화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금은 설렌다는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발견하면서, 지금 내가 충분히 괜찮은 상태라는 확신이 든다. 부디 이 시기가 무사히 잘 지나가길, 그래서 일과 삶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 생기길. 그리고 좀 더 욕심을 내보자면 내 동생들도 덜 방황할 수 있길, 필요할 때 내가 누나 노릇을 해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