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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n 24. 2024

블로그 서로이웃은 받지 않아요

몇 년째 메모어라는 회고모임을 열심히 하고 있다. 매주 회고를 쓰고 공유하는 모임으로, 내가 브런치에 쓴 대부분의 글들이 사실 그 회고모임을 하면서 쓴 글이다.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12주 간의 메모어 활동이 또 한 기수 끝났다. 공교롭게도 나의 병가도 이번 주가 마지막으로, 다음 주부터는 다시 출근을 하게 된다. 치열하게 놀고 쉬었던 지난 세 달, 안녕!


올해 상반기를 마무리하면서 지난 반년 간의 회고들을 쭉 훑어보았다. 메모어를 몇 기수째 하면서 공교롭게도 가장 극적인 순간들을 메모어 매 기수를 쉬는 기간 동안 맞이했다. 13기가 끝나고 정신적으로 무너졌고, 14기가 끝나고는 결국 병가를 냈다. 15기가 끝나고서야 다시 회사로 돌아가게 되어서 복직 회고는 쓰지 못하게 되었다. 정말 공교롭게도, 나의 가장 힘든 순간들이 회고에는 담기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매 회고를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하면서도 남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배설하는 건 지양하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은 연초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드문드문 떠오르는 파편 같은 기억들과 나의 기록들로 되짚어볼 뿐이다. 내가 병가를 쓴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다들 “진짜 아픈 거 아니지..?”라고 물어보았고, 나는 능청스럽게 “그럼요, 저 건강해요!”라고 대답했었다. 나는 안팎으로 괜찮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때 단단히 병들어있었다. 남들 눈을 피해서 허구한 날 울기 일쑤였고 다시는 회사에서 웃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일기를 썼다. 연초에 친구들과 새해 목표를 공유하면서 3월까지 버틸 수 없을 것 같다는 얘기를 했었다. 못 버티면 어떻게 될 거였을까? 막연하게 내가 펑 터져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그냥 퇴사하면 되지, 건강한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냥 퇴사하는 게 더 무서웠다. 변변치 못한 미래의 나 자신이 그 선택을 죽고 싶을 만큼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업무 스트레스로 죽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창 정신적으로 몰려있던 그 시기에 가장 친한 친구 한 명이 새해인사를 해왔다. 잘 지내냐는 말에, 빈말은 못하는 나는 또 곧이곧대로 잘 못 지낸다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구구절절 어떤 상황이 나를 힘들게 하고 내가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 친구와 괜히 고민을 나눠지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그보다 그냥 내가 그런 말을 할 에너지가 없었다. 나는 그때 상담도 받고 있었고 정신과도 다니던 참이었다. 만약 내가 고민이 있어서 조언을 구하는 상황이면 모르겠지만, 단지 털어놓기만 하는 건 이미 충분했다. 굳이 친구한테까지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게 시간낭비라고 느껴졌다. 어차피 그 친구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위로? 공감? 나에게 필요한 건 이 상황을 빨리 헤쳐나가는 것뿐이었고 그건 내 몫이었다. 어차피 내 상황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불가능할 그 친구한테 나 혼자서도 정리하지 못한 날것의 생각들을 투척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몇 번 연락을 회피했다가, 계속되는 연락에 솔직하게 털어놨다. 지금 너한테까지 말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 나중에... 뭔가 내가 결정을 내리고 상황이 일단락되면 연락할게. 대신에 어떻게 지내는지 블로그에 일기로 쓸 테니까 걱정되면 봐줘.


참으로 이기적이고 일방적인 소통이었다. 나는 그냥 제멋대로 토해낼 테니 궁금하면 네가 찾아와서 보라는 통보였다. 물론 그때의 나는 그 친구와의 관계를 신경 쓸 여유도 없었고, 한편으로는 그 친구가 이해해 줄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나의 근황들을 블로그에 서로이웃 공개로 적었다. 누구와 상담을 하고, 면담을 하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 친구는 그 일기들을 살뜰히 읽어주었다. 그러고는 가끔 그것에 대해 연락을 줬다. 이런 일이 있었구나, 잘했네, 그래도 좀 나아진 것 같아서 다행이다. 타인에게 걱정거리를 잘 공유하지 않고 가장 힘들 때면 홀로 침전하던 나로서는 미처 몰랐다. 그렇게 나를 걱정하면서 지켜봐 주는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감사하고 든든한지. 그 마음들이 모여서 나를 버틸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휴직을 하고 발리 여행을 떠나면서 비밀 일기장이었던 블로그는 전체공개 여행 블로그가 되었다. 그러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 블로그 글들을 읽어주었고 이웃 신청을 해왔다. 그렇지만 서로이웃을 맺을 수는 없었다. 서로이웃 공개 글들은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고 지우지도 않고 그 상태로 놔두고픈 글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블로그 인사말에 적어두었다. 서로이웃 신청은 받지 않아요.


내 기억 속에서도 잊힌 그 글들을 이번 상반기 회고를 돌아보기 위해 다시 읽어보았다. 나는 사람은 매 순간 변해서 새로운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 자신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오직 지금 이 순간을 맞이하는 나뿐이다. 그 일기들을 썼던 과거의 나의 심정을 떠올렸다. 지금 내가 이렇게 잘 지낼지 몰라서 불안했을 그때의 나에게, 어쨌든 모든 순간은 지나가고 결국에는 행복해질 거라는 확신을 전해주고 싶다. 대신 여기에 적는다. 언젠가의 내가, 그리고 이 글을 읽을 누군가가 그 진리를 또 잊고 불안해하지 않도록. 그리고 다시금 깨닫는다. 지금 이렇게 내가 건강해진 것은 그 친구를 비롯하여 그간 내 주변에 있어준 사람들 덕분이라는 것을. 상반기를 되돌아보며 감사했던 것들을 적어보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언제나 그랬듯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나를 살게 하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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