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우체통이라는 게 있다. 석 달, 반년, 혹은 1년, 일정 기간이 지나서야 배송되는 편지이다. 나는 그것을 두 번 써봤다.
처음 느린 편지를 써본 것은 2018년 가을이었다. 막 부서배치를 받은 시기였는데, 동기들 중 가장 실수가 잦아서 주눅이 들어 있던 때였다. 대학교 동아리 친구들이 여행을 가서 각자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 다시 모이는, 일명 <같이 혼자 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그렇게 떠난 여수에서 혼자 바닷가를 거닐다가 느린 우체통을 마주했다.
인생에는 급격한 변화와 경험을 겪는 시기들이 있다. 입사 초가 또 하나의 그런 시기였고,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내가 변화의 한가운데 서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때 마주한 느린 우체통은 그 변화를 돌아보기에 참 좋은 기회 같았다. 신입일 때 쓴 편지를 1년 뒤의 성장한 내가 보면 재밌고 뿌듯할 거라 기대했다. 이 편지를 볼 때쯤엔 멋진 직장인이 되어있겠지?
1년이 지나 잊고 있던 어느 날 편지가 도착했다. 그런데, 그 편지를 봤는데 놀랍게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조금 속상했다. 1년의 시간 동안 나는 과거의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실수를 안 하게 되지도, 멋진 선배가 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변화가 없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썼던 과거의 나한테 조금 미안할 지경이었다.
두 번째로 느린 편지를 쓴 것은 올해 2월이었다. 설연휴를 맞아 본가에 내려갔다가 더 길게 연차를 쓰고 머물렀다. 보통 본가는 연휴나 주말에 갔으므로, 평일을 본가에서 보내는 건 무척 오랜만이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 자주 방문하던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때, 도서관 한쪽에 설치해 둔 느린 우체통을 발견했다. 세 달이 지나 편지 쓴 것을 잊을 때쯤에 도착할 거라고 했다. 그때 떠오르는 애틋한 친구한테 먼저 한 통을 썼다. 그리고 나한테도 짧게 한 통을 보냈다.
그렇게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지난주에 친구가 편지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럼 내 편지도 도착했을 테니 송도로 돌아오자마자 우편함을 열어보았다. 어렴풋하게 기억하는 지난 2월의 나는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막막하던 그 시기에 보낸 편지가 세 달이 지나서 도착했다. 그때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두근대면서 꺼낸 편지는 생각보다 더 간결했다.
3개월이 지난 날의 너는 좀 어때? 부서는 옮겼는지, 병가는 썼는지, 건강한지, 글은 계속 쓰는지… 오늘의 나는 집에서 쉬면서 잘 보냈는데, 3개월 뒤의 나는 더 행복하길!
별 내용 없는 그 편지에, 그때의 내가 묻어 있었다. 친구는 내 편지로부터 미래의 자신을 생각해 주는 마음을 받았다고 했다. 느린 편지에 담긴 것은 그 사람을 향한 기원의 마음인 것 같다. 지금의 내가 단지 행복하길 기도했을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서, 이번에는 그 기대에 부응한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수시로 되뇌곤 하던 그 말대로, 결국 어찌어찌 무사히 지나갔고 나는 더 행복해졌다. 그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