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나를 소모시키지 않는 선택

by 조이풀


오랫동안 나는 ‘기대’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만 생각했다. 기대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고, 더 나은 결과를 향한 동력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늘 무언가를 기대했다. 계획을 세우는 순간부터,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일에 기대를 걸었다. 일의 중간에서는 머릿속으로 희망 회로를 돌리며 완성 이후의 장면을 먼저 그려보곤 했다. 그 장면이 언젠가는 현실이 되기를 바라며 스스로를 밀어붙였다.


기대를 품지 않으면 삶이 쉽게 흐트러진다고 느꼈다. 그동안 나에게 기대는 삶의 방향을 맞춰주는 나침반 같은 것이었다. 나 자신에게도, 미래에게도, 일과 관계에도 기대를 걸어두었다. 기대는 생각에 머물던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 덕분에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모든 일이 기대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인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대는 더 이상 나를 밀어주는 힘이 아니었다. 오히려 등을 짓누르는 무게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일상이 이어졌고, 특별한 사건도 없었다. 하지만 이유 없이 마음이 무거워졌고, 하루를 마치고 나면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가 남았다.


시간이 지나서야 문제를 알아차렸다.



내가 품고 있던 기대의 일부가
내가 아닌 타인의 선택과 행동에 기대고 있었다는 사실을.



‘내가 이렇게 해내야지’라는 다짐과 함께, ‘저 사람이라면 이렇게 해주겠지’라는 전제가 섞여 있었다. 그 순간부터 기대는 나의 영역이 아니게 되었고,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타인의 반응과 결정에 걸린 기대는,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나를 먼저 지치게 만들었다.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에너지는 소모되고 있었다. 일을 하다가도 문득 그 기대가 떠올랐고, 아직 오지 않은 상황을 미리 상상하며 마음을 써버렸다. 기대는 희망이 아니라, 조용히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구멍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그제야 분명해졌다. 나의 내면과 과정에 거는 기대가 아닌, 타인의 행동과 선택에 거는 기대는 과도한 정신적 비용을 요구한다는 것. 방향이 잘못된 노력은 헛물이 되듯, 목적이 어긋난 기대 역시 나를 짓누르는 무게가 된다.



그래서 나는 기대를 없애지 않고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결과를 앞당겨 상상하는 대신, 지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과정에만 기대를 두기로 했다. 타인의 선택에 희망을 걸기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기대가 가벼워졌다고 삶이 갑자기 좋아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불확실하고, 여전히 답은 없다. 다만 예전처럼 이유 없이 에너지가 소모되지는 않았다. 기대가 나를 끌고 가는 대신, 내가 기대를 다루고 있다는 감각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제의 나는 기대를 품되 매달리지 않는다. 기대를 하되, 그것이 나의 전부가 되게 두지 않는다. 그 차이가 나를 조금 덜 지치게 만들고, 조금 더 오래 버티게 한다.


어쩌면 다음 단계는, 기대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넘어 기대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받아들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그 지점으로 조용히 이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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