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라는 도시를 이해하기까지 걸린 시간
서울에서 나는 아직도 이방인이다. 올라온 지 3년도 채 되지 않았다. 워낙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서울로 독립한 뒤에도 생활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밖에 나가는 일은 늘 목적 중심이었다. 장을 보고, 은행을 들르고, 필요한 물건을 사고, 가능하면 밥까지 해결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닫으면 늘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한동안은 다시 안 나가도 되겠지."
어쩌면 서울 때문이 아니라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혼자 사는 일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그 조용함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렇게 집 안에만 머물러도 괜찮을까. 이 낯선 도시에서 나는 얼마나 오래 살아갈 수 있을까. 가끔은 그런 걱정이 현실처럼 가까워졌다.
나는 원래도 느린 사람이었다. 책을 읽는 속도도, 이해하는 속도도, 생각이 정리되는 속도도 늘 남들보다 한 박자 늦었다. 결정을 내리는 데도 시간이 걸렸고, 익숙해지는 데는 더 오래 걸렸다.
그런 내가 선택한 도시는 서울이었다. 서울은 생각보다 훨씬 빠른 도시였다. 길 위의 사람들은 대부분 목적이 분명해 보였다. 걷는 속도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누구도 쉽게 멈추지 않았다. 줄을 서는 방식조차 달랐다. 직접 줄을 서기보다 앱으로 번호를 뽑고, 도착 시간을 계산했다. 팝업스토어 하나를 가더라도 예약부터 해야 했다. 길 위에서 기다리는 시간조차 줄이려는 도시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그 풍경이 낯설었다. 모두가 어딘가 급해 보였고, 나만 자꾸 뒤처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오래 보다 보니 조금 다르게 보였다.
급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함부로 쓰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 차이는 점심시간에도 선명했다. 지방에서는 점심시간에 식당으로 향하면 대체로 자리가 있었다. 사람이 많아도 잠시 기다리면 금방 순서가 왔다. 서울에서는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모두가 동시에 움직였다. 회사 밖으로 나가 식당으로 향해도 이미 줄이 길었다. 몇 번은 식당을 찾아 20분 넘게 헤맨 적도 있었다. 결국 식당을 찾지 못해 근처 카페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급히 먹고 돌아온 날도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서울에서는 밥 먹는 시간조차 리듬이 분명하다는 것을.
서울의 빠름은 걷는 속도뿐 아니라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도 느껴졌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선이 분명했다. 시골에서 익숙했던 방식—말 한마디 더 건네고, 반찬 하나 더 권하고, 자연스럽게 서로의 공간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은 여기서 자주 보이지 않았다. 대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배려가 있었다. 친하지 않으면 음식을 쉽게 나누지 않고, 점심도 자연스럽게 각자의 리듬대로 해결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차갑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그건 무관심이라기보다,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서울에서 나만 유난히 뒤처지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서울은 특별한 사람들만 사는 도시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능력이 뛰어나거나, 빠르거나, 무엇인가 분명한 사람들만 버틸 수 있는 곳이라고. 나는 너무 평범해서 어울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서울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의외로 평범했다. 지하철 안에는 피곤한 얼굴들이 있었고, 편의점 앞에서는 컵라면을 먹는 사람들이 있었고, 퇴근길 횡단보도 앞에서는 모두가 같은 신호를 기다렸다.
서울은 특별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치열하게 평범한 하루를 살아내는 도시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 카메라를 구매한 후부터였다. 처음에는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카메라를 들면 집 밖으로 나갈 이유가 생겼다. 굳이 목적이 없어도 동네를 한 바퀴 돌게 되고, 퇴근 후 골목의 빛을 한 번 더 보게 되고, 늘 지나치던 길에서 멈춰 서게 됐다.
예전에는 볼일이 끝나면 곧장 돌아왔다. 요즘은 천천히 주변을 보며 걷는다. 찍을 만한 장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나로.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서울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이해해야 하는 도시가 아니라, 가만히 바라볼 수 있는 풍경처럼 느껴졌다.
빠른 도시라고만 생각했던 곳에도 천천히 움직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 횡단보도 앞에서 신발끈을 묶는 사람, 버스 창에 기대 잠든 사람.
그 평범한 장면들이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았다. 서울 안에도 저마다 다른 속도가 있었다. 여전히 서울은 완전히 익숙하지 않다. 여전히 나는 느리고, 여전히 어딘가에서는 눈치를 본다. 하지만 전처럼 무조건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줄었다.
조금은 이 도시 안에서 머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방인인 채로도, 조금씩 섞여가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울은 여전히 빠르지만, 그 안에서 천천히 걷는 사람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아마 나는 그런 방식으로 이 도시를 익혀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