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와 회를 먹어주지 않을 때

오늘회에 24,800 원을 썼다

by 페쉬플랏

음식을 먹고 감동하는 빈도는 경험치가 높아짐에 따라 서서히 줄어든다. 맛있고 만족스러운 식사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광어 지느러미나 싱글 몰트 위스키를 처음 맛봤을 때의 충격적인 쾌락을 미각에 선사하기는 쉽지 않다는 말이다. 양도 줄어든다. 아무리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던 이십 대도, 서른을 넘기고 나면 한 번에 소화할 수 있는 음식의 총량이 터무니없이 적어짐을 느낀다.


그리하여 우리는, 소중한 한 끼 분량의 소화 능력과 밥 값을 불확실한 모험에 투자하는 대신 확실한 만족을 보장하는 음식을 자주 찾는다. 나의 경우 그런 음식은 바다에서 나고 자란 것들, 그중에서도 날것이다. 내륙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산물에 집착하는지 스스로도 조금 의아할 정도다. 문제는 나와 친구 혹은 가족이 회를 원하는 빈도가 크게 차이 난다는 점이다. 아무리 혼밥 레벨이 올라가도 횟집에서 혼회를 하는 건 무리인 데다 친구들 중에는 날것을 못 먹는 이도 있으며, 나처럼 회에 미치는 친구들끼리만 만나는 모임의 횟수는 매우 한정적이다.


출처 (좌)오늘회 어플 (좌)오늘회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은 미심쩍을 정도로 정확한 타깃 광고를 게시한다. 혈중 회 농도가 떨어져 살짝 우울해지려던 그날도 온라인 주문으로 회를 당일 배송해주는 업체가 있다는 사실을 내 피드에 살짝 얹어두었다. 산지에서 직접 회를 올려다 먹는 시스템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그런 주문은 어쩐지 아빠나 엄마쯤 되어야 할 수 있는 것 같아 심리적 거리감이 적지 않았다. '오늘회'는 다양한 어종과 산지, 앞선 이용자들의 후기를 한자리에서 살펴보고 온라인으로 주문과 결제를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나의 오늘회 주문 경험은 단 2 회. 가만히 앉아있으면 가져다준다는 건 좋은데, 이마저도 가족들과 스케줄과 의견을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괜히 비싸 게 받는 거 아니냐, 신선한 물건이 오는 게 맞냐며 끝내 온라인 회 주문에 대한 불신을 끝내 거두지 못했다. 여러 산지와 수산시장 업체 중 어디를 골라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일이었다. 광어와 연어, 딱새우를 선택했던 첫 주문은 맹숭맹숭한 '그럭저럭'이라는 소감으로 마무리되었다.



한동안 잊고 살던 오늘회에 다시 접속하게 된 건 '나 혼자 회' 상품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다. 찬바람 불면 어김없이 기름진 대방어회가 당기는데, 집에서부터 거리로 따지면 세상의 끝에 해당하는 연남동 바다회사랑에 가서 줄을 설 자신은 도저히 없는 나에게 13,900 원짜리 나 혼자 방어회 출시는 엄청난 희소식이었다. 물론 배송비 3,500 원을 추가로 내야 하지만, 가족의 의중을 물어볼 필요 없이 내가 먹고 싶을 때 시킬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하다. 나는 가리비 술찜을 곁들일 요량으로 비단 가리비 한 팩과 나 혼자 방어회를 주문했다. 나혼자 방어회 150g은 13,900 원, 비단 가리비 1kg은 10,900 원, 배송비는 3,500 원. 총 28,300 원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두 번째 오늘회 주문은 첫 번째에 비해 만족도가 높았다. 부모님이 함께 외출하고 약속도 없었던 어느 겨울의 저녁 식사를 덕분에 즐겁게 마칠 수 있었다. 담백한 붉은 몸통 살과 항정살처럼 아삭하고 기름진 배꼽살이 고루 담겨 있었고, '딱 한두 점만 더 먹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쯤 바닥을 보였다. 사실 방어는 이때 멈추는 게 좋다. 기름지고 무거운 음식은 욕심내어 먹다 보면 첫 입의 감동은 사라지고 배부르고 느끼한 느낌만 남게 마련이니까. 살짝 아쉬운 기분은 화이트 와인으로 간단히 쪄낸 가리비 술찜이 채워주었다. (오늘회에서 판매하는 비단 가리비는 알은 작아도 양이 꽤 된다. 한자리에서 혼자 먹을 수 있는 양은 아니므로 보관 기간을 고려해서 주문해야 한다.)



현재 오늘회에서 주문 가능한 '나 혼자 회' 어종은 광어, 참돔, 농어, 참다랑어 대뱃살, 방어, 연어 이렇게 6 종이다. 가격은 연어회가 9,900 원으로 가장 저렴하고, 참다랑어 대뱃살이 26,900원으로 가장 비싸다. 나 혼자 한 끼 먹자고 스티로폼 박스 배송을 시키는 게 마음이 아주 편치는 않지만 아무리 나라고 매일같이 회가 당기는 건 아니니까, 가끔 한 번씩은 이용해도 괜찮지 않을까. 다행히 아이스팩 내용물은 전분으로 하수구 배출이 가능하다니,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