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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쉬플랏 Oct 12. 2020

와인 한 병은 왜 750mL일까?

병목 아래로 좁고 일정하게 떨어지는 보르도 스타일, 윗부분이 가늘고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부르고뉴 스타일, 리슬링을 담는 가늘고 긴 스타일… 와인병의 모양은 지역에 따라, 와인의 종류나 와이너리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그 모양이 어쨌건 이 병들이 담는 와인의 양은 스탠더드 포맷을 기준으로 모두 750mL다. 물론 가장 흔한 것이 스탠더드 포맷일 뿐, 세상에는 187.5mL의 피콜로부터 스탠더드 24병에 해당하는 18L짜리 멜키오르까지 일일이 기억하기도 어려울 만큼 다양한 포맷의 와인병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들의 용량 역시 750의 약수나 배수로 이루어져 있다.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한 일이다. 1L나 500mL 단위로 팔면 판매량과 소비량을 계산하기도 훨씬 쉬울 텐데, 굳이 이 애매한 용량을 스탠더드로 정한 이유는 뭘까?


사진 출처: Unsplash @dancristianp


답은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1970년대에 유럽 다수 국가들이 750mL를 와인의 스탠더드 사이즈로 정했고, 미국 역시 미터법을 일부 수용하는 과정에서 750mL를 기준 삼기 시작했다는 것 정도다. 이런저런 ‘썰’은 있다. 오늘은 그 ‘썰’들 중 유력한 것을 모아 살펴볼 예정이다.


사진 출처: Unsplash @Johanneswre


1. 유리장인 폐활량 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와인병’ 형태, 그러니까 코르크로 입구를 막은 유리병이 와인 보관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다. 기원전 7000~6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와인의 역사에 비하면 비교적 최근의 일인 것이다. 그전까지는 밀랍으로 코팅된 항아리 ‘크베브리(kvevri)’에서 ‘암포라(amphora/amphorae)’라는 이름의 점토 항아리를 거쳐 오크 배럴이 사용되었는데, 보관이나 운반 중에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아 와인의 맛이 변질되기 쉬웠다.


그러나 유리 와인병이 등장하자마자 모든 와인을 유리로 된 병에 담을 수는 없었다. 유리의 강도가 약해 운반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유리 장인들이 일일이 불어 만들어야 했기에 가격이 비쌌다는 사실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일일이 ‘불어’ 만드는 유리 와인병. 첫 번째 썰의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시 유리 장인의 평균 폐활량으로 한 번에 불어 만들 수 있는 최대 크기의 병이 650~750mL짜리였다는 것. 시간이 흘러 유리의 질이 좋아지고 유리병을 대량 생산하는 기술이 발달한 이후에도 불어 만든 와인병의 용량인 750mL를 유지했다는 이야기다.


사진 출처: medium.com


2. 로마인 주량 설


고대 로마에서 그 기원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당시 로마인들은 와인을 물에 희석해 마셨는데, 남성 1인에게 알맞은 하루 치 와인+물의 총량이 700mL 안팎이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고대 로마에도 유리병이 존재하기는 했다. 다만 당시의 유리는 강도가 약해 깨지기 쉬웠으므로 대형 암포라에서 와인을 덜어 서빙하는 용도로만 가끔 사용했고, 그마저도 가격이 비싸고 관리가 어려워 일부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고 한다.


알리에노르 다키텐과 헨리 2세의 횡와상 / 사진 출처: Aquitaine online


3. 갤런이 리터가 될 때


이번에는 보르도 와인이 유명해진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1137년 왕위에 오른 루이 7세와 그의 왕비 알리에노르 다키텐(Aliénor d’Aquitaine)은 15년의 결혼 생활 동안 딸 둘밖에 얻지 못했고, 부부간에 (아주 먼) 혈연관계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교황청으로부터 결혼 취소 승인을 받아낸다. 이후 알리에노르는 노르망디 공작과 재혼하는데, 훗날 그가 잉글랜드의 왕(헨리 2세)이 되면서 보르도를 포함한 프랑스의 서쪽 지방도 잉글랜드의 영토가 된다. 이때부터 보르도 와인은 관세 없이 영국에 수출되기 시작했고, 덩달아 그 명성도 높아져 갔다.


프랑스 와인을 즐겨 마시며 널리 알린 것이 영국인이라면 여기에도 750mL 병의 비밀이 숨어있지 않을까? 그럴 가능성도 있다. 주 소비국인 영국에 와인을 수출하면서 앵글로 색슨족이 사용하는 단위인 ‘갤런(gallon)’에 용량을 맞추었다는 것.


‘영국 갤런’과 ‘미국 갤런’은 그 양이 다르다. 영국은 1707년 1 와인 갤런을 3785.329mL로 규정했고, 이 기준이 미국으로 전해져 1 미국 갤런은 지금까지 약 3785mL다. 반면 영국은 1826년 임페리얼 유닛(Imperial Units)을 도입하면서 1 갤런을 4546.09mL로 바꾸어 버린다. 750mL의 6배를 조금 넘기는 양이다. 와인 한 박스가 열두 병이니, 결국 한 박스의 와인에는 2 영국 갤런 정도의 와인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영국 갤런이 아니라 미국 갤런,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 갤런의 1/5이 750mL 병의 기준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1979년까지 미국에서는 술 한 병의 단위로 피프스(fifth = 1/5)를 사용했는데 그 양이 미국 갤런의 1/5, 즉 757mL 정도였고, 이 피프스를 미터법으로 편입하면서 나온 것이 750mL 병이라는 이야기다.


이 중에 스탠더드 사이즈의 진짜 기원이 있는지, 아니면 이 모든 가능성들이 조금씩 영향을 주어 지금의 와인병 용량이 탄생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래도 이제 와인병을 마주할 때 종종 재밌는 상상을 하게 될 듯하다. 단숨에 병 모양을 불어내는 유리 장인이나, 보르도산 레드 와인을 ‘클라렛(claret)’이라 부르며 즐기던 영국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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