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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쉬플랏 Aug 22. 2021

제주의 이야기를 담은 술

발효주와 증류주, 맥주에서 뱅쇼까지!

봄에는 유채, 여름에는 수국과 해바라기, 가을의 핑크 뮬리와 겨울의 동백. 인생샷을 찾아 헤매는 여행객들의 발걸음은 철마다 피는 꽃을 따라 제주를 향한다. 하지만 제주의 매력이 어디 꽃과 풍경뿐이랴. 700여 년의 역사가 담긴 증류주부터 제주를 전면에 내세운 브랜딩으로 젊은 층의 오감을 사로잡으며 업계 최초로 상장한 맥주까지, 풍부한 이야기와 다양성을 갖춘 제주의 술은 자세히 들여다보며 음미할 가치가 충분하다.


참고로 전통주는 온라인 구매가 가능하고, 맥주는 편의점에서도 좋은 가격에 사 마실 수 있으니 4차 대유행의 광풍 속에 섣불리 제주행 비행기 표를 예매할 필요는 없다. 우선은 제주와 제주 술이 품은 이야기 속으로 천천히 들어가 보자.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의 재료가 되는 오메기떡


제주의 자연과 역사가 고스란히, 오메기술과 고소리술


자타 공인 떡순이, 떡돌이라면 제주 별미를 꼽을 때 오메기떡을 빠뜨리지 않을 터. ‘오메기’는 제주 방언으로 좁쌀을 뜻한다. 벼농사를 짓기가 어려운 화산 지형 탓에 좁쌀을 반죽하여 떡으로 빚은 것이 바로 오메기떡이다. 흔히 안에 달콤한 팥소를 넣고 겉도 팥에 굴려 경단 형태로 팔지만, 전통적인 오메기떡은 고리 모양의 녹회색 떡으로 제주 전통주인 오메기술의 주재료다. 오메기 술은 오메기떡에 누룩을 넣고 떡 삶은 물을 넣어 두 달 넘게 발효시켜 빚는데, 맑은 윗술은 오메기 청주가, 아래 가라앉은 것을 걸러내면 오메기술이 된다. 단맛과 신맛의 밸런스가 좋고 알코올 도수도 13~16도 정도로 그리 높지 않아 다양한 음식에 곁들이기 좋다.


이렇게 빚은 오메기술을 증류・숙성하면 고소리술이 된다. 고려 시대 원 간섭기, 제주에는 탐라총관부가 설치되었고 이후로도 100년 가까이 제주에 몽골인들이 제주에 들어와 살며 증류 기술을 전수해 고소리술의 탄생에 일조했다. ‘고소리’이라는 이름은 발효에 쓰는 소줏고리의 제주 방언에서 유래했다고. 경제 활동과 집안일을 모두 도맡아 했던 제주의 어머니들은 밭일을 마치고 귀가하면 고소리술을 빚어 팔며 생계를 이었으니 제주의 자연과 먹고사는 일의 고달픔, 외세 침략의 역사가 고소리술 한 잔에 고스란히 담겼다고도 할 수 있겠다. 증류 후 1년 이상 숙성해 부드러운 곡물 향과 바디감을 자랑하는 고소리술은 이제 제주를 대표하는 술을 넘어 개성 소주, 안동소주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증류식 소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7월, KBS <편스토랑>에서는 배우 한지혜 씨가 직접 쉰다리 빚는 장면이 방송되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건강 음료와 술 사이, 쉰다리


술이라 하기엔 도수가 낮고, 또 그냥 음료수라 하기엔 마시고 나서 약간의 알딸딸함이 몰려오는 ‘쉰다리’도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추억 한 편을 차지하는 여름 음료다. 남겨 두면 상하기 쉬운 보리밥 혹은 쌀밥에 물과 빻은 누룩을 넣어 하루 이틀 발효시킨 후 살짝 끓여 만드는데, 이렇게 하면 알코올 발효가 일찍 중지되면서 단맛이 남고 알코올 도수는 낮은, 막걸리와 식혜 사이 어딘가의 새콤한 술이 된다. ‘쉰다리’라는 이름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쉬기 직전의 남은 밥을 (때로는 살짝 쉰 밥을 물에 씻어서) 활용했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고, 몽골어로 우유나 요구르트를 의미하는 ‘슌타리’가 변형된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쉰다리는 집집마다 체로 걸러 요구르트에 섞어 먹기도 하고 설탕을 타거나 뭉글뭉글해진 밥알이 남은 채로 식혜처럼 마시는 등 마시는 방법도 다양하다. 유산균이 풍부한 데다 차게 식혀 마시면 새콤한 맛이 기운을 북돋아 주어 건강 음료로도 사랑받는다고.


성공적인 제주 브랜딩으로 업계 최초 상장까지, 제주 맥주


전통주도 추억의 발효 음료도 좋지만, 어느 때고 부담 없이 들이켜기에 가장 좋은 술은 역시 맥주 아닐까. 제주를 전면에 내세운 브랜딩으로 정체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은 제주맥주는 지난 5월 한국기업평판연구소의 음료 상장 기업 브랜드 평판 조사에서 하이트진로의 뒤를 이어 2위에 올랐다. 7월 조사에서는 롯데칠성에 자리를 내주며 3위로 밀려났지만, 앞의 두 브랜드가 긴 역사를 자랑하는 대기업 브랜드인 것을 감안하면 제주맥주의 약진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사실 아직 적자를 면치 못한 상황에서 업계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했다는 것부터가 화제였다.


제주맥주는 미국에서 외식 사업을 준비하던 문혁기 대표가 크래프트 비어의 다양성과 매력에 눈뜨면서 뉴욕의 브루클린 브루어리와 협업하여 론칭한 브랜드다. 제주 바다를 연상케 하는 푸른 패키징과 감귤 껍질을 사용해 산뜻한 끝 맛을 자랑하는 제주 위트 에일, 홉 향이 강조되며 제주의 검은 흙과 울창한 숲을 떠올리게 하는 제주 펠롱 에일은 주세법 개정으로 국산 수제 맥주도 ‘4캔 만 원’이 가능해지면서 접근성이 높아졌다. 최근에는 다크 에일인 제주 거멍 에일이 출시되어 탄산감 적고 깊은 맛의 흑맥주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는 소식이다.


제주샘주의 ‘니모메’와 제주 감귤류를 활용한 ‘하르뱅쇼’


감귤과 한라봉의 상큼함이 그대로, 제주의 시트러스를 활용한 술


사기도 쉽고 팔리기도 많이 팔리지만 누구도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 감귤 초콜릿 대신 제주 과일을 활용한 술 한 병을 제주 여행 기념 선물로 준비해 보면 어떨까? 오메기술, 고소리술로 잘 알려진 제주샘주는 쌀과 귤피로 빚은 술 ‘니모메’를 출시해 2017년 우리술 품평회에서 약・청주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감귤의 상큼한 이미지가 고스란히 담긴 산뜻한 패키징, 부드러운 맛과 ‘너의 마음에’라는 뜻의 이름까지 선물용으로 제격이다.


와인에 시트러스와 계피, 팔각, 정향 등의 향신료를 넣고 끓여내는 뱅쇼는 이제 한국의 카페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겨울 음료가 되었다. 보통은 레몬이나 오렌지를 활용하지만 제주의 감귤이나 한라봉이라고 뱅쇼와 파트너가 되지 말란 법은 없고, ‘뜨거운 와인’이라는 뜻이지만 더운 여름날에는 차게 마시면 그만이다. 제주 올레 시장의 수제 뱅쇼 전문점 하르뱅쇼는 제철 감귤류를 활용해 알코올과 논알코올 두 가지 버전의 뱅쇼를 선보이며 빡빡한 일정에 목이 타는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마시기 편하게 캔에 담아 팔고 전국 택배도 가능하니, 퇴근 후 간단히 한잔하며 코로나 블루를 달래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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