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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냥이 Jun 30. 2020

영화를 살린 클래식 #59

음악 영화 이야기 12. 카핑 베토벤-프롤로그

안녕하세요. 매달 첫 주에 영화 속 잊혀지지 않는 클래식 명곡들을 주제로한 '영화를 살린 클래식' 칼럼으로 찾아오는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리스트 쏘냥 (박소현)입니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음악 영화 이야기', 그 세번째 영화는 바로 2006년에 개봉한 영화 '카핑 베토벤 (Copying Beethoven)'입니다.



카핑 베토벤 포스터 [출처: 다음 영화]



지금은 컴퓨터와 시벨리우스, 앙코르, 뮤즈스코어와 같은 악보 프로그램, 그리고 프린터 덕분에 쉽게 악보를 복사하거나 사보를 만들 수 있게 되었는데요. 이런 '첨단 시스템'이 발전하기 전에 악보를 기록하고 사보를 쓰거나 하는 일들은 모두 인쇄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술과 문학도 동일하죠.

기원전 4000년 경, 수메르 문명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카피스트 (Copyist)', 필경사는 손으로 직접 원본을 하나하나 베껴서 만들어가는 매우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직업입니다. 목판 활자 인쇄법, 나아가 금속 활자의 탄생, 그리고 '구텐베르크 (Johannes Gutenberg, 1398-1468)'가 고안해낸 인쇄기의 탄생으로 15세기 이후에는 이러한 책이나 악보들의 대량 인쇄가 가능하게 되며 오랜 시간에 거쳐 점차 필경사의 입지는 좁아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19세기 타자기와 컴퓨터의 탄생으로 지금은 거의 사라진 필경사, 악보 전문 필경사 역시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물론 악보를 컴퓨터로 옮겨주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요. 



https://youtu.be/yeikqw0kyqI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의 작동 원리 [출처: 유튜브]



16세기 이탈리아의 출판업자 '오타비아노 페트루치 (Ottaviano Petrucci, 1466-1539)'가 악보를 위한 금속활자 인쇄술을 개발해내며 악보와 음악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는데 일조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인쇄술이 막 발달하기 시작한 시기에는 그 비용 자체가 너무나 비쌌던 이유로 전문 필경사들은 그 이후로도 꽤 오랜 시간 악보, 시, 소설 등 각각의 분야에서 그 역할을 해왔다고 합니다.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이자 '사회계약론', '에밀' 등의 저서로 잘 알려져있는 '장 자크 루소 (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 역시 필경사로 평생 일했습니다.



필경사, Copyist [출처: 위키페디아]



음악 분야에서는 모차르트의 제자였으며 그의 마지막 작품 레퀴엠을 완성한 인물이기도 한 '프란츠 쥐스마이어 (Franz Xavier Suessmayr, 1766-1803)'나 리스트의 필경사 '아우구스트 콘라디 (August Conradi, 1821-1873)'가 각각 작곡가와 오르가니스트라는 본업이 있으면서도 악보 필경사를 겸업하였던 인물입니다. 또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두번째 부인이었던 '안나 막달레나 바흐 (Anna Magdalena Bach-Wilcke, 1701-1760)' 역시 소프라노였으나 바흐 작품들의 사보를 그리는 일을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악보 필경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바로 오케스트라나 앙상블의 스코어를 보고 각 파트의 악보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또 연주할 때 악보를 보기 편하게 마디나 줄을 정렬해서 쓰는 등, 현재 컴퓨터의 악보 프로그램들로 클릭 한번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수작업으로 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였습니다. 그렇기에 역사적으로도 음악을 공부한 인물들이 악보 전문 필경사로 일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베토벤의 원본 악보, 이런 악보를 보면 어느 누구도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다. [출처: 구글 이미지]



베토벤의 필경사는 원래 베토벤의 제자였던 작곡가 '페르디난트 리스 (Ferdinand Ries, 1784-1838)'로 알려져 있습니다. 리스의 아버지는 바이올리니스트 '프란츠 안톤 리스 (Franz Anton Ries, 1755-1846)'로 베토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 준 교사였습니다.


영화 '카핑 베토벤'에서는 페르디난트 리스 대신 가상의 인물 '안나 홀츠'가 등장하여 베토벤의 악보 필경사가 되어 그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베토벤의 제자이자 필경사였던 작곡가 페르디난트 리스 [출처: 위키페디아]



1993년 영화 '비밀의 화원', '스푸어' 등의 영화를 통하여 사실주이와 여성주의를 그리는 여성 감독으로 인정받는 폴란드 태생의 '아그니에슈카 홀란트 (Agnieszka Holland, 1948-)'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 '카핑 베토벤'에서는 베토벤의 역할을 영화 '트루먼쇼', '설국열차', '뷰티풀마인드', '더 록' 등 수많은 영화에서 매력적인 인상을 남긴 미국 배우 '에드 해리스 (Edward Allen 'Ed' Harris, 1950-)'가 맡고 있습니다.

또 독일을 대표하는 여성 배우이자, 현재는 영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 '트로이', '내셔널 트레져',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언노운' 등으로 헐리우드에서도 그 입지를 탄탄하게 굳힌 '디아네 크루거 (Diane Kruger, 1976-)'가 베토벤의 필경사 '안나 홀츠' 역을 맡았습니다.




https://youtu.be/IInG5nY_wrU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출처: 유튜브]



이 영화는 '영화를 살린 클래식 # 58. 베토벤이 위층에 살아요'의 배경이 되었던 시기와 거의 일치하는 시간대에 일어나는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베토벤이 위층에 살아요'가 베토벤이 합창 교향곡을 작곡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초연을 하는 시기까지를 그렸다면, '카핑 베토벤'은 합창 교향곡이 완성된 후부터 초연을 하고 베토벤이 사망하기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합창 교향곡의 초연을 앞둔 베토벤은 자신의 악보를 연주하기 위한 오케스트라의 각 악기 파트와 지휘자를 위한 악보로 카피해 줄 필경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아 혼자만의 세계에서 괴랄한 성격만을 표출해가고 있던 베토벤은 비엔나 음대의 유능한 작곡학도였던 '안나 홀츠'를 소개받았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당시 매우 드물었던 여류음악가였던 안나가 탐탁치 않았습니다. 그녀가 자신이 실수로 잘못 써놓은 음까지 고쳐가며 완벽하게 사보를 해놓은 것을 본 베토벤은 점차 그녀의 음악성을 인정하고 둘은 음악적인 교감을 넘어 영혼의 교감을 나눠가기 시작합니다.


영화 '카핑 베토벤'에는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6번, 9번 '라주모프스키', 14-16번, 바이올린 소나타 7번, 피아노 소나타 5, 32번, 현악 사중주 대푸가, 피아노 협주곡 4번, 디아밸리 주제에 의한 33개의 변주곡, 교향곡 7번 등 수많은 베토벤의 작품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베토벤과 안나가 만나게 된 계기가 된 작품 '합창 교향곡' 역시 영화 속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음악적 교감을 나누는 베토벤과 안나 [영화 '카핑 베토벤' 중]



영화 '베토벤이 위층에 살아요'에서 합창 교향곡 초연의 지휘를 귀가 들리지 않는 베토벤과 함께 하였던 인물이 크리스토프의 외삼촌 쿠르트였는데요. '카핑 베토벤'에서는 안나가 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바껴 등장합니다.

이렇듯 실존하는 인물들이 있음에도 그들을 과감하게 삭제하고 가상의 인물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을 알고 조금씩 변형되어 있는 장면들을 비교하며 감상한다면 그 재미가 더욱 쏠쏠할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카핑 베토벤'에서 베토벤을 죽음으로 몰고간 곡으로 등장하는 '현악 사중주 대푸가'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칼럼들과 연주 일정, 레슨 등은 www.soipark.net 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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