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쇼팽 장송행진곡
폴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위대한 피아니스트였던 '프레데리크 쇼팽 (Frederic FFrancois Chopin, 1810-1849)'는 58개의 마주르카, 27개의 연습곡, 26개의 전주곡, 21개의 녹턴, 20개의 왈츠, 18개의 폴로네이즈, 4개의 즉흥곡, 4개의 스케르초 등 수많은 피아노 작품을 작곡하며 피아노 명곡을 많이 남긴 위대한 음악가로 추앙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단 3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하였는데, 그 중 '피아노 소나타 1번 (Piano sonata No.1 in c minor, Op.4)'은 쇼팽이 18세의 나이였던 1828년에 작곡한 작품으로, 아직 미숙함이 많이 드러나고 있던 작품이라 현재는 자주 연주되고 있지 않는 작품입니다. 그에 반하여 피아노 소나타 2번과 '피아노 소나타 3번 (Piano Sonata No.3 in b minor, Op.58)'은 그 높은 완성도 덕분에 많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쇼팽이 29세의 나이였던 1839년에 완성한 '피아노 소나타 2번 (Piano Sonata No.2 in b flat minor, Op.35)'은 1840년에 초판이 발행되었으며, 4개ㅢ 악장으로 이뤄져 있는 작품입니다.
1악장 그라베 (Grave- Doppio movimento)
2악장 스케르초- 피우 렌토 (Scherzo- Piu lento)
3악장 장송행진곡 (Marche Funebre)
4악장 피날레 (Finale, Presto)
위와 같이 4개의 악장으로 이뤄진 쇼팽의 2번째 피아노 소나타는 가장 유명한 3악장의 제목을 따라 '장송행진곡' 또는 '장송 소나타'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 제목을 따게 된 3악장 '장송행진곡'은 쇼팽이 1837년에 이미 완성한 곡으로 단독으로도 매우 자주 연주되고 있습니다.
점령과 굴복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조국 폴란드를 애도하는 듯한 분위기의 3악장은 매우 비장하면서도 진중한 작품으로 평가되며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곡입니다.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2번에 포함된 3악장 '장송행진곡'은 다양한 대중 매체로도 접할 수 있었던 곡인데, 1982년 영화 '화니와 알렉산더 (Fanny and Alexander)', 1991년 쇼팽의 전기영화 '쇼팽의 푸른 노트 (La Note Bleue)', 2008년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바시르와 왈츠를 (Waltz with Bashir)' 등에 등장하였습니다. 이 곡은 우리나라 독립영화의 인상적인 장면에서 등장하며 그 영화를 빛내주고 있는데요, 바로 2020년에 개봉한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입니다.
영화 '하하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등을 연출한 감독 '김초희 (1975-)'가 연출한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2019년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공개되며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요, 특히 영화 '미나리'를 통하여 한국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 (1947-)'이 노개런티로 출연하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영화 '반드시 잡는다'를 비롯하여 드라마 '오징어게임', '리갈하이', '옷소매 붉은 끝동' 등에 출연한 영화배우 '강말금 (1979-)'가 영화 프로듀서인 주인공 '찬실' 역을 맡은 이 영화는 불혹이 될 때까지 함께 일하던 감독 밑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일만 하던 찬실이 영화 제작 스탭들과 함께 가진 술자리에서 감독이 과음으로 갑자기 사망하며 살 길이 막막해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결국 이태원의 산동네로 이사를 가서 '할머니 (윤여정 분)'의 하숙집에서 살게 된 찬실은 돈을 벌기 위해 친한 후배 배우 '소피 (윤승아 분)'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게 됩니다. 소피의 프랑스어 선생님이자 후배인 '김영 (배유람 분)'에게 마음을 품게 되며 자신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 찬실, 그녀의 앞에 환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흰색 러닝셔츠 바람의 '장국영 (김영민 분)'은 찬실의 눈에만 보이는 귀신이었으며, 그는 아무 때나 여기저기에서 그녀 앞에 불쑥 나타나 대화를 나누며 찬실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줍니다.
한편, 70이 넘은 나이에 고지서를 읽기 위해 글을 배우기 시작하는 할머니를 보며 찬실은 자신의 나이 40은 중요하지 않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에 도전하고 꿈을 향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이나 제약의 굴레에 휩싸이지 않고 꿈과 이상을 실행시키려 앞으로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찬실'의 틀에 박힌 삶을 깨어버리는 충격적인 사건인 감독이 술자리에서 돌연사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음악이 바로 쇼팽의 '장송행진곡'입니다.
관현악 편곡으로 연주되는 이 장면은 감독의 사망에 딱 어울리는 곡이기도 하지만, 여태 자신이 만든 세계에 갇혀있던 찬실의 삶이 끝ㄴ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음악이기도 합니다.
쇼팽의 장송행진곡이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는 독립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음악과 함께 감상하며 영화가 주는 밝은 메시지를 함께 되뇌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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