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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냥이 Sep 29. 2017

클래식쟁이 쏘냥의 Jazz 이야기

10. Jazz의 기원- 뉴올리언스, 재즈의 탄생

클래식쟁이 쏘냥의 "재즈의 기원 (On the Origin of Jazz)",

재즈 음악의 탄생지! 현재 재즈 음악의 실질적인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뉴올리언스!

오늘은 그 뉴올리언스 재즈 음악의 탄생에 대한 역사적인 부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800~1900년대 뉴올리언스의 풍경 [출처: 유튜브]



미국 남부의 "루이지애나 (Louisiana)" 주에 위치한 도시 "뉴올리언스 (New Orleans)"에서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 초에 발생한 음악이 재즈라고 알려져있죠.


재즈의 복잡하고도 자유분방하면서도 다양한 인종과 복잡한 문화적 특성이 짬뽕처럼 섞여있는 이유는 이 뉴올리언스의 역사적인 배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뉴올리언스를 포함한 루이지애나 주는 1699년부터 1763년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지역입니다.

1763년 파리 조약 이후 영국과 스페인의 손에 넘어갔던 미국의 프랑스령은 1800년 프랑스의 황제로 등극한 "나폴레옹 (Napoleon Bonaparte, 1769~1821)"이 다시 영토권을 주장하며 전쟁을 일으키며 다시 소유권 분쟁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듭된 실패로 인하여 전력을 상실한 프랑스는 1803년 루이지애나 주를 미국에 매각하였고, 1803년 12월에 미국은 최종적으로 이 영토의 소유권을 온전하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뉴올리언스 [출처: 구글 이미지]



프랑스가 루이지애나를 점령하고 있던 시절엔 백인과 흑인의 혼혈이 많았었고 그들은 앞서 재즈의 기원 칼럼에서도 여러번 다뤘듯 "크레올"이라 불리우는 높은 교육 수준과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프랑스가 미국에 루이지애나를 판매하며 내건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이 "크레올의 평등 대우"였는데요.

물론 그 후에는 그들의 사회적 지위 역시 노예로 미국에 오게 된 흑인들과 함께 점점 하락하게 되었으나, 그 때까지도 크레올들은 서양 음악, 악기 등의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위에 짧게 이야기 하였던 뉴올리언스의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프랑스, 스페인, 영국, 독일, 슬라브족, 아프리카 이주민,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의 원래 주인이었던 원주민 등 다양한 인종과 신분의 사람들의 유입과 융합이 이 루이지애나 주에서 이뤄지게 되었으며 특히 루이지애나의 가장 큰 도시였던 뉴올리언스가 그 중심에 서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사람들은 그들만의 뿌리를 잃지 않기 위해, 또 서로간의 발전을 위해 교류와 긍정적인 영향을 통해 복합적인 문화를 만들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프랑스 크레올 재즈 밴드 [출처: 구글]



프랑스와 스페인의 문화를 이어받은 뉴올리언스는 영국, 독일 등 다른 유럽의 국가들의 지배를 받은 지역에 비하여 문화 교류에 좀더 호의적이고 자유로웠습니다.


하지만 다양성의 상징인 재즈 음악의 기원이 뉴올리언스부터라 많이 인식된 가장 큰 이유는 "크레올 (Creole)"과 "아프리칸 니그로 (African Nigro)" 이 두 흑인 집단의 갈등과 도전, 그리고 융합이 이뤄낸 성과가 더 크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프리칸 니그로"는 앞서 다뤘던 블루스나 흑인 영가 칼럼에서 잘 알 수 있듯, 노예로 아메리카로 팔려 넘어와 남북전쟁 이후에 자유를 되찾게 된 흑인들입니다.

이들은 크레올들과는 다른 음악 세계를 만들어 나갔는데요.


크레올 뮤지션들이 프랑스의 전통적인 음악 양식을 상징하는 클라리넷을 주로 연주하였다면, 아메리칸 니그로의 음악들은 주로 구전으로 전해지며 형식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연주되었는데요.

이는 블루스와도 상당히 비슷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오히려 이 두 집단의 문화적인 융합이 이뤄지기 전까지 아메리칸 니그로의 음악은 블루스와의 경계선을 나누기에도 오묘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00년대의 뉴올리언스 스타일 재즈 밴드 [출처: 위키페디아]



이렇게 대립적이었던 크레올과 아메리칸 니그로는 크레올의 사회적 신분 하락과 더불어 유럽의 민요, 스페인과 프랑스의 전통 춤, 카톨릭, 개신교, 감리교 등의 다양한 찬송가들과 흑인들의 부두교 등의 각종 음악과 문화의 교류와 융합을 통해 "뉴올리언스 스타일"의 초창기 재즈 형식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 결과 1900년대 뉴올리언스에서는 약 30개의 재즈 오케스트라가 나올 정도로 활발한 음악 활동이 이뤄졌으며, 1930년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재즈 뮤지션의 반 이상이 뉴올리언스 출신이었다는 점에서도 뉴올리언스의 이런 역사적인 이유가 재즈 음악의 기원이라 부르게 될 정도로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재즈(Jazz)"를 "미국의 보물 (Treasure of United State of America)"라 지정하게 된 이유 역시 이런 재즈의 기원과 특징이 바로 미국의 현재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는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다음 시간에는 재즈의 기원, 그 마지막 시간으로 "뉴올리언스 스타일"과 뉴올리언스의 초창기 재즈 음악을 대표하는 뮤지션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원본 칼럼은 www.soipark.net에 올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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