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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생채기 하나

오늘도 또 마음을 스쳐간다

by 쏘냥이

"선생님의 글을 표절 검사 사이트에 함께 돌려봐도 말씀하신 저희 콘텐츠와의 표절 일치율이 0%로 나왔기 때문에, 그 어떤 부분도 중복되지 않는다는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아니, 글의 구조나 흐름, 맥락만 봐도 제 글을 열어놓고 그대로 따라 쓴 수준인데요?

단어만 교묘히 바꿔서 수학 계산하듯 그 사이트에서만 걸리지 않게 하면 되나요?

이렇게 하면 저작권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걸까요?

그렇게 당당하셔서, 그 잘나신 '분'의 그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다는 말을 잘도 쓰신건가요?


하고 싶은 말은 오만가지이고 입안을 맴돌고 있지만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 아닌가, 그저 또 한 번 체념을 하고 희미한 헛웃음을 지을 뿐이다. 나만 당한 일이 아니잖아.. A작가 말대로 이렇게 이의를 제기해봤자 그 '콘텐츠'를 내릴 수는 없을 것 또한 잘 알고 있었잖아.. 항상 그랬잖아..


"아.. 그런가요? 만약 그 사이트에서.. 그렇게 나왔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죠. 제가 10년째 쓰고 있는 내용이니, 이 모든 것이 또. 한. 번. 우연이었던 거겠죠?"


항상 그렇다.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그것을 물꼬로 시작하여 풀어낸 글을 써 조금의 호응이라도 일어나면, 어디서 알았는지 그 단어나 아이디어만 쏙~! 가져가서 자신들의 독자적인 것 마냥 크게 홍보하고 활용하는 기업들이나 기획사의 일들은 너무 오래전부터 당했었지 않은가. 책에 대한 홍보문구를 그대로 활용하는 것도 비일비재한 일이고..

학력 문제로 논란이 되신 분이 또 다른 유명인과 함께 다시 한 번 재기를 꿈꾸며 만든 유튜브 콘텐츠의 제목을 내가 8년째 연재하고 있는 글의 제목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가져가신 것을, 그리고 그 제목으로 올라오는 영상들이 몇 만, 몇 십만의 구독자와 시청수를 자랑하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며칠 전 일인데.. 심지어 그것도 "왜 선생님은 그 영상 제목을 따라서 글을 쓰셨어요?"라는 말로 알게 되었다는게 참.. 제목은 저작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오늘이라 그런지 이 두 사건 모두 해결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증폭되어 입 안이 얼얼할 정도로 씁쓸함만이 커져갈 뿐이다. 손발이 묶인 채 카운터펀치만 계속 맞는 듯한 일들이 끊이지 않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해야 하는 것 역시 '내가 쓰는 글이 비문학이기 때문에, 사실을 다루는 분야라 다른 음악이나 소설, 시와 같은 분야들보다 더욱 명확한 기준점이 없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넘어가기엔 너무 불합리하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부유한다. 그리고 가슴 속에 가득찬 억울함과 함께 점차 울컥 올라와서 서슬퍼런 칼날을 나자신에게 돌리고 한참을 자책한다..


"내가 이 컨텐츠를 그것에 활용하는데, 내가 저 디자인을 이렇게 쓰는데에 왜 너한테 돈까지 줘야하지? 그건 인터넷에 모두 다 보라고 공개해놓은 너의 잘못 아냐?"


사실 우리는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글은 ㅇㅇ작가님의 글에서 인용하였습니다."라는 작은 주석 하나만으로도 고마워하는 힘없는 약자일 뿐이다. 그저 밤을 지새우며 자료를 수집하고, 잘 모르는 외국어로 된 자료는 그 언어에 능통하신 사람을 찾아 번역을 의뢰하고, 그렇게 어렵게 자식처럼 글을 키워낼 뿐이다. 그런 내 작품들이 당신들의 거대한 자본이나 유명세, 그리고 사라진 양심으로 인하여 눈뜨고 코베인 것마냥 하루아침에 빼앗기는 일들이 오늘내일의 일은 아니라 그저 체념의 상태에 왔을 뿐이다. 빼앗긴 나의 자식이 다른 이의 위대한 업적이 되는 것을 바라만 봐야 하는 수많은 우리와 같은 '무명의 예술가'들의 눈물이 보이지는 않는가?


"아... 그래도 이렇게 연락을 주셨으니까요. 이것도 인연인데 혹시 선생님의 글들을 저희한테 보내주시면 언젠가 선생님도 우리 '콘텐츠'에 모실 수 있도록 한 번 검토는 해보겠습니다"


이런 미끼를 던지며 무마하려는 것은 신선하다. 그런데 왜 난 마치 호의처럼 던진 콩고물에도 맞으면 아파하는 상처입은 개구리처럼 눈물이 나려 하는거지? 그들은 아마 영원히 모를 것이다. 이런 얄팍한 수들이 어쩌면 무명의 예술가의 마지막 버티고 버티던 자존감마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게 만든다는 사실을...


그렇게..

오늘도 작은 생채기 하나가 또 마음을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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