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MINARI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감정을 색으로 표현하고 기억을 하나의 구슬로 표현한다. 시간이 흐르고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의 기억에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섞인다. 기쁘기도 하고 동시에 슬플 수도 있다. 그리고 하루하루의 삶은 언제나 항상 잔잔한 슬픔과 그 속에서의 작은 기쁨으로 이루어진다.
잔잔한 슬픔과 소소한 기쁨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결말을 예상하게 된다. 대부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결말은 주인공들이 삶의 어려움과 역경을 이겨내고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와 같은 해피엔딩이거나 슬프고도 더욱 슬픈 결말이다. 그래서인지 <미나리>를 보면서도 둘 중 하나의 결말을 떠올렸다.
요즘에 영화를 고를 때에는 절묘한 순간에 주인공을 구하러 오는 차가 도착하고, 총알이 난사되는 상황에도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 그런 흔히 말하는 '사이다' 결말을 가진 영화들을
즐겨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사이다'결말은 행복과 불행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는데에서 오는 것 같다. 극적으로 살아나거나, 부자가 되거나하는 극단의 행복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지는 극단적인 불행과 같은 극단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 어쩌면 익숙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생에는 '사이다'결말은 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인생은 잔잔한 슬픔과 소소한 기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때 당시에는 세상이 무너지는 슬픔이었을지 모르지만 그것도 시간과 함께 흘러가면서 잔잔하게 삶에 녹아드는 슬픔이 되기도 한다. 영화 <미나리>에서 그런 하루가 쌓여가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주인공의 인생의 꿈을 담은 한국 채소 농작보다 물가에 흩뿌린 미나리 씨앗이 더 풍성하게
자라는 것처럼 인생의 대부분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우리는 불행을 기대하는 순간도 있다. 불행을 기대한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모르겠지만 선천적으로 심장이 좋지 않은 아들의 심장이 자라면서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좋아졌다는 말에 마음 놓고 기뻐하지 못하는 엄마의 표정을 보면서 불행을 기대했던 순간에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인생이 흘러가는 경우도 있다.
이민자들의 삶
아이작 정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어서 일까.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섦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부부는 서로를 지영 엄마, 지영 아빠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딸은 '앤'이라고 부르며 둘째 작은 아이의 한글 이름은 알 수 없다. '데이비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작은 아이는 한국인처럼 생겼지만 한국에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한국말보다는 영어가 편한 아이이다.
가족의 이야기 속에서 영어와 한국어가 자연스럽게 섞인다. 한 가족 안에서 그것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 같아 보이다가도 그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그 중간 어디쯤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많은 한국계 미국인 배우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그레이 아나토미>에 출현했던 산드라 오의 인터뷰의 말이 기억이 났다. 겉모습은 한국인으로 미국에서 어울리지 못한다고 느껴지다가도 한국에서는 문화도 언어도 다른 미국인으로서 속하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공부와 일을 하기 위해 외국에서 지내면서 나 스스로도 또 주변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가족이라는 형태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말의 뜻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서 20년을 나고 자라 한국 문화에 더욱 익숙한 내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가본 적 없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 사는 그 느낌을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 <미나리>가 그런 어딘가 모르게 내가 나고 자란 땅에서 지내는 가족들이라면 느끼지 못할 법한 그 느낌, 그 감정 들을 참 세세하게 잘 표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며 잔잔하게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중,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황순원의 <소나기>나 김유정의 <동백꽃> 같은 소설을 영화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족 그리고 그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참 아련하게 그려졌다. 오랜만에 한껏 집중해서 본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