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좀좀이 Oct 02. 2021

그곳의 나, 여기의 나 - 1부 3화

2006년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3화 속 나와 만나기


2006년 경상북도 풍기, 충청북도 단양 여행기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3화 - 경상북도 영주 부석사

https://zomzom.tistory.com/39


나날이 둔감해져 가는 날짜 감각. 반복되는 쳇바퀴. 쳇바퀴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면 약간의 변화는 있을 거다. 한 바퀴 도는 동안 먼지도 묻었을 거고 미세하게 닳은 부분도 생겼겠지. 그러나 그렇게 너무 작은 것에 집착하고 바라보지 않는다면 쳇바퀴가 한 바퀴 돌았다고 무언가 크게 달라진 것을 느끼지는 못 할 거다. 열 바퀴쯤 돌아도 무엇이 달라졌는지 전혀 모를 거다. 그렇게 쳇바퀴가 계속 돌아가다 보면 쳇바퀴가 몇 번 돌아갔는지조차 점점 망각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은 점점 잊어버리게 된다. 돌아가는 쳇바퀴 속에서 발생하는 아주 작은 변화들에 자기도 모르게 적응되어 큰 변화를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몇 바퀴를 돌아도 그대로라서 장면과 시간이 겹치고 중복되어도 그게 차이가 있다는 것 자체를 잘 못 느끼게 된다. 그렇게 점점 날짜에 둔감해지게 된다.


요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여행을 한 번 다녀오면 매우 둔감해졌던 날짜 감각이 조금 날카로워진다. 여행을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났다는 식으로 새로운 기준점이 생긴다. 여행 다녀온 후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밀린 여행기와 더불어 새로운 여행기 쓸 것이 하나 더 늘어났다는 부담감이 추가로 생기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여행 다녀왔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여행 가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는 이유는 흥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슴 떨리는 여행.


사람마다 여행 가고 싶은 이유는 제각각이다. 하지만 모두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한 자극을 얻고 싶다는 환상 때문에 여행을 가고 싶어 한다. 당장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결핍된 것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 속으로 뛰어들어가 결핍을 채우고 돌아오고 싶다는 욕구가 여행을 갈망하는 이유다.


처음 여행을 할 때는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많이 채워오곤 한다. 결핍은 오직 자신이 추구하는 것의 결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자신이 절대 멀리하고 싶은 것의 더욱 끔찍한 실제 자극도 포함된다. 여행 가서 어떤 결핍을 채워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막상 당해봐야만 안다. 모두가 장밋빛 환상을 갖고 여행을 떠나지만 여행은 환상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환상대로 진행되기는 고사하고 계획대로라도 제대로 진행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환상보다 더 좋게 진행될 수도 있지만, 계획하고 최악의 상황이라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쁘게 일정이 진행될 수도 있다.


여행을 별로 안 해봤을 때는 여행 가서 얻는 것이 매우 많았다. 한 번 여행 가면 매우 많은 결핍 상태를 해소하고 오곤 했다. 현실보다 더 좋은 경험을 하면 현실로 돌아와 우울해지고, 현실보다 더 나쁜 경험을 하면 현실로 돌아와 한동안 현실에 아주 감사하는 자세를 갖게 되었다. 여행을 자주 다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여행 가기 전과 비교했을 때 무언가 크게 바뀌는 것이 있었다. 내가 바뀌었다는 느낌 자체가 좋았다.


그렇지만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이런 자극은 점점 줄어들어 들었다. 여행에 대한 환상 자체가 급격히 사라져 갔다. 평소에 우산을 들고 다니지 않다가 갑자기 퍼붓는 소나기를 만나면 크게 당황하고 비 잔뜩 맞아서 쫄딱 젖는다. 하지만 한 번 이런 경험을 하면 일기예보를 신경 써서 확인하게 되고 평소에 혹시 모르기 때문에 접이식 우산을 가방에 넣고 다니게 된다. 그때부터는 저녁까지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고 천둥 번개 치고 비가 마구 퍼붓더라도 무덤덤하게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쓰고 갈 길 간다. 이와 비슷하다. 여행 다니며 여러 일을 겪다 보니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대비가 되고 다시 비슷한 일을 겪는다 해도 별로 놀랍거나 당황하게 되지 않게 되었다. 그 이전에 원치 않는 상황을 또다시 겪지 않기 위해 평소에 우산 들고 다니는 것처럼 대비를 하면서 돌아다녔다.


여행 중 '원치 않는 상황'이라고 하면 보통 사고, 재난, 재해 같은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여행에서 불만을 갖게 만드는 요소는 상당히 많다. 그중 하나는 정말 기대하고 갔는데 실제 보니 아주 형편없는 경우다. 이런 일이 여행 중에 꽤 많이 발생한다. 애초에 여행이란 대체로 낯선 곳에 가기 마련이다. 잘 모르는 곳에 가다 보니 여행 계획 짤 때는 가이드북 및 이미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에 많이 의존하게 된다. 제 아무리 자유 여행, 무계획 여행이라 해도 어느 정도는 많이 알려진 동선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그리고 처음 가는 곳이라면 유명한 곳 한두 곳 정도는 집어넣기 마련이다. 단지 처음 계획에서 집어넣는지 가서 다니는 중에 추가되는지의 차이 정도다.


이렇게 유명한 곳들 중에는 실제 보면 엄청나게 실망하게 되는 곳도 꽤 있다. 특히 유독 전문가들의 말이 긴 추천 관광지는 이럴 확률이 상당히 높다. 역사적으로 어쩌고 미학적으로 어쩌고 장황한 설명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개인적 감상이 별로 없고 모두가 다 전문가의 장황한 미사여구를 그대로 베껴서 말하며 찬양하는 추천 관광지라면 가서 실망할 확률이 크게 높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왜 이런지 합리적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정말 굉장하고 좋은 관광지라면 남의 말을 끌고 와서 좋다고 할 필요 없다. 자기 감정과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너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안 되니까, 어떻게든 좋게 말해보고 싶지만 좋았던 점이 정말 없으니까 결국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을 인용해서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여행 가서 제일 크게 실망했던 곳은 영주 부석사였다. 부석사 중에서도 정확히 부석사 무량수전이었다. 부석사 무량수전을 보러 간 이유는 국사 시간에 반드시 암기해야 했던 그놈의 배흘림 기둥 때문이었다. 심지어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제목의 책까지 있었다. 이 책이 내가 풍기 여행 갈 때만 해도 상당히 유명한 책이었다. 저 당시 부석사를 갔던 이유는 풍기에서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서 갔던 것도 있지만, 그놈의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에 실제 보면 정말 엄청나게 굉장할 거라고 기대했던 것이 더 중요한 이유였다.


내가 여행을 다니며 갔다가 크게 실망한 곳은 꽤 있다. 하지만 가장 실망한 곳을 떠올려보면 아직도 부석사 무량수전이 독보적으로 1등이다. 정말 너무 실망했던 것도 있지만, 이때 이후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관광지 갈 때 기대치를 한껏 낮추었기 때문에 아무리 별로인 곳이라 해도 기대치 자체가 낮아서 예상보다 덜 실망했다.


여행을 한 번 돌아오면 여행이 주는 자극은 점점 약해진다. 한 번으로는 안 될지 모르겠지만 두 번, 세 번 가다 보면 기댓값이 낮아지고 예상 범위는 넓어져서 대체로 예상한 범위 안에서 자극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가슴 떨리는 여행은 점점 아주 먼 옛날에 경험할 수 있었던 일이 되어 간다.


여행 간 지 많은 시간이 흘러도 가슴 떨리는 여행과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는 문제는 해결이 안 되었다. 오히려 더 심해져갔다. 살면서 여러 일을 경험하면서 예상 범위는 나날이 더 넓어져간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돌발 상황 만나기는 더 어려워졌다. 당장 길 잃어버리고 헤멜 일조차 별로 없다. 스마트폰으로 지도 켜고 GPS 실행시켜서 현재 내 위치 보면 지도상에 내 위치가 매우 잘 나온다. 내가 걸을 때마다 지도상 내 위치도 실시간으로 변한다. 그러니 가슴 떨리는 여행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여행 가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타오르려고 하다가 휴지 한 도막 채 못 태우고 바로 꺼져버리는 이유는 과거처럼 가슴 떨리는 여행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말 위험한 상황에 몸을 던져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나는 다시 가슴 떨리는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여행 가고 싶다는 갈망보다는 다시 가슴 떨리는 여행을 할 수 있을지 간간이 생각해보곤 한다. 과거에 내가 쓴 여행기 읽으면서 저럴 때도 있었다고 깔깔 웃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진짜 여행을 다시 해볼 수 있을까. 흥분과 자극이 가득한 모험 같은 여행이 요즘 세상에 존재하기는 할까. 오늘도 곰곰히 생각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그곳의 나, 여기의 나 - 1부 2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