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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Oct 04. 2022

내가 생각하는 경제적 자유

핵심은 소비에 있다.


(어떤 게 옳고 그르다는 글이 아닙니다. '소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할 뿐입니다.)



'경제적 자유'라는 단어가 자주 보인다.

이와 함께 파이어족(경제 자립+조기 은퇴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라는 단어도 따라온다.


이 말을 자연스럽게 우리에 대입해 보는데, 어쩌면 우리는 파이어족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가 경제적 자유가 있다고 여긴다.

또 우리는 한참 전부터 조기 은퇴한 사람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살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돈벌이는 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파이어족의 정의에 이런 문구가 있기 때문이다.


'파이어족의 상당수가 이른 은퇴보다 재정적 자립에 중점을 둔다. 불필요한 소비에서 벗어나 중요한 것에 집중한다는 가치 전환이 핵심이다. 은퇴 후에도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하기보다는 절약하며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돈에 얽매이지 않고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몇 주 전에 트위터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쓰려다가 게으름에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마침 어제 남편과 돈과 자유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어서 이 모든 걸 한꺼번에 쓰려고 마음먹었다.


지난달, 반년 전, 그리고 4년 전에 나누고 생각한 '경제적 자유' 이야기이다.

그리고 핵심은 '소비'에 있다.






지난달 - 트위터



지난달에 트위터를 스쳐간 이슈가 있었다.

무엇 때문에 촉발된 것인지 모르겠는데, 부자와 가난한 자, 과소비 같은 얘기들이 타임라인에 올라왔다.

기후 위기와 소비에 대한 상관관계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톰 히들스톤의 보풀 일어난 코트 사진과 함께 옷 소비에 대한 얘기도 올라왔다.


이 사진이다. 이 배우가 오래된 코트를 계속 입는다는 얘기였다. (진위 여부는 모른다. 게으른 것인지 정말 오래 입은 것인지)


어쨌든 입은 옷의 수준에 따라 빈자와 부자를 나눈다는 글을 보고 나도 글 하나를 올렸다.


트위터 기준인 140자에 맞추느라 깊은 내용은 없는 글이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보고 답글을 달기 시작했다.

(이것이 트위터의 재미있는 점이다. 성별과 나이와 지역이 다양한 사람들과 즉각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재미있고 의미 있는 대화들이 오고 갔다.

몇 가지만 가져와 보겠다. (상대방의 정보는 가림)






오래된 옷을 입고 다니면 가난하게 보기는커녕 기후 위기를 생각해서 행동하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의견도 눈에 띄었고, 패스트패션에 대한 반감 등, 다양하지만 같은 방향의 의견들을 나누었다.


그 와중에...

'거지의 자기 위로'라는 답글이 달렸다!

원글은 이것이었다.

이렇게 말한 분과도 대화해보고픈 마음이 들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 아래로 많은 사람들의 한숨 소리와 댓글이 붙자 원글자가 트윗을 삭제해버려서 굳이 찾아가 대화를 시도해 보지 못했다.


주로 옷의 소비에 관한 대화가 오고 갔지만, 모든 종류의 소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또 유행이라는 것이 소비와 뗄 수 없으므로, 지금의 세상에 유행이 미치는 어두운 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유행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부적절한 소비를 하고, 또 비교로 인한 마음의 소모전도 큰 것 같다.


나만 해도 스키니 청바지의 시대가 가고 통바지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는 이유로 열 장도 넘는 스키니 청바지를 고이 접어 보관해 두고,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의 청바지(두 벌이 있음에도)를 사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대화를 계기로 그 마음을 (다소) 접었다.

요즘은 무엇이든 허용되는 시대 아닌가!

내가 입고 싶고, 내게 더 잘 어울리고, 내가 줄곧 편하게 입고, 이미 여러 벌 가지고 있는 청바지 중에서 골라 입겠다고 결심하였다.

이 나이에 유행에 발맞추겠다고 통이 넓은 청바지를 또 사는 일은 하지 말자고. (심지어 두 벌이나 있으니 말이다)



옷의 소비로 부자냐 가난하냐를 따지는 상황에서도 경제적 자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옷을 새로 살 돈이 전혀 없으면 낡고 유행이 지난 옷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옷을 살 돈이 넘쳐도 여러 이유로 낡고 유행이 지난 옷을 입을 수 있다.

돈이 많아서 매번 유행하는 옷을 사고 고가의 브랜드 옷을 사 입을 수 있다.

돈이 부족하지만 어떻게든 유행하는 옷과 고가의 브랜드를 사고 말 수도 있다.


여기서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누구일까?

이 중에서 어쩌지 못하는 경우는 첫 번째밖에 없을 것이고,

나머지는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다. (그럴까?)

돈이 많으면 선택이 어떻든 경제적 자유를 이루었다고 보면 될까?






반년 전 - 블로그



그러고 보니 반년 전인 3월,

한 독자분이 내 블로그에 경제적 자유에 관한 질문을 주셔서 짧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이걸 기억해 내다니!!!)

그래서 대화를 가져와 보았다. (게재 허락 받음)



독자님 : 저는 경제적 자유에 대해서 잠시 눈을 돌렸다가 제가 너무 급행열차를 타고 가려는 것 같고, 동시에 제가 원하는 길이 여기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혼란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경제적 자유라는 말에 대해서 엄청나게 빠져들었거든요.

그런데 뭔가 제가 생각하는 방향과 약간 다르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면서 갑자기 무력감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현주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부동산, 주식, 경제적 자유 같은 단어들 말이지요.



 : 저는 돈에 별로 구애를 받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에요. (돈이 많아서는 당연히 아닙니다.)

'내 아이의 배낭여행' 책에서도 썼다시피 저희는 돈을 벌 때도 있고 안 벌 때도 있고 그게 주기적으로 좀 있던 사람들인데요.

보통의 사람이면 돈을 많이 벌면 많이 쓰고, 그래서 더 많이 벌고 싶어 하는데요. 저도 (다행히) 남편도 그런 성향은 아닙니다.

몇 가지 장사를 하는 동안 돈을 정말 많이 벌 때도 있었고요, 정말 말도 안 되게 어려움을 겪은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한 달에 100만 원을 겨우 벌 때도, 또 800만 원을 벌 때도 저희는 씀씀이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돈으로 뭔가를 사면서 대단한 기쁨을 얻는 편이 아니라서 돈을 잘 벌 때도 그 일을 그만두는 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뭐든 아끼는 생활을 하고 그렇게 아끼는 생활에 스트레스가 별로 없습니다.

내가 돈이 없어서 이런 걸 못 사네, 이것밖에 못 먹네.. 저희는 그런 마음을 갖지 않는다는 거예요.


남들이 믿지 않던데요, 저희는 주식을 하지 않습니다. 전혀 호기심도 일지 않아요.

코인 광풍이 불어도 주식 열풍이 불어도 부동산 재테크 난리가 나도 저와 남편은 해볼까 하는 생각도 안 했어요.

요즘 세상에서 저희 같은 태도가 마냥 좋다고 볼 순 없을지도 몰라요.

사실 어떤 식으로든 재테크를 하지 않는 것은 게으르고 무지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사실 어느 정도 게으른 것이 맞고요. 제대로 하려면 또 얼마나 공부를 해야 하며, 발을 들이면 얼마나 또 신경을 써야 합니까. 그 모든 게 귀찮고 싫다는 마음이 너무 크니까요.


하지만 저희는 큰돈 바라지 않고 소소하게 잘 살아가고 있어요. 그저 신경 쓰면서 일희일비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등락에 신경 쓰느라 마음이 어지러운 것이 싫습니다.

저는 마음 편한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냥 조금 더 싼 시장에서 과일을 사고, 어쩌다가 돈 여유가 생기면 기쁜 마음으로 비싼 러닝화도 사 신고, 망고도 사 먹습니다.

그러면 또 얼마나 행복한가요. ^^


사실 지금 저는 000님이 말씀하시는 경제적 자유가 정확히 어떤 것을 말하는지 모르는 채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경제적 자유란 것이 내가 돈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부자인 상태가 되는 것인지, 반대적인 의미로 돈에 초월한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가 전혀 다른 얘기를 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인터넷 서점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이제는) 귀퉁이가 해어진 천 가방을 몇 년째 여태 들고 다녀도 그게 아무렇지 않습니다.

식당에서 9천 원짜리가 조금 더 맛있어 보여도 결국 8천 원짜리 시켜 먹지만, 또 흔쾌히 4만 원짜리 케이크를 사들고 와서 손뼉 치면서 행복하게 먹을 줄도 알고요. 친구들 만나면 좋은 마음으로 밥도 잘 사줍니다.

아이 키우면서도 사교육에 돈을 거의 들이지 않았지만 배낭여행은 많이 다녔죠.

내 아이에게 다른 아이 옷 얻어 입히는 것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내가 절약할 수 있는 것을 절약하면서 작은 것에 행복해하며 삽니다.

뭐를 했으면 돈을 불렸을 텐데... 그때 주식 살걸...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제가 생각하는 경제적 자유는 이런 거예요.



독자님 : 경제적 자유라는 말이 제대로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부동산, 주식투자의 광풍에 저 역시도 매몰될 뻔했네요. 제가 이해한 경제적 자유는 지금처럼 일을 무리하게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그 수익으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삶을 떠올렸습니다. 시작은 여윳돈이 없어서 시작했던 것인데 너무나도 흥분하며 저의 삶에 가치에 대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덤벼들려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과연 개인이 이토록 미친 듯이 부를 열망해야만 이룩할 수 있는 것일까 생각이 들었고, 원하는 것을 모두 하고 살면 과연 행복한 것일까라는 마음도 들었지요. 그런 생각들에 마음이 요사이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제가 소신이 없었네요. 이제 그 소신을 만들어가는 중이죠.

현주 님의 그런 휘둘리지 않는 마음들이 부럽습니다. 저는 아직 더 닳고 닳으면서 경험을 해야 하나 봐요.

이제 조금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경험을 나눠주셔서요.



 : 경제적 자유가 말 그대로의 의미로서의 경제적 자유라면 그 자유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습니다.

저는 경제적 자유를 대번에 마음의 자유로 이해하고 말씀드렸던 것인데요,

이것은 저처럼 좀 타고 나는 사람도 있겠고, 노력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저는 여기로 여행을 못 가네, 이걸 못 사네, 이걸 못 먹네... 이런 생각은 하지 않고요.

여기로 갈 수 있겠네. 이걸 살 수 있겠네. 이걸 먹으면 되겠네...로 생각하거든요.


물론 저도 가끔 분에 넘치는 소비를 하고 나서 후회도 하지만, 그런 후회가 아예 없이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또 배우고 느끼는 것도 있고요. 또 그 당시의 제 기분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시발 비용을 치르는 일은 없지만, 제 행동의 대가(술을 안 마신다, 명품을 사지 않는다 같은)로 조금 좋은 신발을 사고, 조금 더 질 좋은 과일을 사 먹고, 부모님께 더 괜찮은 걸 사드리고 그런 것은 있습니다.

어제도 남편과 제 운동화를 사 가지고 오면서... (운동화 값으로 129,000원을 치렀는데요.) 시내 나온 김에 유명하다는 디저트 가게에서 작은 컵케이크와 타르트를 3개 사고 19,500원이나 지불했어요. 그러고 오는 길에는 바로 후회가 되었습니다. 몇 년이나 매일같이 신을 신발값과 비교하니 몸에도 안 좋은 이 디저트 값이 너무너무 비싼 거예요.

여러 종류의 소비를 하면서 계속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패하는 소비도 때로는 필요하고요.


저는 (제가 말하는) 경제적 자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자세인 것 같아요.

저는 비교를 거의 하지 않는 타입의 사람인데요. 비교하자면 끝이 없고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이 어떤 집에서 살든, 뭘 사든, 뭘 하든, 뭘 입든, 얼마나 더 윤택하든 그것은 저에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아닙니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코인이든 남들이 뭘 해서 이 만큼의 불로소득을 벌었다는 말에 저는 놀랍도록 부럽거나 관심이 들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고 내가 더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좋지만, 모든 것이 다른 남과의 의미 없는 비교는 불행의 시작과 끝이라고 생각해요.

두서없이 댓글을 썼지만, 저도 덕분에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






4년 전 - 책



이제 와서야 '경제적 자유'를 검색해 본다.

[경제적 자유 : 경제생활에서 각 개인이 스스로의 의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


위 대화에서 보듯, 나는 경제적 자유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을 단박에 마음의 자유로 해석하였다.

그런데 나와 남편은 이미 오래전부터 경제적 자유의 개념을 생각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책 '내 아이의 배낭여행'


2018년 2월에 출간한 '내 아이의 배낭여행'이라는 책에서 나는 이미 경제적 자유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했다.


바로 이것이다!



목차를 보면 '시간을 산다'라는 챕터가 따로 있다.


내용을 조금 가져와 보겠다.

(내 아이의 배낭여행 33p ~ 40p)

내가 말하는 '용기가 필요한 여행'은 최소한 한 달은 되는 배낭여행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 달 이상의 장기 여행의 경우에는 그 여행 자체가 밥벌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장기 여행은 현재의 돈벌이를 포기해야 갈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엄청난 용기 아닌가!
우리는 다시 장사를 접었다. 지인들은 이제는 당연하게 여겼다. 양가 부모님들만 지치시지도 않고 여전히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벌 수 있을 때 조금 더 벌어서 노후도 대비하고 아이 학비도 챙겨놓으라고. (중간 생략) 어떤 선택을 해야 미래의 해피엔딩에 이르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돈보다 당장의 시간이 조금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돈으로 시간을 사서라도 여행을 가려고 한다.
돈으로 산 귀중한 시간은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 쓴다. 물론 우리의 재충전을 위해서도 충분히 사용한다. 우리가 '노는' 이 시간은 나중에 돌이켜보면 결국 돈보다 값진 시간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조금 게으르게 지낸다.
우리의 경우는 이렇다.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은다. 모은 돈으로 쉴 수 있는 기간을 따져본다. 1년쯤 가능할 것 같다. 더 일한다. 다시 따져본다. 최대한 아끼면 2~3년은 가능할 것 같다. 그러면 그만둔다. 이것이 우리의 사이클이다. 우리에게 소비가 쾌락이었으면 아마도 장사를 확장하거나 지속해서 더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유로운 시간이 우리의 쾌락이기 때문에 그만큼만 돈을 벌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말이 쉽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많을수록 좋은 것이 돈이고, 그 현실을 절감할 때가 많다.



'부자 되세요'가 덕담인 나라에서는 모두가 부자가 되길 갈망한다.

이런 나라에서는 부자(소비)에 대한 열망, 불로소득에 대한 열망은 탐욕이 아니고 당연한 것이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누가 돈이 많은지 어떻게 아는가?

내가 땅이 얼마나 있고, 은행 잔고가 얼마라고 떠들어대지 않는 한(그것도 믿을 수 없다) 부자인 줄 어떻게 아나?

그 사람의 씀씀이를 보고 아나?

그 사람이 사는 집? 차? 명품의 개수?

그 사람이 입는 옷의 브랜드나 상태?

아니면 그 사람이 선별해서 올리는 SNS?


부富라는 것은 눈에 보이고 느껴져야만 알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부자의 기준이 뭘까?


어떤 사람이 벤츠를 타고, 샤넬 백을 들고 있다면 그 사람은 부자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페라리를 몰고 다니고 롤렉스 시계를 차고 있다면 높은 확률로 부자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부자의 정의를 검색해 보았다.

부자 : 돈과 같은 재산이 많은 사람을 말한다. 돈이 곧 힘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이상향.


그런데 한국 부자의 기준이란 것도 있다.

한국 부자의 기준은 대체적으로 금융자산 10억 이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정의가 따라온다.

실질적으로 부자란 자산규모의 절대 기준으로 분류한다기보다는 그가 속한 사회에서 타인들에 비해 더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는 아니어도 소득 수준이 낮은 나라로 이민을 간다면 나는 공식적 부자가 될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도 한 모양이다.

일반 국민의 정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한국 사회에서 부자의 기준은 평균 25억 정도.

하지만 부자들이 생각하는 부자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자산규모는 평균 109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부자의 정의도 찾아볼 수 있었다.

불로소득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을 부자라고 하기도 한다. 즉, 평생 생활비 걱정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부자이다.


이 많은 정의 중에서 내가 택할 수 있고 속할 수 있는 부자의 정의는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 또한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이 명백하지 않나.


경제적 자유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결코 자유일 수 없다.

나에게는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살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을 거부할 힘이 있다.

그것에는 행복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돈의 심리학' 책 몇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사람들은 부자라고 하면 ‘돈을 쓰는 것’을 상상한다. 백만장자가 되고 싶다고 말할 때 백만 달러를 쓰는 상상을 한다. 비싼 차를 몰고, 비싼 시계를 차고, 큰 집에 사는 데서 부의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그런 만족은 일시적이다. 결핍은 다시 찾아오고 반복된다.

부는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사람들과,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이며 그것이야말로 돈이 가져다주는 최고의 배당이다.

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부는 구매하지 않은 좋은 차와 같은 것이다. 구매하지 않은 다이아몬드 같은 것이다. 차지 않은 시계, 포기한 옷이며 1등석 업그레이드를 거절하는 것이다. 부란 눈에 보이는 물건으로 바꾸지 않은 금전적 자산이다.

부의 가치는 소비에 있지 않다. 부는 자유에 관한 것이며 독립에 대한 것이다. 원하는 시간을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자유. 원치 않을 때 원치 않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원치 않는 사람과 어울리지 않아도 되는 자유이다. 우리가 돈을 벌고 부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내게는 마음의 평화가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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