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걷는다
애쓰고 사뿐사뿐 그것이 인생
'애쓰다'의 다른 말은 '힘쓰다'일 터이다. 그 말에는 수고와 노고가 담겨있다. 힘을 쏟아붓되 그것만으로는 성의 부족 같고 갖은 노력과 정성까지 기울여야 제대로 된 뜻이 전해진다. 그런데 우리말은 참 희한한 게 쓰임새와 쓰는 사람의 어감에 따라 뉘앙스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내 나름대로 애쓴다고 쓰며 열심히 살고자 최선을 다하는데 세상이 그리고 그 구성원들이 나를 그렇게 봐주지 않을 때 억울함과 속상함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된다. "아이고, 애쓰네요."가 아닌 "쯧쯧, 애쓰네."가 되어버릴 때 마음은 무너지고 눈물은 고인다. 품고 있는 의미를 순식간에 변질시켜 버리는 빈정대듯 꼬아 말하는 특유의 어투, 신랄한 표정과 업신여기는 감정이 뒤섞여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작가이자 철학자인 페터 비에리가 말한 바 "인간의 감정은 맹목적인 성질도 자의적인 내면의 롤러코스터"도 아닌 것이다. 우리는 타인에 의해 내적 상처를 입고 정신적 타격을 받아 비틀거리다가 넘어진다. 나라는 존재는 한없이 짜부라져 땅속이나 쥐구멍으로 숨고 싶을 만큼 심적 박탈감과 수치심이 증폭된다. 풀 죽어 추레해지고 너덜너덜해진 마음은 잠풍에도 부스러진다.
비단 누군가의 말투뿐 아니라 암암리에 형성되는 분위기 자체에 좌절하기도 하고 도대체 세상은 왜 이따위인가 의구심을 갖고 탄식을 내뱉게 된다. 나를 기만하는 삶에 무릎 꿇을 것인가. 불편한 심기를 내보이며 맞대응할 것인가. 단념할 건 하자며 순순히 수긍하며 살 것인가.
타자와 전생(全生)은 우리를 쉬이 지치게 한다. 매일 진종일, 간데족족 애쓰며 살고 있는 나의 메마르고 성마른 심신에 단비 같은 시로 셀프 위로하며 어쩌면 모를 외면의 혜안을 마련코자 한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꽂꽂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 백석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살다 보면 날이 기막히게 좋기도 하잖아. 궁색함을 원망하지 않고 소소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이를 벗한다. 나는 단벌 신사라도 외면과 속마음까지 단정해 주변에 고운 이를 두루 사귈 수 있고, 먼지처럼 가벼운 지갑 속 사정에 울분을 터뜨리기보다 그저 한 발 한 발 소중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기에 감사한다. 나이에 연연하지 않으며 하고 싶은 일에 정열을 불 지르는 일탈도 마다하지 않는다. 소박한 찬일지언정 내 사랑하는 식솔과 밥상머리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 용기와 격려를 북돋아주는 대화를 나눠 먹는다. 그렇기에 나는 나를 가끔씩 울려버리는 세상을 외면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그림 속 인물들 마냥 내 멋으로 한껏 차려입고 묵묵히 펼쳐진 삶 속으로 사뿐사뿐 걸어가 보자. 햇빛도 그늘도 그것대로 좋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바람을 느끼며 내 옆에서 함께 걷는 이를 바라보자. 인생이 한창인 오르막길이고 곧 내리막길이다. 어느 길도 걸을만하다.
구스타브 카유보트 <오르막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