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섭섭이와 속상이에게

별을 쳐다보며 걸어

by 유주

그러지 않아도 입시와 성적 때문에 예민함은 감당이 안 되고 감정 기복이 용솟음치던 여고 시절에 나의 섭섭이와 속상이는 늘 짝을 지어 조석 간만의 차이처럼 오르내렸다. 학업 스트레스를 내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친구 관계에 많이 의지하고 괜한 집착을 했던 것 같다.

반이 다른 친구를 쉬는 시간마다 애인 만나듯 복도로 불러내 수다를 떨었고 과자 부스러기라도 챙겨 나눠 먹었다. 시험기간이 끝나면 해방감에 젖어 어디가 맛있더라 소문난 분식집으로 쳐들어가 숨 끊어질 듯 깔깔깔 뒤집어지며 뱃속 허기를 채우고 머릿속 노기를 가라앉혔다. 굳이 같은 독서실에 모여 앉아 공부를 하는 건지 노는 건지 작당을 했으며 책상에 엎드려 자는 친구 모습에 안심하며 나도 내리 잤다. 공부가 안된다며 울상 짓는 친구 말에 마음의 평화를 찾았고 시험을 망쳤다는 울부짖음에 공감의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내 마음과 닿아있지 않으면 속상했고 내 마음에서 빗나가면 섭섭했다. 공부를 못했다고 걱정을 늘어놓더니 성적만 잘도 나오거나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게 없다고 한숨짓더니 혼자 척척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은 섭섭의 고봉이었다. 내가 늘어놓는 고민만 있고 친구의 마음은 엿보이지 않을 때 속상의 절정이었다. 진로와 꿈에 대한 계획과 비전을 전혀 내색도 않더니 눈앞의 현실로 다가와 손에 거머쥐고서야 짜잔 자랑하듯 털어놓는 모습을 보면서 배신감이 부르르 심장에 지진을 일으켰다.

구르는 돌만 봐도 까르르 웃음 짓고 하늘을 물들인 노을빛에 눈길만 줘도 또르르 눈물 떨구던 감수성 충만하던 학창 시절이었으니 사사로이 섭섭하고 공공연히 속상한 일 투성이었다. 나이를 먹고 이제 돌이켜보니 헛웃음만 떠돈다. 당시 내 작은 세상의 전부였던 감정은 어쩌면 부질없고 나에게 무용했을지 모른다. 나는 자신 앞에 놓인 길 위에 발만 잘 디디면 됐을 텐데. 내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쫓아가면 되는 거였다. 뒤늦게 깨닫고 아차 싶었다. 자격지심이 그때 그 시절 친구를 떠올린다. 사회적 지위, 명예, 재력 그까짓 것이 그래 다 무엇! 누군가의 꽁무니를 뒤쫓지 말고 그저 나의 별과 스스로를 바라보며 걷기를. 섭섭이와 속상이는 그만 안녕.

나무가 항시 하늘로 향하듯이
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
별을 쳐다보며 걸어갑시다.

친구보다
좀 더 높은 자리에 있어 본댓자
명예가 남보다 뛰어나 본댓자
또 미운 놈을 혼내 주어 본다는 일
그까짓 것이 다아 무엇입니까

술 한잔만도 못한
대수롭잖은 일들입니다.
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
별을 쳐다보며 걸어갑시다.

- 노천명 <별을 쳐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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