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일을 즐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주문을 받는 순간 손을 바쁘게 놀린다. 주 요리 도구는 거대 철판이다. 열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원형 철판은 크기가 2m 23cm에 육박한다. 일행이 열 명이 안 될 경우 보통 세 팀 정도가 한 테이블에 동석한다. 따라서 불판 위에는 두세 팀의 요리가 한꺼번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장작으로 불을 때워 달군다지만 화력은 그의 손길이 닿는 일부분만 강력하고 주변부는 음식이 식지 않도록 은은하게 데우는 정도의 열기만 유지된다. 철판의 중심부는 높은 열을 받아 연기가 모락모락 오르는데 대략 250~300도, 돼지고기가 가장 맛있게 구워지는 온도라고 한다.
별안간 그의 자리가 탐난다. 거긴 고기 굽는 맛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곳, 고기부심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욕심내 도전해 보고픈 막강 불판이다. 그 위에 지리산 흑돼지 삼겹살과 목살이 올려지기 무섭게 지글지글 익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다음은 돼지고기의 영원한 소울메이트 김치 등장! 시뻘겋게 잘 익은 김치가 옆에 올려지자 맛있는 냄새가 코를 강렬하게 자극한다. 그는 고기와 김치 사이에 통마늘을 잔뜩 올려놓고 고기를 한 번 뒤집더니 가위를 잡아 김치를 자르기 시작한다. 빠른 손놀림으로 마늘이 안 타게 뒤섞고 바로 고기를 한 입 크기로 자른다. 고기가 적당히 익었건만 김치와 섣불리 섞지 않는다. 잠시 사라졌던 그의 손에 얌전히 들려온 사각 스텐바트에는 콩나물이 있다. 고춧가루로 뒤범벅 양념이 된 그것이 김치 위에 수북이 올려지더니 초록이 싱그러운 부추가 한가득 뿌려진다. 그의 현란한 손목 스웨그는 이제 절정을 이룬다. 양손에 쥐어진 뒤집개가 쉐키쉐키 김치, 콩나물, 부추로 삼층 탑을 쌓더니 마늘, 고기와 합체해 뜨거운 철판 위에서 한바탕 불춤을 춘다.
요리가 완성되었는데 어떻게 먹지? 판이 크니 팔이 닿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는 불판만큼이나 헉하고 놀랄 킹왕사이즈의 스테인리스 삽을 이용해 마치 거리에 쌓여 있는 눈을 치우는 것처럼 우리 앞의 철판으로 쓰윽하고 밀어준다. 많이 기다렸다. 드디어 우리가 등장할 차례다. 쌈을 싸고 말고 할 시간이 없다. 입에 물고 있던 젓가락을 일단 뻗어 고기와 김치부터 집어 먹는다. 침묵 수행, 말은 공중으로 흩어진다. 민첩한 젓가락질과 단단한 치아가 열심히 씹고 삼키는데 집중한다. 그는 임무를 훌륭히 마쳤고 맛있게 먹는 우리를 지그시 쳐다본다. "아이고, 김치 양념이 매울 텐데 꼬마가 참 잘 먹네요."를 한 다섯 번은 흐뭇하게 내뱉더니 자기 몫의 일을 다했다는 듯 다른 철판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원형 테이블의 특성상 나란히 앉은 사람, 마주 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그들의 말이 들리고 술잔이 오고 가고 시끌벅적 웃음이 넘치는 장소에서 배 든든한 먹부림을 마치고 나오니 그새 가을밤이 내려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