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5일의 기록
아침마다 하는 교문 지도가 너무 힘들다. 첫 학교 첫 해에도 이 업무를 맡았었는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금 앓고 있는 위염, 식도염 전부 이때 얻은 것이다. 생각하니 또 열받는데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선생님이 내가 식도염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그거 직장인이면 다 생기는 겁니다’ 라며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었다. 그래, 맞는 말이긴 한데. 그 표정까지 기억난다. 생각할수록 얄밉다.
교문 지도, 그에 따른 생활 지도. 버겁게 다가올 때마다 늘 하는 생각은 ‘이걸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이다. 두발 자율화는 내가 고등학생일 때 이미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복장 단속은 무슨 60년대 이야기 아닌가. 이걸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스스로 납득할 수 없으니 아이들도 설득할 수 없다. 그러다가도 나는 곧 마음을 고쳐 먹는다. 그냥 나는 단순히 이 일이 하기 싫어서 핑계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기 싫으니까 잘못된 것이라고 합리화하려는 게 아닌지.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잘못된 것이다. 책임감 없는 행동이다. 뉘우치고 생각을 바꿔보려 하지만 생각의 방향이 자꾸 그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금 근무하는 학교는 전통 있는 여성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정말 구시대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교문 앞에 일단 선도부가 대여섯 명 서 있다. 벌써 구식이다. 선도부는 교문을 통과해 들어온 아이들을 일단 일렬횡대로 세운다. 마주 보고 선 아이들은 인성 교육의 일환으로 맞절을 한다. 인사를 한 후 선도부 아이들은 자기 앞에 선 아이들의 두발과 복장 상태를 쭉 스캔한다. 이상이 없으면 보내고 지적 사항이 있으면 일지에 이름을 적는다. 이름이 세 번 이상 적히면 관련된 캠페인 활동을 해야 하고, 캠페인 활동에 참가하면 명단에서 삭제한다.
어느 집단이나 다 그렇다. 규칙을 어기는 사람은 정해져 있고, 그들은 규칙을 어기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 어렵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설득의 여지가 없고, 본인만 지적 당해 억울하다. 아무리 신경을 써도 손가락 사이로 슥,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사람이 있고 걸리는 사람은 그래서 분통이 터진다. 왜 나만, 왜 쟤는.
왜 나만, 왜 쟤는, 이라고 했을 때 '문제는 그것이 아니고 네가 규칙을 어겼다는 점이다'라고 되받아쳐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어, 그러네. 나도 모르게 먼저 생각해버린다. 말문이 막힌다. 말문이 막히는 이유는 나는 그것을 나의 허점 혹은 약점을 지적하는 행위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나의 역량 부족, 능력 부족을 들킨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늘 두렵다. 내가 빈 껍데기임을 들키는 것. 뭘 좀 아는 것처럼, 뭐 좀 해본 것처럼 하고 다니는데 사실 쥐뿔도 없음을 누군가 알아차리는 것. 극복하기 위해선 결국 스스로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진실한 것들로 그 우물을 메울 노력을 해야 하는데 어떤 것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다.
이 일을 나는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이 일 말고 다른 대책은 있나. 또 속이 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