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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이 Oct 04. 2022

과감함이 생명, 스테인드 글라스

취미일기 여섯 번째 취미 ~ 스테인드 글라스 ~

반짝거리고 투명한 걸 좋아하는 나에게 스테인드 글라스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색색의 유리를 조합해 빛이 잘 드는 곳에 장식해두는 스테인드 글라스의 아름다움은 예로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나 보다. 전통적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들을 대개 성당이나 교회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입으로 불어서 하는 유리 공예도 정말 멋지다. 유리라는 재료 자체가 매력적이기 때문 일터다.


가족 문화와 주거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볕이 잘 들지 않는 좁은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햇빛이 집 안으로 잘 들어올 수 있게 빛이 투과하는 물체를 엮어 창가에 걸어두는 '선캐쳐'가 유행이다. 마치 미러볼처럼 여러 면을 각지게 깎아낸 유리구슬을 엮어 만든 형태가 가장 흔하고, 최근에는 색 유리를 이용해 만든 선캐쳐도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스테인드 글라스 공방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원데이 클래스도 많아졌다.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다고? 나는 스테인드 글라스에 한 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집 근처에 있는 공방을 예약하고 도안을 골랐다. 내가 직접 만든 도안으로도 작업할 수 있었는데 딱히 만들고 싶은 모양도 없고, 있다 해도 그걸 그려낼 자신은 더 없어서 공방에서 제공하는 도안 중 하나를 골랐다. 단순하면서도 특이하고 귀여운 풍선 강아지 모양의 도안이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종이 도안을 조각난 모양대로 자르는 것이다. 그리고 유리판에 오려낸 종이 도안을 얹어 모양을 따라 그린다. 최대한 곡선이 없는 도안이 좋은데 이때는 그 사실을 미처 몰랐다.


도안을 다 옮겨 그리고 나면 도구를 이용해 유리를 자른다. 톱니바퀴처럼 생긴 유리칼로 선을 따라 그으면 유리에 흠집이 생기면서 그 사이로 오일이 흘러 들어간다. 이때 겁내지 말고 힘주어 그어야 나중에 유리가 잘 잘린다. 끼긱끼긱, 유리가 긁히는 소리가 나야 한다. 그어진 선을 중심으로 양쪽을 집게 같은 도구로 꽉 쥐고 부러뜨린다는 느낌으로 힘을 주면 선을 따라 유리가 똑 잘린다. 스트레스도 풀리는 것 같고 기분이 좋아져서 이 단계의 작업이 제일 재밌었다.


유리칼과 공구


유리를 모양대로 다 잘라냈다면 도안에 올려 비교해본다. 유리칼만으로는 섬세한 모양으로 자르는 게 어렵기 때문에 곡선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라인더로 갈아 주어야 한다. 유리 가루가 날리지 않도록 그라인더에서는 계속 물이 분사되는데, 이 과정에서 무늬가 있는 유리는 무늬가 지워지기도 한다.


유리를 자를 때는 과감함이 필요했다면 유리를 갈아 낼 때는 아주 섬세해야 한다. 조각난 유리가 퍼즐처럼 딱 맞아떨어지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많이 갈아도 틈이 생겨버리고, 너무 적게 갈면 여기저기가 튀어나와 조각이 맞질 않는다.



이제 막바지 작업이다. 납땜으로 조각난 유리들을 이어 붙여줘야 하는데 유리는 납땜으로 붙일 수 없기 때문에 동테이프를 활용한다. 조각의 경계에 해당하는 부분에 동테이프를 꼼꼼히 붙여준다. 들뜨지 않게, 떨어지지 않게 테이프를 꼭꼭 눌러 붙인다.



납땜을 하면 동테이프의 광택이 사라지고 납 색깔이 되어 버리는데, 동테이프가 반짝이는 금색이라 결과물은 이때 가장 예쁘다.



그러고 나면 이제 마지막, 납땜이다. 동테이프 위에 납땜 보조제인 송진을 바르고 인두로 납땜해주면 된다. 납땜 작업 때문에 집에서 즐기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유리 가루가 날리는 것도 문제다.


납땜을 마친 모습

유리로 하는 공예는 일단 재료 값도 비싸고 깨지면 위험하니 전문가들만 다룰 수 있을 것 같아 조금 어렵게 느껴졌는데 막상 해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유리를 자를 때의 감각이 끝내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겁이 나서 처음에는 유리를 시원하게 잘 자르지 못한다고 한다.


섬세함과 미적 감각이 요구되는 작업들과 취미는 집중력이 금방 바닥나버려 질리기 일쑤인데 스테인드 글라스는 과감함이 필요한 작업과 섬세함이 필요한 작업이 모두 들어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즐길 수 있었다. 결과물도 독특해서 마음에 든다.



무슨 일이든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소진되어 버린다. 매사에 너무 열정적으로 임하는 것도 좋지 않다. 하지만 나는 개미형 인간이라 그게 잘 안된다. 뭐든지 다 요령 없이 열심히 하려고 한다. 나는 이렇게 애쓰는데 빈둥대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난다. 내가 화낼 일이 아닌데도 화를 내게 된다는 것부터가 틀려 먹은 일이다. 누가 그러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닌데 말이다.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지 마, 성실한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협조적이고 뭐든 열심히며 순종적인 아이들에게 나도 모르게 뭘 자꾸 부탁하게 된다.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급하면 그런 아이들부터 찾는다.


업무에서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새 내 일이 아닌 것까지 하고 있다. 좋게 말하면 일 처리가 빠르고, 나쁘게 말하면 만만하니까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자. 매일 다짐하지만 그게 참 잘 안된다. 대충 해도 어떻게든 된다. 잘못된 부분은 다듬고 메울 수 있다. 세상 무너지지 않는다.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 하나를 완성하며 깨달은 인생의 진리다.


대충 하자. 대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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