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주년이라고?
고등학교 1학년, 전학을 했다. 전학 가자마자 소풍날이었다. 교실에서 어색하게 인사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게다가 이제 막 3월이 지났을 때라 친구들도 아직은 서로 조금 서먹했을 때였다. 약간 어색해하며 혼자 있는 나에게 한 무리의 친구들이 다가와주었고, 나는 졸업할 때까지 그 친구들과 어울려 지냈다.
이렇게 멀어지고, 저렇게 멀어지다 보니 서른 중반. 모두 흩어지고 나에겐 단 한 명의 친구만 남았다. 그게 바로 김멍구다. 열일곱 살 때 만났으니 올해로 19년 차. 서로를 모르고 지냈던 세월보다 친구로 지낸 세월이 더 길어졌다.
대학 때까지는 종종 만나고 자주 일상을 공유했다. 스물다섯, 내가 한참 방황하고 있을 때 김멍구는 결혼했고 내가 제대로 된 첫 직장을 가지기도 전에 김멍구는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 그렇게 김멍구는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되었다. 생활 반경이 달라진 우리는 예전만큼 자주 만날 순 없었지만, 아무 때나 불쑥 연락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생일도 비슷하다. 나보다 김멍구가 6일 먼저 태어났다. 그래서 매년 그 주는 우리의 생일 주간이다. 사실 우리는 가끔 생일 축하를 건너뛰기도 했다. 그래도 한 개도 안 섭섭한 친구. 올해는 축하도 선물도 서로 주고받았는데, 생일날 김멍구가 나에게 '우리 같이 유니버셜 스튜디오 가자'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런 약속을 수도 없이 많이 했을 것이다. 당장은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인 걸 알지만, 그럼에도 진심인 그런 약속들. 유니버셜에 가자는 약속도 그런 종류의 것이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김멍구가 날짜는 언제가 좋을지 물어왔다. 티켓팅을 한다는 것이다. 어? 진짜 가는 거야?
약간 꿈꾸는듯한 기분으로 일정을 정했다. 어쨌든 방학하고 가야 하니 1월로. 2월의 방학은 짧은 데다 결혼 준비며 신학기 준비로 정신이 없을 예정이므로 그전에 다녀오기로 했다. 입시 피하고, 설날 피하고, 이것저것 고려하니 막상 여유롭게 다녀올 수 있는 날은 며칠 없었다. 그렇게 날짜를 정하고 티켓팅을 하려는데 아뿔싸, 여권이 만료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코로나 이후로 꺼내 보지도 않아서 만료가 되었는 줄도 몰랐다. 부랴부랴 여권 사진부터 찍고 여권을 재발급했다. - 요즘 여권 재발급은 인터넷으로도 된다. 대한민국 만세! - 며칠 후 여권을 수령하자마자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숙소도 예약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위치한 간사이, 오사카. 3박 4일 일정이다. 하루는 오사카 시내, 하루는 유니버셜 스튜디오, 하루는 교토에서 보내기로 했다. 비행기표도 샀고, 숙소도 정해졌고, 3박 4일을 뭐하며 지낼지도 정했다. 그럼 된 거 아냐? 이제 가기만 하면 된다.
김멍구가 결혼하기 전에 우리는 첫 여행을 갔었다. 김멍구는 아마 그게 첫 외박이었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김멍구와 김멍구의 대학 친구인 김로라 그리고 나, 셋이서 거제도에 다녀왔다. 몽돌 해변 앞의 복층 펜션. 단 맛이 나는 칵테일을 잔뜩 사다 다 먹지도 못했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오랜만에 여행을 가려니 기분이 들뜬다.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설레는데 김멍구와 같이 간다니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