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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이 Jan 28. 2023

워너비, 썸머에게

500일의 썸머

썸머, 결혼생활은 어때?

행복하게 지내고 있니?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가장 인상 깊었던 너에 대한 평은 바로 ‘썅년‘이었어. 어느 정도는 동의해. 톰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모든 관계는 상대적인 거니까, 그것은 네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일면 중 한 가지를 누군가가 그렇게 해석한 것뿐이라고 생각해.


톰은 어쩌면, 자유분방한 너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사랑했던 게 아닐까? 그 연애를 통해서 너도, 톰도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아. 그 ‘제대로 사랑한’ 상대가 서로가 아니라는 점이 유감스러울 따름이지.



나에게 너는 ‘여름’ 그 자체였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이 바로 여름이거든. 여름은 뜨겁고 열정적이고 잠들 줄 몰라. 여름의 긴 낮을 좋아해. 나는 해가 지면 울적해. 밝고 따사로운 너의 미소는 꼭 여름을 닮았지. 조금은 성가시기도 해. 바깥에 잠시만 서 있어도 온몸이 땀으로 젖고,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은 온통 눅눅하지. 하지만 여름은 그런 것 따위 아랑곳하지 않아. 마음껏 열기를 내뿜을 뿐.


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솔직하고, 사랑스럽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도 밉지 않은 그런 사람. 하지만 나는 톰을 닮았거든. 다 받아주면 바뀌겠지, 지금은 저러지만 나중엔 나에게 정착할 거야. 오만한 생각을 하고 말아. 사람은 다른 사람의 힘으로 잘 바뀌지 않는데 말야.


하지만 결국 너와 톰은 헤어짐으로써 변하게 됐고, 서로를 변하게 했어. 톰과의 관계에 회의를 느끼던 네가 했던 말 기억나? ‘우리는 꼭 시드와 낸시* 같아’ 내가 너를 찌를 리 있냐며 기겁하는 톰에게 너는 말하지. 시드는 나라고. 톰은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했을까? 어쩌면 그때 넌, 톰으로 인해 변하는 네 모습이 두려웠던 게 아닐까. 너는 사랑 같은 거 믿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톰으로 인해 사랑을 믿게 된 넌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지. 네가 성숙한 만큼 톰도 성숙했으리라 기대하고 너는 결혼을 알리는 자리에 톰을 초대했어. 그조차도 너무나 너다워.


<라라랜드> 마지막 장면 이전에 내가 봤던 가장 슬픈, 톰의 상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장면. 또, 톰만 불쌍하게 됐지. 하지만 톰과 너는 다시 만났더라도 결국 헤어졌을 거야. 세상엔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인연이 있는 법이니까.


모든 걸 다 내려놓았을 때 나타나는 사람이 바로 운명의 그 사람이라는 얘기 알아? 연애하고 싶다, 결혼하고 싶다, 좋은 사람 만나고 싶다 바라고 바랄 때 말고, 이제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나는 내 삶이나 열심히 살아야지! 할 때 진정한 ‘그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 아마 너는 그런 사람을 만난 것 같아. 그 사람의 청혼을 받는 썸머 너의 얼굴은 너무 빛나 보였거든.


나도 ‘그 사람’을 만났어. 그래서인지 부쩍 네 생각이 더 나. 이제 결혼이 100일도 채 남지 않았는데 해야 할 일들 - 그것도 처음 해보는 - 일들이 잔뜩 쌓여 있어서 좀 두렵기도 해. 하지만 한편으론 그 사람과 꾸려갈 나날들에 대한 기대가 두려움을 상쇄시키기도 하지.


스스로를 ‘시드’로 만들지 않는 상대를 만나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축복받은 일이야. 썸머 너도, 그리고 나도.


썸머,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된 걸 축하해. 너를 이제 보내줄 때가 된 것 같아. 마음껏 사랑받고 사랑하면서, 꼭 행복해야 해!




*시드와 낸시는 1970년대 영국의 커플로, 약물에 취한 시드가 낸시를 칼(낸시로부터 선물 받은 칼이었다)로 찔러 죽였다. 시드는 자신이 낸시를 찔렀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시드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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