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근교 메종 장콕토 박물관
‘장 콕토의 집 박물관’ (Maison Jean Cocteau)은 프랑스 시인, 예술가, 극작가, 영화 제작자 장 콕토(Jean Cocteau, 1889–1963)가 1947년 영화배우 장 마레(Jean Marais)와 함께 구입한 저택으로, 그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머물면서 후기 작품을 창작한 곳이다.
콕토의 집이 있는 프랑스 에손(Essonne) 지역 밀리 라 포레(Milly-la-Forêt) 도시는 파리에서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여 거리에 있는 한적한 소도시다. 그의 집은 15세기 프랑스 제독 루이 말레 드 그라빌(Louis Malet de Graville)이 소유했던 '밀리 라 포레 성' (Château de Milly-la-Forêt)의 별채 건물로 프랑스의 앙리 4세 통치 기간에 건축되었으며, 성의 바로 옆에 12개의 방이 있는 사무용 거주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16세기 주택은 원래 해자와 폐허가 된 탑이 주택 옆에 있는 13세기 성의 영역의 일부였으며. 수로와 2헥타르의 정원이 있다.
콕토는 이 도시로 오기 직전 ‘미녀와 야수’(La Belle et la bête, 1946)를 감독해 큰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파리 아방가르드의 스타 예술가로 급부상하게 된다. 이때 파리 중심부에 있던 그의 집 초인종과 전화벨이 온종일 울릴 만큼 그의 사생활이 침해되고 창작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1947년 1월 이 집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했을 때 콕토는 “마치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라고 느꼈고 곧바로 연인이자 동료 배우인 장 마레와 함께 공동구매한다.
이 집에 거주하는 17년 동안 콕토는 영화 ‘오르페’(Orphée, 1949, 주연: 장 마레), ‘오르페의 유언’(Le Testament d' Orphée, 1960, 주연: 장 마레, 출연: 에두아르드 데르미드, 율브린너)을 만들어 그의 대표작 시리즈인 ‘시인 3부작’ 영화를 완성한다. 또한 그림을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안티크, 조각품 및 그림, 사진을 수집한다. 그는 수집한 물건으로 집을 장식하게 되는데 이 집은 그가 감독한 영화의 세트장이 되기도 한다. 그의 영화를 본 사람이 이 집과 정원을 방문하게 된다면 즉시 영화에서 본 풍경과 소품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콕토는 정원사인 에두아르드 데르미드(Édouard Dermit)와 연인사이로 발전하게 되고, 데르미드는 콕토 지도하에 화가와 배우로 성장하게 된다. 콕토는 이후 장 마레의 재산 지분을 인수해 데르미드를 자신의 양아들로 올리고 상속인으로 지명한다. 1963년 10월 11일 에디트 피아프 (Edith Piaf)의 사망소식을 접한 콕토는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며 슬픔을 호소했고 실재로 몇 시간 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사망 후에, 연인이자 상속인인 데르미드는 집과 집에 포함된 예술 작품을 물려받아 1995년 자신이 사망할 때까지 보관하는데, 거실과 콕토의 침실, 서재 등 세 개의 방을 폐쇄하고 그대로 보존한다. 1966년 데르미드는 결혼해 두 아들을 낳게 되는데, 첫째 아들이 사망하여 둘째인 스테판(Stéphane)에게 유산을 물려준다. 이후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의 파트너인 피에르 베르제(Pierre Bergé)는 에손지역 위원회와 프랑스 문화부의 도움으로 집을 구입해 2005년에서 2010년 사이에 장 콕토의 집 복원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한다. 개조공사를 마친 콕토의 집은 피에르 베르제 재단(Pierre Bergé Foundation)이 콕토의 작품, 가구 및 기념품 컬렉션을 대여하는 방식으로 ‘장 콕토의 집’(Maison Jean Cocteau) 박물관으로 대중에게 공개한다. 박물관은 가구가 비치된 방과 거실,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장을 포함하고 있다. 거실과 방은 그가 생존해 있을 당시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데, 그가 혼자서 창작할 때 사용하던 2층에 있는 침실과 작은 거실은 콕토 살아생전에는 연인이었던 장 마레나 에두아르드 데르미드, 둘 모두 출입이 금지됐던 구역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침대도 1인용만 있다.
박물관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는 장 콕토와 데르미드가 함께 묻혀 있는 ‘생 블레즈 데 심플’ (Saint-Blaise-des Simples Chapel) 예배당이 있다. 이 예배당은 12세기 '생 블레즈 나병환자'(maladrerie Saint-Blaise)로 알려진 중요한 나병 병원의 일부였는데, 18세기에 나병이 사라지면서 유지 비용 때문에 나병 병원 건물은 철거되고 예배당만 보존됐다고 한다. 건물이 철거된 부지는 관리가 되지 않고 방치돼 있었는데, 1959년 밀리의 시민은 예배당을 새롭게 복원하기로 결정하고 이 도시에 정착한 콕토에게 예배당을 장식해 줄 것을 부탁한다. 콕토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밀리의 유명한 약용식물(Simples)인 민트와 쥐오줌풀, 마시멜로, 용담을 나타내는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과 벽화 프레스코화를 완성한다.
1963년 사망할 당시 콕토는 이곳에 묻히길 원하고, 이듬해에 그의 시신이 그가 장식한 예배당으로 옮겨진다. 묘비에는 "나는 당신과 함께 있어"(Je reste avec vous)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예배당에 들어서면 장콕토의 인생에 대해 설명하는 장 마레의 음성과 아르노 브레커(Arno Breker)가 기증한 콕토의 흉상을 만날 수 있다. 예배당이 있는 병원부지에는 밀리 라 포레를 유명하게 만든 약용식물들(Simples)이 자라고 있다.
-참고자료-
La maison de Jean Cocteau 홈페이지
The Saint‑Blaise des Simples Chapel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