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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AUSDRUCK

DRAMA

by 쾌주

노랫말이나, 드라마를 보면. 혹은 온라인상에 떠도는 글을 보면 공통의 논조가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이가 들면 더 이상 당신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얘기. 조연, 혹은 엑스트라가 되어 점점 출연 빈도수가 줄어들게된다는 얘기.

어릴때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주인공인데 왜 갑자기 조연이나 엑스트라가 된다는 것인지. 저런 글의 주체는 대부분 여성이었고 나는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누구 엄마라고 불리게 되면서 스스로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 같아서 저렇게 느끼게 되는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도 생각했다. 나는 언제까지나 내 삶의 주인공이어야지. 내 삶은 내꺼니까.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어딜가든 목소리를 크게 내고 먼저 인사하고 먼저 웃고 먼저 얘기하는 사람이 되었다. 바뀐 내가 예전의 나보다 제법 마음에 든다. 다만 최근들어 어떤 집단에서 내 존재감이 뚜렷해질수록 내가 조연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타자화된 나는 약방의 감초가 된 듯한 기분이다. 쾌주님은 우리 모임에서 이러이러한 분이고 이런 역할을 맡고 있어요, 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그런 것만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지만 거기서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고 네 그렇습니다! 하면서 생글생글 웃는다. 예전에는 애초에 그런 식으로 누가 나를 소개하는 일도 없었고, 있다 해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곤 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성격이 바뀌어서인지 혹은 둘다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점점 또렷해진다는 것이 이렇게 미묘한 기분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제 그 누구도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고 알고 싶어하지 않고 그저 그런 사람, 하고 못박히는 느낌이랄까. 물론 타인이 묻기 전에 내가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 상대가 별로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저 얘기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뿐이었는데 이런 얘기들을 늘어놓으면 늘어놓을 수록 그 누구보다도 내 스스로가 나를 타자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도 멈추지 못하겠다. 입은 하나고 귀는 둘이니 더 많이 듣고 더 적게 말해야 하는데 나의 귀는 그저 구멍일 뿐이고 입은 다섯개쯤 달려 있는 기분이다.

아직까지 누구의 부인도 아니고 누구의 엄마도 아닌데 원래의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의 나가 뭐냐고 묻는다면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고 지금의 나가 싫은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마뜩치 않은 기분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떤 노래를 들었다. 한때는 세상의 주인공이었는데 혼자가 된 지금은 단역을 맡은 평범한 여자일 뿐이라고.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지, 예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지, 한번만 더 기회가 온다면 죽을 힘을 다해 빛나겠다는 그 노래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 노래를 부른 이는 아직 너무 어리고 너무 예쁘고 가진 것도 많은데, 어떻게 이런 노래를 생각하고 만들어냈을까. 정말로 이렇게 느낀적이 있는 걸까.

이 가사대로라면 내가 지금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도 혼자라서 그런걸까.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에게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되지 않는걸까. 지금의 나는, 혼자인 나는 정말로 빛나지 않는걸까.


잘 모르겠다. 한동안은 혼란스러울 테지.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다른 고민이 생겨서 이 혼란은 잊고 다른 혼란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떠올리겠지. 내 인생의 주인공은 정말로 나인것인지. 내 인생이란게 있긴 한건지. 모든 사람은 타인의 삶 속 조연으로 태어났고 우리는 누군가가 지켜보는 거대한 군상극의 일부인 건 아닌지.

이런 고민들을 했었지, 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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