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c Onyango Otieno
처음 내 코 끝에 닿았던 케냐의 새벽 공기는 떨림으로 가득했다. 태양을 잉태한 채 밤새 기다려온 대지가 강렬한 생명을 마침내 세상에 내보내며 쏟아 내는 에너지는 아찔하도록 아름답다. 나이로비의 새벽 공기는 그러한 원색의 기운 그 자체였다. 접신한 마사이족의 춤, 태초의 질서에 따라 야성의 자유를 살아가는 동물들, 리듬을 뿜어내는 사람들의 발걸음.. 그 황홀함에 가던 길을 잃고 그 절정에서 새 길을 찾았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케냐와 거의 에로틱하다고 표현해야 할 만큼 강렬했던 첫 조우 이후로 나는 여행으로, 학업으로, 일로 어느새 10년을 아프리카와 관계를 맺어왔다. 새로움이 익숙함으로 변할 만한 세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서려 있는 강인한 생명의 리듬은 항상 나를 새로운 곳으로 인도해 준다. 그렇게 케냐의 대지가 들려주는 리듬에 이끌리어 언어의 춤을 만들어 내는 에릭 (Eric Onyango Otieno aka Rixpoet)이라는 시인을 만나게 되었다.
젊음이 가득한 토요일의 나이로비 YMCA 건물. 당구대를 둘러싼 우월한 몸매를 가진 그들은 청바지와 티셔츠 한 장 걸치고도 멋스럽다. 매끈한 초콜렛 피부를 감싼 원색의 옷을 두르고 시원한 웃음을 짓는 그녀들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안겨주는 뮤즈로 손색이 없다. 그 사이에서 무심히 길게 응시하는 듯한 눈 빛, 느린 운율이 베어나는 말투, 춤이 숨어 있는 손동작으로 인사하는 에릭을 만나게 되었다. 아프리카인 특유의 느긋함이 스며 난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삶의 속에 새겨져 있는 쫓기는 스타카토를, 눈물의 레퀴엠을, 두번째 생으로의 조바꿈을 알지는 못했다.
Rixpoet이라는 무대명을 사용하는 에릭의 글은 영혼의 진실을 절절한 아름다움으로 그려 간다. 그것도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말이다. 가장 비루한 것 속의 고결함을 보는 그의 시선처럼 가장 평범한 단어들은 그를 통해 비범한 글이 된다. 때로는 나의 혼란스러운 마음이 그의 글을 만날 때면 혼탁함은 눈물로 흘려 보낼 수 있게 되고 어느새 영혼에 새로운 살이 돋아나는 언어의 연금술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데 이러한 경이로운 그의 글 솜씨는 그가 삶의 밑바닥에 내던져졌을 때에 비로소 발견하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거의 매년 전학을 다닌다. 고등학교에서는 퇴학을 당한다. 교육가 집안의 첫 아들로 태어난 덕에 아무리 노력해도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네 번의 가출을 시도한다. 처음으로 시작(詩作)을 한다. 나이로비 시내에서 거리의 아동으로 살아간다. 자폭테러 미션을 안고 뭄바사로 간다. 나이로비 시내에서 뺑소니 차량에 치었으나 살아난다.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우간다에 있는 학교로 간다. 누나를 다른 세상으로 보낸다. 그리고는 그리스도 앞에 회심한다. 대학교에 입학한다. 힐튼 호텔에서 첫 시 낭독회를 갖는다. 대학을 그만두고 방송과 강연, 문화 모임을 통해 시인으로써 본격적 활동을 시작한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아직 들어서지도 않은 한 사람의 인생 파노라마가 숨가쁘게 감격스럽다.
에릭은 현재 Fatuma’s Voice라는 모임을 조직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매주 다른 주제의 사회 이슈를 두고 젊은이들이 토론을 벌이고, 시를 낭독하고 음악을 나누는 자리이다. Fatuma로 대변되는 사회, 문화, 정치 제도 속에서 지속적으로 침묵을 강요 받은 소외된 이들…이러한 Fatuma들의 목소리를 찾아주는 곳이다. 이렇듯 저항과 예술이 꽃 피우는 이 모임에서 나는 다시 강인한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그의 인생 이야기가 그렇듯, 케냐와의 첫 만남의 자리가 그랬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