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야, 너는 왜 이렇게 어렵니
20년 만에 다시 쓰는 편지
1999년 6월 9일 수요일 날씨 맑음
황성초등학교 3학년 6반
<영어에게>
"영어야, 너는 왜 그렇게 어렵니.
난 너를 잘 알지 못하여 많이 혼나.
다른 사람은 영어가 쉽다고 생각해도 나는 무척 어려워.
하긴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 어려울 수도 있겠지.
이제는 영어 너를 잘 알아서 같이 친하게 지내자."
<영어에게>
영어야,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게 20년 만이구나. 잘 지내니? 내가 널 처음 만나 썼던 편지를 기억할지 모르겠구나. 그때 우린 참 달랐지. 첫 만남이었기에 우린 무척 낯설었어. 네가 잘나고 이국적으로 생겨 쉽게 다가가기 어려웠단다. 네가 다른 친구들과는 친하게 장난치고 가깝게 지내는 모습에 질투를 몹시 느꼈어. 그 친구들이 부러웠어. 내 맘과 달리 우린 썸도 아닌 정말 친구 같은 사이었지.
그때 난 네 마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었어. 오성식 영어학원을 다니며 너를 조금씩 알아갔어. 그때 원장 선생님은 내게 제임스란 멋진 이름을 지어줬어. 집에 온 뒤에는 애릭 크랩튼의 <Wonderful tonight> 같은 팝송을 따라 들으며 너와의 짜릿한 만남을 상상했지. 혹시 우리가 처음 나눈 대화가 기억나? "How are you? I am fine, And you?" 처음 나눈 짧은 이 인사는 내가 처음 느껴본 설렘이었어. 그때 여운이 짙어서였을까. 지금까지도 나는 자동반사처럼 저 인사말을 내뱉곤 해.
고등학생이 된 뒤 너를 온전히 다 알게 됐다고 믿었어. 그렇지만 현실은 반대였어. 나의 착각이었더라. 고작 독해와 문법만 주구장창 배워놓고 널 다 알았다는 자만심. 그 자만심의 울타리에 갇힌 채 듣기와 쓰기, 말하기 같은 너의 다른 모습들을 완전히 외면해 버렸어. 너는 무한한 존재였어. 하지만 난 그저 5지 선다에서 정답 찾듯 널 대했어.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사랑이었지.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대학에 들어간 뒤 너와의 이별을 생각한 적이 있었어. 10년 가까이 만나서였을까? 잠깐의 권태기였다는 흔한 말로 내 마음을 포장했어. 사실 애정이 조금씩 식어갔던 게 좀 더 맞는 표현 같아. 예전만큼 네게 열정을 쏟지도 못했고 마음을 두지도 않았거든. 대학에 가면 너의 진짜 모습을 보고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고등학교 때와 달라진 게 없었어. 대학에서도 난 오로지 네게서 '정답'만을 찾아야 했단다. 그래서 큰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어. 뭐, 사실 신입생이 되니까 다른 재미난 것들이 나를 유혹했던 것도 사실이야. 1년간 난 너를 그렇게 잊어버리고 말았어.
인간은 함께 할 때는 소중함을 모른다고 하던데, 난 군대에 들어가서야 깨달았어. 너와 매일 함께 한 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네가 없는 군생활은 참 외롭고 힘들었어. 네가 그리워졌어. 사회에서 몰래 구해 온 영화 <노팅힐> 영어 대본을 모두가 잠들어 있을 때 선임들 몰래 작은 플래시를 켜고 읽었어. 널 기억하려 했지. 그만큼 난 네가 그리웠거든. 훈련장에서나 화장실에서나 어디서든 난 너와의 대화들을 혼자 속으로 읽어가며 추억했어. 온몸이 너와의 대화들로 아로새겨지길 바랬지. 네가 없어지니 비로소 알겠더라. 내게 늘 새로운 자극과 배움을 주고, 새로운 세상을 알려준 사람이 너였다는 걸. 평소에 온 맘을 다해 사랑하고 잘해 줄걸. 후회만이 남더라.
난 네가 정말로 간절했어. 군대에서 영어로 꿈을 꾸다니, 어느 정도였는지 알겠지? 그래서 병장이 된 뒤에는 진짜 꿈이 생겼어. 제대한 뒤 너를 직접 만나러 가기로 결심했어. 용기를 냈지. 영국으로 건너 가 너를 꼭 안아주는 것. 과외를 하며 모아둔 돈과 부모님의 도움을 빌려 제대 일주일 만에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출국했어. 세월이 흘러서였는까? 내가 알던 넌 조금 달라져 있더라. 길거리에서 봐도 친숙하던 격식 없고 부드럽기만 하던 너였는데 런던 해리티지 백화점에서 만날 법한 격식을 차리는 우아한 여성으로 변해있더라. 예전엔 물을 '워러'라고 말하더니 이젠 '와타'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야. 아무렴 어때, 그때 난 정말 행복했단다. 민간인이 됐다는 점도 있었겠지만 진짜 이유는 꿈에 그리던 널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야. 군대에서 수백 번 따라 읽은 노팅힐로 달려가 주인공 휴 그랜트의 대사를 읊어댔어. OST인 <SHE>를 들으며 걷는 노팅힐 거리란... 잊지 못할 너와의 추억이었어.
3개월 뒤 난 한국으로 돌아왔고 복학생 오빠가 됐지. 세상은 참 많이 달라져 있었어. 사람들이 카카오톡이라는 걸 쓰기 시작할 때였으니까. 난 다시는 후회할 짓은 다시 하고 싶지 않았어. 달라져야겠다 다짐했지. 학교 홈페이지에 우연히 게시글을 봤어. 영어토론동아리 모집공고가 있었어. 네 진짜 모습을 알고 싶어 가입하기로 마음먹었어. 사실 우리 지금껏 10년 넘게 제대로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잖아. 늘 글을 읽으며 소통했었으니까. 이 동아리엔 대부분 외국에서 오래 살다온 유학생들이 득실득실했어. 미인을 얻으려면 용기를 내야 한다잖니? 그래서 난 너의 마음을 얻기 위해 처음 용기를 냈어. 15분 전에 알려준 주제로 7분 영어 스피치를 하는 게 규칙이었어. 처음 단상에 올라갔 땐 정말 머리가 새하얘지더라. 다들 나만 멀뚱멀뚱 쳐다보는데 아무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더라. 준비 없는 용기란 무모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던 때야.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 막상 시작을 했는데 그만두기엔 사실 좀 '쪽팔리기'도 했거든. 10년간 널 애타게 원했는데 여기서 그만둘 수 없었어. 매일 영어토론 대회 챔피언들의 유튜브 영상을 보며 따라 했어. 혼잣말로 주장과 논거를 영어로 말하는 연습을 24시간 했지. 처음엔 내가 이걸 왜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야. 그런데 어느 순간 난 너를 알아가는 시간들을 즐기고 있더라. 6개월 정도가 흘렀던가. 한 영어토론대회에 참석했고, 30여 팀 가운데 우승을 할 수 있었어. 루키들이 주로 참가한 대회였지만 네 마음을 드디어 얻게 됐다는 생각에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어. 그때 한 동생이 "You deserve it!(넌 그럴 자격이 있어)"라고 어깨를 토닥여 줬는데, 이 한마디를 듣자 눈물이 와락 쏟아져 내리더라.
너와 함께 황홀한 여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난 취업준비생이 됐어. 취업을 하려니 토익 점수가 필요하다고 하더라. 다들 학원도 다니고 스터디를 하며 900점을 넘기려 애쓰던 시절이었지. 난 한 번도 토익 시험을 쳐본 적이 없었기에 불안했어. 그렇지만 너를 또다시 계산적으로 대할 수 없었기에 일부러 시험을 거부하기도 했어. 그건 나의 사랑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거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널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싶었어. 너를 향한 내 마음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고나 할까.
너에 대한 나쁜 집착도 내려놓게 됐어. 독일에 해외탐방을 갔을 때 "Can you speak English?"라고 외국인에게 말을 건 적이 있어. 그러자 옆에 친구가 그건 틀렸다며 "Do you speak English?"가 맞는 표현이래. 예전 같으면 문법이 틀릴까 봐 널 또다시 꺼내기 두려웠을 텐데 이젠 당당하게 말한단다. Do가 됐든 Can이 됐든 그건 중요치 않다고 믿어. 너와의 소통이 중요한 거지 외형적 모습에 집착할 필요는 더 이상 없을 거아. 널 사랑한 건 네 외모 보다 진실됨 마음이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그래서 요즘은 너를 쓸 일이 있을 땐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담긴 콩글리쉬를 마구 써댄단다. 사람들은 때때로 나의 요상한 사투리 억양을 비웃기도 하지만 괜찮아. 경상도 억양이 영국 억양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우기며 이게 바로 원조 코리안 영국 발음이라고 밑밥을 깔지.
올해 1월 1일에는 너를 매일 만나고픈 마음에 전화영어를 신청했단다. 매일 10분씩 밤마다 널 만나다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이야. 그런데 한 달쯤 지났나... 너의 전화를 수시로 끊어버리게 되더라. 매일 만나니 어느새 '남자들의 동굴'로 들어가버리곤 했지. 솔직히 조금 네가 질려버렸나 봐. 전화를 끊어도 꼭 세 번은 다시 내게 전화를 걸던데 오히려 난 그런 모습에 짜증을 냈지. 매일 널 보기로 한 택한 건 나였음에도 내 마음이 변해버린 거지. 벌써 예약 취소만 거의 100번을 넘겨버렸네.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미안해.
롤러코스터 타듯 널 미친 듯이 사랑할 때도 있었고 밉고 귀찮아 전화를 끊어버린 적도 많았어. 넌 참 내게 애증의 존재야. 그래도 난 네가 늘 내 곁에 있어줘서 감사해. 난 외국에 살아본 적도 없고 20년이 지나도 너를 완벽하게 알지 못했어. 아마 앞으로도 그럴 지도 몰라. 넌 쉽지 않은 나의 연인인 것만은 분명해. 그래서 난 너의 마음을 얻으려 매일 노력하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어. 난 완벽하지 않아. 그렇기에 늘 알아갈 수 있는 존재가 내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고마워. 앞으로 함께할 시간 동안 다툴 일도 많겠지만 널 평생 놓지 않을게. 우선 오늘 밤 11시 50분 우리 10분간 데이트 때부터 달라지도록 해볼게. 좀 더 다정다감하게 대하도록 할 거야. 그럼 곧 저녁에 만나.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