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건 올바른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1999년 11월 4일 화요일 날씨 구름
황성초등학교 3학년 6반 일기장
<PC방>
난 PC방에 갔다. '어른들은 PC방에 가면 좋지 않다'라고 많이 말하신다.
그러나 그건 올바른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PC방에 가면 돈이 들고 건강에 좋지 않지만 친구들과 우정을 쌓을 수 있으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그렇다고 많이 간다고 좋은 건 아니지만 1주일에 1~2번 정도만 가면 된다.
오늘도 같이 간 희동이와의 정이 더욱더 좋아졌으며
마음도 스트레스도 다 해소해 주었다.
늘 희동이와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 근처 피시방으로 향했다. 1시간에 1000원 선불 결제하고 게임을 시작했다. 당시 최고의 열풍이던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하며 학교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었다. 학교 선생님과 부모님은 늘 "PC방 그만 좀 가고 공부해라"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렇지만 누가 뭐래도 PC방은 나만의 힐링 장소였다. 희동이와 함께 소리치고 팀워크를 이뤄 승리하다 보면 우정은 깊어졌고 학업 스트레스도 저 멀리 달아났다.
"어른들 말 들어서 손해 볼 거 없다." 어른들을 만나면 인사치레처럼 듣는 흔한 '조언'이다. "학생 때는 어른들 말 듣고 공부만 열심히 해야 후회가 없다" "결혼할 때는 집안을 봐야 한다" "안정적인 직장에 먼저 들어가야 한다" "자식은 꼭 낳아야 한다" 뭐 이런 것들. "오래 더 살아보니 그렇다"라는 경험칙에 근거한 논리에, 덜 살아본 자자가 마땅한 반박의 논리를 펼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마땅히 반박 거리가 떠오르지 않으니 "네, 알겠어요." 한마디를 날려주고 대화를 끝마치곤 한다. 생텍 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모자로만 바라보는 어른들에게 보아뱀이라고 우겼다간 "쓸데없는 짓 말고 공부나 하라"는 구박만 듯는 것처럼. 뭐 어쩌겠는가.
얼마 전 네살 어린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는데 한동안 받지 않았다. 나중에야 전화가 오더니 "친구들이랑 PC방에서 게임하느라 못 받았다"라고 했다. 무슨 게임이냐 묻자 총 게임이란다. 나는 한심하다는 듯 "다 큰 여자가 하루종일 PC방에 가서 총 게임을 하냐"라며 괜시리 구박을 했다. 동생은 "PC방에서 친구들이랑 스트레스를 푼다는데 왜 시비를 거냐"며 답답하다는 듯 한소리를 했다. 전화를 끊고 혼자 멍하니 생각했다. "내가 꼰대가 됐구나..." 나 또한 어느덧 보아뱀을 모자라고 박박 우기는 '어른'이 돼버렸나 보다.
P.S 함께 피시방을 다니고, 치고받고 싸우며 정을 쌓던 희동이는 어느 날 야구부에 들어가더니 미국으로 야구 유학을 갔다. 그 뒤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그는 어느덧 NC 다이노스의 핵심 타자가 됐다. 희동이는 여전히 힘이 들 땐 게임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을까? 앞으로도 희동이의 멋진 활약을 기대한다.